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binsoon Jul 18. 2021

미뤄둔 일들

6월 월간 일기

# 왼 엄지 손가락 혹 제거


 처음엔 굳은 살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은 건 작년 이 무렵 사귀던 여자친구 덕분이었다. 내 왼손에 혹같이 생긴 그건 굳은살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런가? 하고 생각했지만 딱히 아프거나 하진 않았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나를 그녀는 동네에 잘하는 정형외과로 끌고 갔다. 월곡역 근처 오래된 정형외과에서 손을 덜덜 떨면서 내 손을 만지작 거리던 어르신 의사분께서는 이리저리 주물러보시고 초음파 검사까지 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양성 종양 같은 걸로 손가락에 이물감은 느껴지지만 딱히 건강에 헤로운 건 아니라고 했다. 커지면 혈액순환에 방해가 되어 약간의 저림 증상이 올 수 있는데 그게 심해질 때 제거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덜덜 떨리던 손에서 느껴진 불안감이 명료한 설명 덕분에 사라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혹은 커졌고 저림 증상은 심해졌다. 그때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도 1년이 지났다.


 퇴사 전 회사의 의료복지를 최대한 쓰고 가려고 자잘한 병원 치료를 받는 와중에 왼손 엄지의 혹이 눈에 들어왔다. 5년은 넘게 내 몸에 붙어있던 녀석인데 어느새 꽤 커졌다. 처음에는 좁쌀 만하다가 지금은 쬐그만 완두콩만큼 커졌다. 떼어낼 때가 되었다 싶었다. 큰 병원으로 갈까 하다가 그냥 집 근처 가까운 허름한 병원을 찾았다. 정확히 말하면 건물은 꽤 낡았지만 병원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가톨릭정형외과라는 아마도 전국에 30개는 넘게 있을 법한 눈에 띄지 않는 병원이었다. 아마 연세이비인후과나 성모 안과랑 비슷한 숫자가 아닐까 싶다. 초진에 초음파 검사를 통해 받은 진단은 지난번 월곡역 어르신 의사님이 했던 진단과 비슷했으며 '황색종'이라는 병명까지 알려주었다. 다행히 의사의 손은 떨리지 않았기에 재진 예약을 하고 수술을 받았다.


 부끄러운 얘기를 하나 하자면 앞에 3이라는 숫자가 붙은 나이임에도 병원에서 맞닥뜨리는 주삿바늘이나 칼은 무섭다. 주사를 맞을 때에는 어렸을 때 몸에 힘이 들어가면 주삿바늘이 안 들어가거나 넣은 뒤 빠지지 않는다는 애들 사이에 돌던 괴담이 영향을 줘 지금도 주사를 맞기 10초 전부터 숨을 호오호오 내뱉으면서 주삿바늘을 기다린다. 물론 눈은 감은 채로. 그렇다, 사실 엄지 손가락의 혹은 하루에 열 번 이상 걸리적거릴 정도로 이물감이 느껴졌지만 미루었던 건 순전히 몸에 칼이 들어오는 게 껄끄러워서였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결정을 했고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큰 수술은 아니었기에 10분 만에 끝났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호오호오 내뱉고 있는데 수술이 마무리될 무렵 의사가 말을 걸었다.


 "어때요, 간단한 수술이죠?"

 "네, 그러네요."

 "아프진 않으시고요?"

 "네... 혹시 이 황색종이라는 게 흔한 건가요? 제 주위에는 없던데."

 "네, 흔한 거예요. 큰 수술도 아니고. 어떤 병원에서는 이거 수술한다고 입원시키고 MRI 찍고 별 짓 다한 다음에 150만 원까지 받는다는데 같은 의사로서 그건 정말 아닌 거 같네..."

 "그냥 제 주위에서는 이런 혹이 있다는 걸 못 들어서요."

 "혹시 주위에서 코로나 걸린 사람 봤어요?"

 "아뇨 못 봤는데요?"

 "그럼 백신 맞고 후유증으로 일주일 넘게 앓는 사람은요?"

 "없어요."

 

 참고로 나는 백신 접종 다음 날에 약간의 오한과 두통이 있었다. 이튿날에는 말끔해졌지만.


 "그런 거랑 비슷한 거예요. 내 주위에는 없지만 여기저기 있는."

 "그렇군요."


 이다음에도 몇 번 더 말을 걸더니 이내 잘라낸 부분을 봉합하고 간단한 후속 안내까지 한 뒤 자리를 떴다.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꽤 진심을 닮아서. 반창고랑 항생제 주사를 넣어준 간호사 분께도 감사하다고 하고 수납해준 접수원 분께도 급여처리를 위한 서류 발급을 부탁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마취 기운은 가시지 않아서 덜덜한 손가락을 품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때 손을 떨었던 어르신 의사분과 병원으로 데려가 준 전 여자친구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들리진 않겠지만. 아픔 앞에 사람은 겸손해지는 걸까.



# 영화 모임을 진행합니다


 계기는 친한 선배와 카페에서 나눈 대화였다. 무비살롱을 운영하는 선배가 코로나 시국 때문에 모임을 주최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듣다가 4인 모임을 기획해보자는 얘기로 나아갔다.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부담감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훨씬 컸기에 한다고 했다.


 통화와 카톡을 반복하면서 결정하게 된 모임 주제는 일상과 관련된 영화를 선정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 4인이라는 인원 제한이 있는 만큼 주최자가 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참여자들도 많이 말할 수 있는 형태로 모임을 꾸리고 싶었다. 영화는 예술성과 대중성이 적절히 섞여있어야 하고 결말에 여운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남는다. 그렇게 고른 주제가 각각 결혼, 연애, 가족이었다. 첫 번째 영화는 <결혼이야기>, 결혼을 주제로 한다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영화였다. 넷플릭스 제작이어서 접근하기 쉬운 데다 어느 정도 인지도도 있고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라 깊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자극적인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세밀한 감정 묘사와 공감할 수 있는 대사 덕분에 결혼에 관해 깊이 있는 대화를 기대할 수 있었다.


 단독으로 진행하기보다는 남의집 프로젝트라는 플랫폼과 협업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남의집 프로젝트는 그저 개성 있는 집을 가진 사람이 모임을 주최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정도로만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개인 사업자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모임도 주최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카페 점주가 커피를 가르치고 바텐더가 칵테일 제조법을 공유한다든지. 생각보다 취지가 괜찮았다. 홈페이지도 깔끔했다. 처음이라 아직은 불확실한 부분이 있어서 무료로 파일럿 모임도 진행했다. 나쁘진 않았지만 부족한 점이 몇 가지 눈에 띄어 실제 모임에 반영했다. 예를 들면 자유롭게 얘기하는 정도라 영화와 같이 나눌 얘깃거리 정도만 준비했는데 막상 해보니 대화 중간에 버벅거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한 피드백을 반영하여 모임일에 시간별로 주최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미리 적은 큐시트 같은 걸 준비해 갔다. 예능에 왜 대본이 필요한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추가로 남의 집 프로젝트는 참여자가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를 미리 확인한 후 개인 성향에 맞춰 준비했다.


 이렇게 준비해서 진행한 6월 20일의 첫 모임은 나쁘지 않았다. 이전의 파일럿 모임에서 체득한 피드백을 반영해서인지 스무스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 준비한 시간을 약간 넘겨서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추가로 알게 된 건 4인 모임은 확실히 참석자들의 성향도 중요하다는 것. 한 명, 한 명의 성향이 모임에 영향을 주기에 진행할 때 이를 신경 쓰면서 해야 한다.



 모임 준비와 진행을 하면서 알게 된 건 내가 기획한 아이디어가 돈이 되는 과정이 즐겁다는 점이었다. 1인 참가비가 3-4만 원 정도라 수익적인 측면에서 큰돈은 아니지만 매월 받는 월급과는 분명 달랐다. 거기다가 준비하는 과정과 부족한 점을 되돌아보고 수정하는 것까지 그저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얼마나 재미를 못 느끼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일이 퇴사라는 결정에 5 프로쯤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 3년 10개월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2017년 8월 28일부터 2021년 6월 30일까지. 일자로 세면 총 1403일이다. 다녔던 직장 중에 제일 길었으며 4년 가까운 시간이라 대학에 들어갔으면 졸업을 했을 시기다. 실제로 졸업한 친구들 중에는 전문대학원이나 다른 대학에 들어간 친구도 있었는데 그 친구들 프사는 어느새 졸업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회사를 다녔던 나에게 남은 학위 같은 건 없다. 인사팀에서 발급해준 퇴사 서류 중에는 경력증명서라는 것도 있는데 내 다음 경력에 쓸모가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마지막 한 달은 정말 일하기 싫었다. 이건 퇴사를 앞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공감할 일이다. 하지만 퇴사는 아니지만 다른 곳으로 발령을 앞둔 선배가 일주일 정도 아무 일도 안 하는 모습을 옆에서 본 적 있는 나는 그렇게는 되기 싫어서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해야 할 일은 하되, 일을 만들어서 하지는 말자'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민폐는 안 끼치지는 선에서 최대한 일을 안 할 수 있다, 라는 건 희망사항이었고 실제로는 야근만 안 했을 뿐 쉬지 않고 일했다. 6월은 발령이 이래저래 겹쳐 다른 지점으로 인원이 빠지고 또 다른 지점에서 우리 쪽으로 인원이 새로 들어왔다. 덕분에 업무가 일시적으로 나에게 몰려왔는데 그 업무를 다시 새로운 분들에게 인수인계하는 게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거기다 회사 사정이 사정이라 매일 직원들끼리 돌아가며 현장을 봐야 했기 때문에 밥 먹는 시간 빼고 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내 꼴은 말년에 바닥에 칫솔질하는 병장 같았다. 근무의욕이 1도 없던 나는 일하는 게 정말 싫어서 틈만 나면 테라스에 가서 담배를 피웠다. 한 달에 한 갑 정도만 피우는 정도였던 간헐적 흡연자인 나는 일시적으로 흡연량이 몇 배는 늘었다.


 송별회는 따로 없었고 친한 직원들끼리 몇 차례 술자리만 가졌다.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가 딱 좋았다. 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저 친한 직원들끼리 미처 나누지 못한 얘깃거리를 나누는 정도가 부담 없고 좋았다. 누군가는 서운해하기도, 또 부러워하기도 했다. 더러는 나를 싫어하는 직원도 있어서 '얘가 드디어 나가네'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남은 사람들을 보며 애틋한 마음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회사를 떠나도 정리될 인연은 정리되고 이어질 인연은 알아서 이어지겠지라는 생각에 인간관계에 미련은 없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사무실에서 주고받던 실없는 농담들, 아무도 없는 극장 로비, 마감 후 상영관에서 혼자 보던 영화, 테라스에서 내뿜은 담배연기를 바라보던 풍경.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할 기억을 뒤로하고 사무실의 내 서랍장을 비웠다.


 수고하셨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늘을 바라보는데 안경은 필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