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손가락

애프터 서비스

by Robinsoon
"너네 형 쌍꺼풀 수술 좀 해주려고."

몸도 편치 않으면서 왜 그렇게 일을 구하려는지 물었을 때 어머니는 그렇게 대답했다. 간만에 어머니 손을 붙들고 나선 산책길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밤하늘 속 달은 노랗고 동그랬다.


"필요하면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뭘 거기까지 신경 써요?"

"그래도 엄마로서 책임감이 느껴지는 게 있어. 이쁘게 못 낳아 줬으니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어떤 연예인의 인터뷰 기사에서 '예쁘게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라는 말을 봤다. 예쁘게 낳은 부모가 감사함을 받는 만큼 못생기게 낳은 부모는 미안해야 하는 걸까. 같이 걷는 걸 의식해 어미니의 발걸음에 맞춰 반 폭 정도 걸음을 좁혔다. 나보다 거의 30센티쯤 작으니까. 그래도 내가 키가 큰 건 자기 닮아서 그런 거라고, 본인은 원래 키가 컸어야 하는데 못 먹어서 그렇다고 항상 말한다. 참고로 외삼촌 키도 작달만 하다.


"사지 멀쩡하게 굴러가도록 낳아줬음 됐지 뭐 거기까지 책임감을 느껴?"

"그래도오… 니 형은, 얼굴 보면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니까."

"나는? 치아교정도 내 돈 내고 하고 있는데? 뭐 AS 해 주고 싶은 거 없어?"

"너는, 그 정도면 어찌어찌 됐어…"


어찌어찌 됐다니. 그래도 자기 아들인데 빈말로라도 이쁘거나 잘 생겼다고 말은 안 하시네.


"나 피부도 별로고, 코도 낮고, 쌍꺼풀도 형이랑 똑같이 없는데?"

"넌 네가 알아서 곧잘 하잖아. 돈 벌어서 해. 형은 좀 챙겨줘야 돼. 네 아빠 살아계실 때도 이쁨은 네가 더 받았잖아."

"그랬었나? 가물가물하네."


그러고 보니 형도 그런 얘기를 한 것 같다.


"그랬어… 넌 아빠 닮아서 날렵하고 네 형은 좀 둔해서 아빠가 차별했었어. 그러지 말라 그랬는데도."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렇게들 말하니 그런가 보나 싶었다. 별 감흥이 없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10년이나 지났으니까. 차별이니 원망이니 하는 것도 다 흐릿해졌다. 아파트 단지 외곽을 따라 걷고 있었다. 익숙한 교복의 학생들이 보인다. 셋 다 똑같은 모양의 색깔만 다른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요즘 저 디자인이 유행하나 보다. 마치 게으른 부모가 세 아들에게 신발을 사줄 때 귀찮아서 한꺼번에 산 것 같다.


"그래도 급하게 일 안 찾아도 돼요. 몸에 무리 가는 일은 하지 말고. 그러다 어디 더 안 좋아지면 어쩌시려고? 집에 돈이 없진 않잖아."

"응, 알았어."


대답을 들으면서도 흘려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고집이 세니까, 우리 엄마는.


"아무튼, 나는 뭐 걱정되는 거 없어? 맨날 형만 챙기고."

"너는 괜찮아. 좀 이기적이고 냉정한 부분이 있으니까. 자기 건 확실히 챙기잖아. 형은 그렇질 못 하니까. 여기저기 챙기려고 하니까."


보통 본인 아들한테 이기적이라고 말하나? 이런 말을 종종 아무렇지 않게 뱉는다. 내가 냉정하다면 그건 어머니를 닮은 것일 테다. 형은 2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계속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냉정한 아들이라 죄송스럽네요."

"응, 넌 아빠 닮았으니까."

"난 엄마를 더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얼씨구."


8시 조금 넘은 시각이지만 아파트는 휑했다. 근래에는 아파트에서 노는 애들 보기가 힘들다. 나 어렸을 때만 해도 땅 파는 것만으로 하루 종일 놀았던 것 같은데. 쓸쓸함이 조금 맴돌았다. 인도가 없는 길에 차가 지나가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안 쪽으로 들였다. 주름이 제법 잡힌 그 손에는 있어야 할 손가락이 하나 없었다. 검지 손가락 첫마디가 조금 나오다 말았다. 끝은 뭉툭했고 점 하나가 찍혀 있었다. 기억하는 엄마 손의 이미지는 언제나 그 점으로 시작한다. 어렸을 때 사고로 잘렸다는데 자세한 건 모른다. 어떤 사고였는지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 것도 기억 못 하는 걸 보면 냉정한 아들이 맞나 보다.


십 년 넘게 우리 집인 이 아파트는 내가 떠난 뒤 페인트칠을 다시 했다. 단순히 다시 한 게 아니라 같은 건설사의 새로운 브랜드 이름으로 다시 칠했다. 'XX 아파트'에서 'XX OO파크'로. 덕분에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매매가도 조금 올랐다. 이는 담보로 받을 수 있는 대출금도 늘었다는 의미다.


남들 다 하는 학업과 알바의 병행이 조금 힘에 부치기 시작해서 주택담보 대출을 좀 더 받을 수 없냐고, 전화로 얘기하기 민망해서 시외버스로 2시간도 안 걸리는 집에 5개월 만에 내려왔다. 오자마자 어머니가 끓여 준 짭조름한 된장찌개를 배 부르게 먹고, 소화도 할 겸 산책 나가자고 했다. 거실에서 무게 잡고 얘기하는 것보다 밤바람 맞으면서 말을 꺼내는 게 나을 듯싶었다. 말면 흔쾌히 해 줄 당신이지 쉬이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저녁 메뉴 말하던 어조로 근래에 안 좋아졌다는 무릎 관절을 말하니 더욱 그랬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홉 개였던 어머니의 손가락은 당연한 얘기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홉 개였다. 그 부분은 새순같이 뭉툭해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라날 것 같았다.


"좋겠네, 형은. AS까지 받고. 난 그런 서비스도 없는데."

"넌 괜찮아, 항상 알아서 하니까. 그래서 마음이 놓여.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언제나 이렇게 말다. '넌 괜찮아, 알아서 잘 하니까.'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남들한테 뒤처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거리는데. 얼마 없는 내 걸 지키려고 별 짓을 다하는데.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모든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 맘을 표현한 그 말. 그런데 어머니는 손가락이 아홉 개니까 하나는 아무리 깨물어도 아프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있어야 할 손가락이 하나 없으니까.


나는 당신에게 그 없어진 손가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물어도 아프지 않은 손가락. 알아서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잘할 것 같은 그런 자식. 걱정은 깨물었을 때 아픈 아홉 손가락으로만 향한다. 가슴속에 묵직함이 느껴졌다. 계속해서 당신 눈에 그렇게 보여야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느껴졌다. 그래야 없어진 검지 손가락만큼의 역할은 하지 않을까. 어머니는 항상 그랬듯 형을 신경쓰고, 나를 보고는 안심하고.


"곧 날도 추워질 텐데 장갑이나 하나 사서 껴요."

"괜찮아, 손이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되는데 뭘. 너는 가죽 장갑 한 벌이라도 있니? 하나 사 줄까?"

"됐어요, 어머님 큰 아들 쌍꺼풀 수술해 주셔야죠."


어머니란 존재는 자식에게 뭘 그렇게 주려고 한다. 그게 큰 아들이냐 작은 아들이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 큰 자식들은 어떻게든 더 받으려고 한다. 마치 그게 원래 자기 것인 냥, 채무자한테 빚 받으러 오듯. 멀쩡한 팔다리를 더 움직일 생각은 안 하고 아홉 개의 손가락에서 뭔가 더 받아갈 게 없을까 하는 궁리만 한다.


"근데 아파트 페인트 칠은 언제 다시 한 거예요?"

"너 군대 있을 때."

"아하, 그래서 기억이 잘 안 났구나."

"너 제대하고 서울 올라가선 집에 잘 안 내려왔으니까…"


그 말이 가슴을 콕하고 찔러서 하려던 말이 다시 한번 막힌다. 말없이 한동안 동네 주변을 걸었다. 10분쯤 지났을까, 길고양이가 보여 어머니는 가던 길을 멈추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너까지 졸업하면 아저씨랑 혼인신고하려고."

"네... 뭐, 그렇게 해요."


'아저씨'는 어머니가 지금 만나는 사람이다. 어머니보다 5살쯤 많다. 남편이 되기는 원하지만 아버지가 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 점이 좋았다.

"그렇게 하면서 여기 아파트는 팔려고. 엄마는 그쪽 가서 살면 되니까. 판 돈은 너네 결혼 자금에라도 보태라."

"……됐어요. 어차피 취직해도 한동안 결혼 생각 없어요. 집은… 저희 거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엄마 거예요. 팔아도 돈은 엄마가 가져야지."

" 어려서부터 니꺼 내꺼 곧잘 가리더니 뭘 그렇게 나누니? 그냥 우리 꺼지."

"아뇨 엄마 거예요, 집은. 나나 형은 앞으로 돈 벌면 되는데 뭘. 어차피 이기적인 아들이라서 니꺼 내꺼 안 가리곤 못 배긴다니까."

"하여간… 너는 네 아빠 닮았다 정말!"

"이 고집은 엄마 닮은 거예요."


문득 돌이켜보니 어머니가 장갑을 낀 것을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내내 손가락이 하나 없는 것을 신경 쓰고 계셨던 걸까. 여태까지 그런 것도 몰랐다. 가로등에 비친 입가의 주름이 깊어 보였다. 마음을 가볍게 해줄 것 같았던 밤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느껴졌다. 하려고 했던 말은 가슴팍에 얹혀서 나오지 않았다.





경험이라는 재료를 다듬고 조미료를 조금 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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