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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Mar 28. 2017

Telling Us How but No Why

<미스 슬로운>, 존 매든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왜?



 먹잇감의 발끝이 어디를 향하는지 계산하고 상대가 밟은 발자국 수만큼의 계획을 짠다. 16시간 동안 일하고 기꺼이 개인 시간을 포기한다. 동료를 배신하고 팀의 신뢰를 포기한다. 수단을 선택할 때 자신의 안위마저 옵션에 둔다.


 로비스트로 일하는 리즈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은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성취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자신이 지지하는 법률만을 위해 로비한다는 신념을 유지하면서 로비스트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그런 경력을 쌓은 그녀는 총기 소유에 있어서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는 법안을 위해 10년 간 일하던 업계 최고 수준의 회사를 그만두고 반대편 진영으로 갔다.



 퍼포먼스가 훌륭한 영화다. 덫을 놓고 걸리길 기다리는 긴장감과 정치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물밑의 치열함이 있다. 매력적인 캐릭터다. 총기와 관련해 아픈 과거가 없으며, 법안을 지지하는데 왜 그런 게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리즈는 소위 걸크리시가 쩐다. 동시에 일에 묻혀 자신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자화상이 수시로 약을 먹어야 하는 그녀의 불면증, 동료의 아픈 과거마저 이용하는 몰인간성, 성적인 만족을 주기적인 성매매로 통해 얻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와 개성적인 캐릭터가 있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시계를 볼 일은 없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매력은 없다.



 제목인 <미스 슬로운>을 보면 알 수 있듯 제시카 차스테인의 역할이 독보적이다. 카메라는 줄곧 한 인물만을 클로즈업하고 있다. 그러나 쫓는 것은 행적뿐이다. 씬의 사이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그녀의 내면은 다음 씬에 이어지는 새로운 행적과 사건에 묻힌다. 하나의 인물을 조명하는 영화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내면 묘사가 필수적이다. 목적을 위해 동료의 비밀을 미끼로 던진 그녀의 행동과 사회적 정의를 말하는 법정에서 그녀의 독백간에는 과연 관객이 이해할 여지가 있을지 의문이다.


 Why의 부재는 메시지의 부재다. 사건과 과정의 박진감만으로 이끌어가기엔 정치스릴러는 애매한 장르다. 액션이나 심리스릴러와 같이 화면만으로 관객을 압도할 수 없다. 더군다나 로비스트라는 문화가 생소한 이 나라에서 미국의 정치극은 이해하기 어려운 맥락이 많다. 정치는 그 나라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요소 중 하나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번역된 대사를 통해 전달되지 않는 맥락이 있는 것 같지만 뭔지는 알 수 없다. 중간중간 법과 정치용어를 나누며 지적 배틀을 나누는 것 같지만 잘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허세같이 느껴진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그 나라의 정치문화를 공부하는 건 지나친 요구다.

 

 그러니 영화는 연출을 통해 미스 슬로운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해와 공감의 여지를 만들어야 했다. 그녀의 괴물 같은 행적만 렌즈에 담을 게 아니라. 그녀의 행동 원리, 목표에 모든 걸 내던지는 그녀의 행동에 필요한 개연성이 아쉽다. 매춘남(혹은 에스코트남)과 나누었던 대화에서, 한 시간에 몇 번씩 입에 털어 넣는 알약에서 그걸 아리라 기대한 건 빠른 전개의 영화에서는 지나친 요구다. 카메라 앵글을 멈춘 듯 천천히 전개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나 홍상수의 영화라면 모를까. 영화의 결말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슬로운이라는 물음표. 감독은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꿔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 걸까.



 영화는 출중한 뷔페 같다. 나쁘지 않은 질의 재료로 한 끼의 만족감을 충실히 채워준다. 출중한 연기가 있고 치밀한 스토리가 있고 긴장과 몰입감이 있다.


 그러나 그 식당을 나섰을 때 굳이 다시 찾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로 관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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