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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Feb 02. 2017

세 번 봤을 때 보이는 것들

다시 한 번 <라라랜드>

 첫 번째는 극장에 갔을 때 시간이 맞아서

 두 번째는 자꾸 생각나서

 세 번째는 그리워서


 그리웠다. OST를 틀어놓고 글을 쓸 때면, 중고로 팔아버린 피아노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 불확실한 미래 앞에 놓인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일 때, <라라 랜드>를 떠올렸다.


 극장에서 개봉 중인 영화를 세 번이나 본 건 처음이었다. 세 번이나 보면 무언가 새로운 게 있을까 싶지만 스토리를 외운채로 연출이나 배경에 주의를 두니 제법 보였다, 지난 번에 찾지 못한 무언가가. 관람 도중 옆에 앉은 커플이 속삭이거나 남자가 코웃음치는 소리가 거슬려 옆자리로 옮겨앉을 때 빼고는 영화에 눈을 떼지 않았다.


※ 아래의 글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면접관은 면접자를 보지 않는다.


 여주인공 미아(Mia)는 작은 사무실에서만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조명이 아닌 사무실 형광등 아래에서는 시선이 그녀에게 몰입되지 않는다. 두 번째 오디션에서는 연기하는 그녀의 뒤편에 위치한 사무실 문 유리 너머로 노크하는 장면도 나온다. 시선이 자신에게 몰입되지 않는 무대는 배우에겐 굴욕적이다. 거기에 세바스찬(Sebastian)과 약속이 있던 날 있던 오디션 장면을 다시 조명해 보면 새로운 장면이 보인다.


 면접관인 남자와 여자, 아마도 감독과 작가로 예상되는 그들은 미아의 이력서를 유심히 본다. 그녀의 지난 경력이나 연기 경험이 적힌 글일게다. 그리고 오디션이 시작하자 세 마디가 끝나기 전에 오디션을 끝내고 불합격을 통보한다. 그리고 다음 배우의 이력서를 본다. 벙쪄 있는 그녀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세 마디, 전문 연출가는 5초도 안되는 시간에 배우의 역량을 다 파악할 수 있는 걸까? 발성이나 발음? 표정연기?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안된다. 말이 되는 경우라면 이전 지원자 중 이미 맘에 든 사람이 생겨 이미 예정된 일정의 다른 지원자들을 어쩔 수 없이 본다는 게 더 말이 되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기회일 수 있는 그 기회를 5초 안에 가두는 그 행동의 가벼움을 참기 힘들었다. 면접관은 되본 적도 없고 주로 면접자였던 나이기에, 그들의 태도를 참을 수 없었다.



#2. 그녀는 보여주지 않고 바라만 본다

 

 세바스찬은 연주하고 미아는 바라본다. 크리스마스 날 레스토랑, 수영장의 밴드 연주, 여름 날의 재즈 펍, 콘서트장, 마지막으로 그의 가게. 다섯 번의 연주를 그는 그녀 앞에서 한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를 그가 보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오디션 장에 그가 들어갈 수는 없으니 그렇다 쳐도 그녀가 준비한 일인극을 그가 보는 장면도 극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의 극이 끝나고 전하는 그의 감상만이 나올 뿐이다.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하나는 음악과 연기의 특성. 음악은 콘서트장 외에도 카페나 펍에서 연주할 수 있지만 연기는 한정된 무대나 영화의 화면을 통해서 밖에 볼 수 없다. 피아노 연주자는 전문 연주자가 될 수도, 세바스찬처럼 펍을 운영하며 스스로 무대에 올라 연주할 수 있다. 혹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는 극소수의 스타들을 제외하고는, 삶을 지속할 정도의 수입을 얻기 힘들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쓰고 극장을 빌려 일인극을 하는 미아는 오랜 준비기간을 갖아야만 했고 소품과 극장대관료 등 많은 비용을 치뤄야 했다. 눈앞에 피아노만 있으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세바스찬과 자신을 위한 무대를 갖기 위해 많은 걸 희생해야 하는 미아. 둘 다 예술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매우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대중 앞에 나설 수 있는 배우의 현실.


 또 다른 하나는 열정의 차이. 아집에 가까운 재즈에 대한 세바스찬의 열정은 재즈를 좋아하지 않는 미아가 재즈에 빠지게 만든다. 하지만 극 중 세바스찬이 영화나 연극에 빠졌다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중간에 키이스와 같이 하는 밴드 활동에 자신의 고집을 잠깐 버리기도 했지만 자신의 펍을 세운다는 목표를 바꾼 건 아니다.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했을 뿐. 반면 미아는 계속된 오디션 탈락과 일인극이 끝난 후 대기실에서 들은 누군가의 악평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학교로 다시 돌아가 다른 살길을 찾으려 한다. 세바스찬은 그런 그녀를 억지로 끌고 오다시피 해 오디션장에 데리고 간다. 마지막 오디션을 끝내고 불확실한 미래를 망설이는 그녀에게 그는 '기회가 오면 끝까지 가야한다'고 말한다. 영화의 말미에 가서는 잊기 쉽지만 기억해야 한다. 극의 초반, 세바스찬은 사기를 당한 직후에도 자신의 꿈에 대한 열정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사람이 제일 바뀌기 쉬운 행위 중 하나가 연애라고 할 때 그녀는 그런 그의 열정에 감화되었고 배우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얻었다.


겨울입니다. 거기다 야외 풀. 춤을 추는 그들은 오들오들 떨어야 하는 거 아닌가?


#3. 이상한 계절 감각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5년 뒤 겨울. 시간은 계절에 따라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상한 점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일단 첫 번쨰 겨울. 미아가 커피를 쏟은 셔츠를 가리기 위해 패딩을 입고 오디션을 보는 장면 외에는 계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와 친구들은 파티에 갈 때 외투 없이 원피스만 입은 채로 수영장 파티에 가며 뮤지컬 신이라고 해도 수영장에 뛰어드는 장면도 나온다. 거기에 원피스 한 장만 입은채로 밤의 거리를 헤매이는 그녀, 코가 빨개지거나 콧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봄에 반팔 티를 입고 수영장에서 밴드 연주를 하는 세바스찬, 가을은 스웨터 차림의 미아를 보여주면서 계절감을 되살리지만 되돌아온 겨울에 그녀는 다시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세바스찬은 멀쩡히 오픈카를 외투 하나 걸치지 않고 타고 다닌다.


 옥에 티라고 보기엔 너무 크고 다른 부분의 완성도가 너무 높기에 다른 의도가 있을지 생각해 본다. 봄과 여름은 생명이 태어나고 절정을 이루는 시기다. 반대로 가을과 겨울은 사그러들고 저무는 시기. 겨울의 그들은 각자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섰으며 우연한 만남이 있었지만 서로 지나친다. 봄에 다시 만난 그들은 여름에 사랑을 꽃피운다. 가을에 위기가 찾아오고 겨울, 그들의 관계는 끝을 맞는다. 계절은 단순히 시간을 표현하는 게 아닌 관계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게 아닐까.


 그리고 5년 뒤의 겨울이 시작할 때 보인 장면, 실제 야자수가 그림 속의 한 장면으로 바뀌면서 5년이 흘렀다는 자막이 나온다. 그리고 나타나는 건 헤어진 뒤 그들의 모습. 야자수에 담긴 의미가 여름, 즉 그들의 사랑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라고 생각해 볼 때, 이미 그림 속으로 돌아가버린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후의 장면을 볼 것도 없이 관계의 결말은 예정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서로에게 빠져들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은 잔인하다.


 계절을 실제 시간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 본다면 영화에서 그들이 함께 한 시간은 1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뿐 아니라 일종의 관계의 주기로 볼 수 있다. 하나의 주기가 끝나고 그들의 사랑은 경험으로 남았다. 영화는 끝났지만 새로운 계절은 그들에게 다시 찾아올 지 모른다. <500일의 썸머>에서 주인공이 썸머(Summer)를 보내고 어텀(Autumn)을 맞이한 것 처럼.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전부 올라올 때까지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옆에 앉은 커플 역시 영화가 끝나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끊임 없이 속삭였다. 한 칸 떨어진 나에게 다 들릴 정도의 소리로. 그 속삭이는 시간이 커플에겐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 중요한 시간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각자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길 조용히 바랄 뿐.  



* LA의 12월은 평균 8~19도 사이로 우리나라의 봄가을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계절감각이 우리와 다를 수 밖에 없는 부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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