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트레바리, [북씨-프렌즈] '24년 12월 인터뷰 미션 회고

by Robinsoon

열 명 중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많아봐야 한 명이다. 그 한 명도 꽤 많은 편이다.


어렸을 적 공부하라는 말씀은 한 번도 안 하셨던 어머니가 친구 좀 사귀라는 말은 곧잘 하셨다. 반에서 두루두루 친한 사람들이 잔뜩 있는 형과 달리, 나는 서너 명의 친구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독서모임 플랫폼 트레바리에서 [북씨-프렌즈]의 파트너로 운영을 한다는 건 돌이켜보면 새삼 신기한 일이다. 북씨는 책(Book)과 영화(Cinema)를 페어링해서 매달 한 번의 모임을 가진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12월, 정신없이 흘러간 올해를 회고하고 싶었다. 그렇게 떠오른 건 인터뷰 미션이었다.


생각은 잘 정리되지 않고 글로 정리하는 것은 부담이다. 그 중간에 있는 말은 흘러간 올해의 시간들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기록은 말하는 내가 아닌, 듣는 사람이 한다. 특히 온전히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지 않나?'라는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인터뷰어(Interviewer)는 듣고, 인터뷰이(Interviewee)는 말하면 되니까.


인터뷰 인증샷 1


Q. 주위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올해 나에게 일어난 변화가 있나요?
A. '나'만의 원칙과 기준이 생겼다는 것


인터뷰 미션 공지를 할 때 한 가지 룰을 정했다. 그것은 릴레이로 인터뷰를 해야 할 것. 예를 들어 A, B, C 세 사람이 있다면 A는 B의 인터뷰어가 되고 B는 C의 인터뷰어, C는 다시 A의 인터뷰어가 된다. 서로가 인터뷰어-인터뷰이가 되어선 안 된다. 자칫하면 '대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뷰 미션에는 최소 2명을 만나야 한다. 물론 각자의 일정이나 혹은 둘이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에 영상 통화, 카톡, 메일로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가능하면 대면이나 영상 통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얼굴을 마주 보고 인터뷰하는 경험을 하길 바랐으니까. 사실 위의 룰은 내가 정한 건 아니고 기자인 지인 분이 트레바리 클럽을 운영할 때 썼던 룰이다. 애초에 이 인터뷰 미션은 그 분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이다. 너무나도 감사한, 자주 보지는 않더라도 인연이 오래갔으면 하는 분이다. 그 분이 운영했던 춘천의 멋진 공유서재에서 만났다.


https://www.instagram.com/first_booksalon/


인터뷰를 하면서, 그리고 내가 인터뷰이가 되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인터뷰한 분은 내 말과 그 인터뷰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을지도 궁금해진다. 과거를 돌아보는 그 시간이 그 안에 머무르는 게 아닌 남아있는 나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길 소망한다. - [북씨-프렌즈] 멤버 분의 인터뷰 미션 후기


질문을 직접 짜는 건 부담일 수 있기에 내가 미리 12개의 질문을 만들고 인터뷰어는 그 중에 3개, 나머지 2개는 본인이 직접 생각해서 최소 5개의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의 주제는 '2024년 회고'. 내가 짰던 12개의 질문은 이 아이디어를 알려주신 분이 쓰셨던 질문을 변형했고, 또 내가 직접 짠 것도 있다. 그 중 대부분은 요가를 하면서 떠올리고 끝나고 탈의실에서 폰을 들고 후다닥 노트 어플에 옮겨 담았다. 나마스떼.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독서모임이기에 그 사이에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또 그냥 만나서 친해지라는 게 아닌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기에 그 만남이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나 또한 그 릴레이에서 예외일 수 없기에 인터뷰어로 한 번, 인터뷰이로 또 한 번 멤버 분을 만났다.


인터뷰 인증샷 2


누구를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게 만나는 사람의 수다. 사적인 모임을 가질 때 내가 좋아하는 최대한의 인원은 딱 테이블 하나 채우는 정도다. 테이블을 나누어야 할 정도로 많은 모임은 웬만하면 가지 않는다. 4명이 모이면 1년의 대소사를 가볍게 나눌 수 있고, 3명은 지난 주에 만난 소개팅을 이야기할 수 있다. 2명은 최근에 있었던 짧지만 강렬했던 연애를 길게 풀어낼 수 있다. 아주 사적이고 감정의 날것들이 두 명의 대화에서 나온다.


누군가가 친구의 정의를 묻는다면 '두 명이서 볼 때 어색하지 않고 편히 볼 수 있는 사이'라고 답할 정도로 나는 두 명이서 보는 사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둘이서 보는 시간을 꼭 갖는다. 셋 이상이 모일 때 공통의 대화 주제를 굳이 찾을 필요 없이 지금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둘이 있을 때 있다. 둘이서 할 수 밖에 없는 인터뷰 미션을 한 이유다.


Q. 마지막으로, 올해는 이 아이스크림이다라고 하는 게 있다면?
A. 더위사냥.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이다. 어릴 때부터 커피나 카페인 같은 어른스러운(?) 맛에 끌렸다. 그런데 많이 못 먹게 해서 많이 먹지는 못했다. 더위사냥은 커피 맛은 나지만 달달 달콤한데, 올해는 그 어렸던 시절보다는 조금 더 어른이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유치하고 달달한 커피맛보다는 조금은 씁쓸한 진짜 커피맛을 좋아하게 된 해 같기도 하다.


인터뷰를 끝내면 인터뷰어는 인터뷰 내용을 독후감 말미에 적는다. 트레바리에서는 책(영화)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12월 모임에는 책과 영화, 그리고 인터뷰 내용을 독후감을 써야 해서 멤버들의 부담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렇지만 하고 나면 분명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꽤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다행스럽게도 다들 미션을 즐겁게 수행해 주었고 독후감 말미에는 인터뷰 기록이 있었다. 짧은 문답을 주고받은 인터뷰도 있었고, 내가 생각지도 못 한 재치 있는 질문들로 가득한 인터뷰도 있었다. 꽤나 진지한 내용이 오간 듯한 인터뷰도 있었다. 이전 모임과는 달리 책과 영화 이야기는 줄이고, 인터뷰 이야기를 발제문에 담았다.


연말이라 각자 좋아하는 음식, 술(음료)을 가지고 와서 송년회 분위기 식으로 모임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다른 모임과 다르게 모임 전의 어색한 분위기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 모임 시작 전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나의 이야기를 하거나 들었던 상대가 최소 2명이 있었기 때문일까?


만약 그 순간이 좋다면, 난 개인적으로 그 순간을 카메라로 방해하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무르고 싶거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부 북토크 때는 인터뷰어가 자신의 인터뷰이의 2024년은 어땠는지 이야기했다. 인터뷰어는 인터뷰 내용을 요약해서 말하고, 뒤이어 인터뷰이는 인터뷰에 담지 않은 2024년에 있었던 일, 의미 있는 생각들, 내년에는 어떻길 바라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당 5-10분의 시간이 주어졌으며 적어도 그 순간 인터뷰이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꽤 친해졌고, 다음 모임이 기대되었다. 집에 가는 길에 몽글몽글함 같은 게 가슴에 남아 있었다.



나는 [북씨-프렌즈]의 멤버들이 이곳에서 괜찮은 친구 한 명을 알아갔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란다.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기 바쁘고 지금 있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기도 빠듯할 수 있지만 그런 와중에 어떠한 이해관계없이 마음에 맞는 친구 한 명을 찾는 건 삶의 새로운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어렸을 때 친구가 없다고 어머니의 걱정을 샀던 나는 연말 모임 일정을 조절해야 할 만큼 좋은 친구들이 많다. 그중에 대부분은 사회에서 만났다. 그래서 자주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내가 한 것에 비해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고.


관계의 시작은 쉽지 않겠지만 4개월의 여정이 그들에게 좋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성취의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만일 그 인연이 긴 시간 이어져, "그 클럽 덕분에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네"라고 추억을 회고한다면 정말 기쁠 것이다. 내가 이 클럽에서 했던 모든 노력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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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클럽 자랑 대회> w/ 골든블랑

https://www.instagram.com/goldenblanc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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