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준비에 있어 신경 쓴 건 우선 청소였어요. 고양이를 키우는 만큼 생각지도 못한 곳에 털 뭉치가 날아다닌 답니다. 같은 이유로 너무 일찍 청소를 해도 하루 만에 여기저기 털 뭉치가 생기기 때문에 당일 청소는 꼭 필요합니다 ㅜㅠ 각자의 방을 제외한 모임 인원 동선에 있는 거실, 부엌, 화장실은 구석구석 청소를 했습니다. 모임 첫날이라 3-4시간 정도 청소만 한 거 같아요.
다양한 '준비 완료' 모습
청소에 대해 좀 더 얘기하자면 모임을 만든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30여 회의 모임을 진행하면서 모임 준비 시 최소 2시간 이상은 청소에 할애하였습니다. 딱히 제가 결벽증이 있는 건 아닙니다. 생활 습관도 그리 깔끔한 편은 아니구요. 첫 번째 이유는 고양이 털입니다. 알러지약을 준비해놓고 있습니다만 간혹 본인이 알러지가 있는 줄도 모르다가 방문 시 알게 되는 경우를 더러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청소 시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은 고양이 털 제거입니다. 특히 영화 관람 시 참석자 분들이 앉게 될 소파와 카펫은 다이슨 청소기로 구석구석 청소하고 돌돌이 테이프를 수십 장 뜯어내면서 돌리고 또 돌린답니다. 소파 쿠션 사이에도 청소기를 넣어서 털을 제거하구요. 시간되면 꿍꿍이와 돌돌이, 두 냥이들의 빗질도 최대한 해둔답니다.
집사여, 털과 전쟁할 준비는 되었는가?
두 번째는 공간을 기반으로 한 모임에서 청소는 제일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은 저와 하메들, 그리고 간간이 놀러 오는 저희의 친구들에게는 익숙한 공간이지만 영화 모임에 오는 분들에게는 낯선 공간입니다. 때문에 사소한 디테일로 공간의 인상이 좌우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제가 신경 쓰는 건 화장실 위생이었어요. 영화관 매니저로 근무하면서 제일 신경 썼던 것이기도 합니다. 아주 작은 공간일지라도, 그 공간을 관리하는 사람이 신경 써야 할 건 방문하는 사람의 동선입니다. 화장실은 대부분이 한 번씩 들르는 동선이죠. 그렇기에 저는 식당이나 카페를 방문했을 때 그 공간이 제대로 관리되는 곳인지 알 수 있는 기준은 화장실 위생이라고 생각했어요. 저 역시도 모임을 진행하는 날에는 매번 락스 청소를 하고 수건은 새것으로 교체하고 위생용품은 핸드워시만 밖으로 내놓고 나머지는 전부 수납장 안 쪽에 넣어서 안 보이도록 합니다. 사적 공간으로 최대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죠.
청소와 더불어 신경 썼던 것 중 하나는 최대한 생활공간으로 보이지 않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청소를 열심히 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이를 위한 것이었죠. 지인이 아닌 낯선 사람의 생활공간을 방문하는 건 누구든 거부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거실과 부엌에 무드등을 설치하고 현관에는 레드 카펫을 흉내 낸 커다란 반달 모양의 붉은색 카펫을 깔았습니다. 거실에서 화장실로 이동하는 동선에는 움직임에 반응하는 센서등을 설치했고 동선의 중심부에는 캔들라이트를 설치해 현관에 들어섰을 때 향이 퍼지도록 했습니다. 스크린 안쪽에는 다양한 취향이 반영된 영화 포스터로 꾸몄습니다. 물론 좋게 봐줘야 영화매니아의 홈파티 정도로 봐줄 수준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라도 해봐야죠. 이후에도 거실로 들어올 때 볼 수 있는 커다란 네온사인과 커튼 도어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모임 첫날은 긴장을 떨치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청소에 투자했습니다. 때문에 모임 시간인 오후 7시보다 30분 전인 6시 반이 되어서야 청소가 끝날 수 있었어요. 이때 이미 체력의 절반 정도는 소진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 분씩 방문해주시기 시작했죠. 정말이지 낯설고 불안하지만 동시에 어떤 손님보다도 반가운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방문해주신 건 네 분으로 다양한 개성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이전에 천안 지역 최대 규모(아마 백 명 이상으로 기억합니다)의 영화 모임을 운영하셨던 분도 계셨고, 영화를 볼 때 즐기기 위한 맥주와 감자칩을 직접 챙겨 오신 분도 계셨어요. 모임에 오시기 전 고양이는 조금 불편하시다고 말씀하신 분 무릎 위에 꿍꿍이가 잃어버린 의자를 찾은 것 마냥 영화 보는 내내 앉아 있을 때는 난감함과 약간의 유쾌함이 교차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여러 번 봤던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같이 본 뒤 다음 주에 개봉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대한 기대와 다른 마블 영화 전반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눴어요. 저처럼 마블 시리즈를 다 챙겨 본 분도 있었고 마블 시리즈를 거의 안 본 데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이번이 처음인 분도 있었어요. 호스트로서 이 중간에서 대화의 깊이를 조율하는 것도 필요했답니다. 마블은 알면 알 수록 보이는 게 많은 영화지만 동시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겐 벽이 하나 있는 듯한 영화기도 하니까요. 이것도 '이너 서클'과 비슷하려나요?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말이 없는 분께는 어렵지 않은 질문을 드리고 많은 지식을 풀고 싶어 하는 분께는 불편하지 않은 표현으로 자제를 유도했습니다. 저는 모든 서클이란 서클은 다 부시고 보는 호스트랍니다.
치킨은 좀 아쉬웠어요
다행스럽게도 분위기는 좋았어요. 조심스럽지만 '성공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요. 분위기를 타서 약간 흥분한 상태였는지 그 자리에서 다음 주 노웨이홈 개봉 직전에 같은 멤버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을 같이 보기로 했답니다 (^o^)
오후 7시에 시작한 모임은 자정 무렵에야 끝났어요.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말을 하는 순간이 아쉬웠죠. 기세를 몰아 주 2-3회씩, <그랜드 부다페스트>, <플로리다 프로젝트> 등의 영화로 모임을 열었습니다. 다양한 반응을 들을 수 있었고 모든 피드백이 감사한 때였죠. 그렇지만 이때 저는 모르고 있었어요. 또 한 차례의, 그것도 여태까지와는 다른 긴 코로나 대유행이 올 것을요. 극복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