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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Aug 18. 2021

무소속의 삶

7월 월간 일기

# 무소속의 삶


 자유는 불안함을 동반한다. 돌이켜보면 이름 앞에 붙어야 할 소속 칸에 만족스러운 것이 있던가? 어머니 손을 붙잡고 갔던 초등학교는 이제 기억도 안 나고 중학교는 2 지망이었다. 고등학교는 인생 최악의 선택지였다. 그나마 점수가 맞아서 들어간 대학은 즐거운 추억이 많았지만 휴학과 군 복무 기간을 포함해 8년간 소속되어 있으면 질릴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까지 소속되어 있었던, 4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회사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으면서 회사가 가족이라 부르던 직원을 가차 없이 내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자본주의의 생리란 걸 절실하게 느꼈다. 여러모로 지쳐있던 나는 구멍 난 배에서 탈출하듯 회사에서 빠져나왔다.


 삶에서 무소속의 시간은 길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두 번 있었다. 대학을 들어가기 전과 대학을 나오기 직전. 첫 번째는 재수생이라는 신분이지만 소속은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공기가 안 좋은 교실에서 아침 여덟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에 재수학원 같은 건 등록하지 않았다. 실제로 모의고사를 보기 위해 근처 재수 학원에 갔을 때 출입문을 자물쇠로 잠그는 모습을 보고 안 가길 다행이다 생각했다. 갔다간 한 달 정도 다니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그때는 완벽한 무소속이었다. 수능 직후 핸드폰을 개통해 온 가족이 핸드폰을 쓰면서 집 전화를 없앴는데 재수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3월, 다시 핸드폰을 해지했다. 그렇게 되니 집전화와 핸드폰, 둘 다 없는 나는 외부와의 접점이 사라졌다. 실제로 서울에 대학 간 친구가 고향에 내려와서 사우나에 같이 가려고 했지만 연락할 방도가 없어서 집으로 직접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독서실에 있느라 집에 없었다. 친구는 그대로 돌아갔다. 철저히 고립된 시간이었다.


 처음 맞이했던 무소속의 시간은 쉽지 않았지만 나의 하루를 내가 원하는 대로 보낼 수 있다는 건 강렬했던 경험이었다. 어머니는 내 재수생활에 관심이 없었기에 어떤 압박감도 없었고(재수 생활 중간에는 그냥 대학에 들어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원하는 만큼 공부하고 원하는 만큼 놀았다. 매일 자신에게 약속한 시간만큼 공부를 하고 상으로 원하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그 시간은 고등학교 시절 피폐해진 나를 회복할 수 있게 해 줬다.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한 시간일 수 있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면을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는 대학을 나오기 직전 반년 정도 졸업 유예를 하면서 취업준비를 했는데 이 때는 엄밀히 말하면 소속은 있었으나 소속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태였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기에 도서관에 들리거나 산책을 위해 학교를 가도 이방인이란 느낌이 강했다. 알바와 취업준비 때문에 정신없었던 시절 나를 되돌아볼 시간 같은 건 없었지만 마음이 복잡할 때면 새벽 2시까지 문을 여는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쉬지 않고 글을 썼다. 이번에 쓴 장편은 그때 절반 정도 썼다.


 그리고 지금, 회사를 그만두면서 4년 만에 무소속의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7월 1일에 무소속의 나는 전날 직장 동료들과의 술자리로 첫 끼로 콩나물해장국을 먹었다. 집에 들어와서 집안일과 운동과 멍 때리기를 한 뒤 밤에는 룸메가 세종시에서 중고거래가 있다길래 따라갔다. 7월의 시작이라 아직은 밤바람에 선선함이 남아 있었다. 신도시라 하늘이 넓게 뚫린 도로를 걸었다. '월하정향'이라는 와인바에 들어갔는데 모듬 돈까스가 정도로 맛있었다.



 문과생의 종착역 같은 공무원 시험이 눈에 안 들어왔던 이유는 한 조직에 오랫동안 소속된다는 게 답답하게 느껴져서였다. 하지만 달콤한 자유는 불안한 미래를 동반한다. 어쩌면 지금의 시간은 삶에서 찾아오는 불안의 시간을 견디기 위한 훈련 같은 걸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다시 고 싶은 욕구가 불현듯 올라온다. 다행인 건 이 불안을 나누었을 때 공감해줄 친구가 내 주위에 있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삶을 바라지만 가끔씩 기댈 어깨는 필요하다.


 나는 분명 다음에 어딘가에 소속되겠지만 돌이켜봤을 때 지금의 자유를 떠올리며 견디기를 바란다.



# 일하면서 꿈꿨던 시간들


햇빛을 좋아한다. 하지만 일했던 일조권을 보장받기 어려운 직장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종로 한가운데를 지나갈 때 햇빛을 받아 빛나는 통유리창의 높은 빌딩을 볼 때마다 이직 욕구가 샘솟았다. 만일 그 회사에 면접을 보고 면접관이 왜 우리 회사에 들어왔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한다. 햇빛을 많이 쬘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물론 대답 즉시 광탈행이다.

 

 퇴사를 하자마자 나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해가 뜰 때 눈을 뜨고 자정 즈음에 잠이 들었다. 이전에는 새벽 세 시는 넘어야 잠이 들고 휴일이나 오후 근무일 때는 정오 즈음에 일어난 적도 많았다. 누군가는 나이 먹어서 밤잠이 없어진 거라고 말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나는 아무리 늦게 자도 커튼을 치지 않는다. 아침에는 잠든 내 얼굴 위로 햇빛이 사정없이 내리쬐지만 그 순간이 기분 좋았다. 마치 전신이 햇빛 마사지를 받는 것 같았다. 핸드폰의 배터리가 충전되듯 몸 안의 부족한 비타민D가 충전되는 것 같았다. 반대로 햇빛이 비치지 않는 극장에서 일하다 보면 폰의 배터리가 소진하듯 서서히 기운이 빠졌다. 오래된 폰이 더 빨리 배터리가 방전되듯 연차가 쌓일수록 피로감 높아져 갔다. 그래서 야외 흡연장이기도 한 테라스에 자주 나갔고 흡연량이 늘었다.

 

 늦게 시작한 장마가 이른 시기에 끝나버려 7월 둘째 주부터 햇빛이 짱짱한 날이 계속되었다. 그만큼 더워진다는 의미기도 했지만 나는 부족했던 비타민D를 충전하기 위해 많은 햇빛을 쬐었다. 햇빛을 많이 쬐는 시간에 활동한 것뿐 아니라 공간적으로 햇빛을 많이 쬘 수 있는 곳에 갔다. 음성 시골 마을에 있는 편백나무 재질의 복층 원룸으로 널찍한 마당이 있다. 친구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그 집은 주말마다 친구들끼리 몰려가 집안을 정리하고 풀을 베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 나는 스케줄 근무 상 많이 따라가진 못 했지만 가끔씩 가서 도움을 줬다. 널찍한 매트리스 하나도 기부했다. 친구들끼리 아지트처럼 쓰는 그곳을 나는 어두운 상영관을 정리하다가도 문득 떠올렸다. 만일 퇴사를 한다면 며칠 내내 그곳에 머물러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 간 날은 너무 더웠다. 햇빛의 밝음보다 햇볕의 뜨거움이 나를 덮었다. 7월 중순이었고 비가 내리지 않고 구름 없는 파란 하늘 속 태양은 퇴사를 감수한 내 사정 같은 건 봐주지 않았다. 이른 아침 일어나도 일곱 시가 넘어갈 즈음에는 햇볕이 따가워졌다. 부엌과 식탁은 야외에 있어서 밥 먹을 때면 땀범벅이었다.



 좋은 시간은 해질 무렵에 찾아왔다. 시골 마을에서 맞이하는 노을은 아파트나 빌딩 같은 방해물 없이 뻥 뚫린 하늘 너머 해가 천천히 지고 선선함이 찾아온다. 자에 앉아 그런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지금 이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런 시간이 필요했고 그리웠다. 혼자가 아닌 괜찮은 친구와 함께인 점도 좋았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따라 몸이 움직이는 시간. 마치 어린 날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던 때 같이 말이다.



# 긴 글을 써 봤습니다


 7월 30일인 공모전 마감일에 목표로 했던 장편을 하나 완성했다. 물론 완성이라는 말을 붙이기엔 마감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분량만 채웠기에 퇴고도 제대로 안 된 상태로 우편 소인을 찍어 보냈다. 글을 쓰는 걸 아는 친구들은 고맙게도 보여달라는 말 한 마디씩 해주지만 부끄러운 수준이기에 퇴고를 몇 번 거친 뒤에 읽어달라 청해볼까 한다. 이번에 제출한 공모전은 어차피 큰 기대는 없어서 올해는 같은 작품을 퇴고를 거듭하면서 계속 공모해볼 생각이다.


 다 쓰고 나니 장편을 한 번 완성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단편이 떠올린 아이디어에 적당히 살을 붙이는 정도라면 장편은 이야기의 인물, 배경, 전개 등을 꼼꼼하게 구성하고 유기적인 연결을 해야 한다. 이를테면 단편이 흰 배경에 나무 한 그루를 그리는 정도라면 장편은 숲을 그리는 것이다. 나무 사이에 간격과 그리면서 전체 그림이 어떤 형태로 나올지 계속해서 상상해야 한다. 나무 한 그루 그릴 땐 나뭇잎 하나, 줄기의 형태를 세밀하게 그려도 괜찮지만 여러 나무를 그릴 때에는 보여주고 싶은 나무는 강조하고 아닌 부분은 형태만 유지해야 할 때도 있다. 어쭙잖은 글이지만 그런 고민을 담아 써내었다. 이 경험은 분명 앞으로 글을 쓸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마지막 며칠은 밤을 새우다시피 해서 글을 완성한 뒤에 성취감은 간만에 느껴본 것이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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