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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Dec 11. 2016

사랑과 연애, 꿈과 현실

라라 랜드(La La Land)

 간만에 찾아온 휴일을 반 정도 낭비하고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때가 되서야 밖으로 나섰다. 자른 지 한 달도 안되었지만 쓸데없이 많은 숱 때문에 정리가 안 되는 머리를 정리하러 미용실에 갔다.


 2년은 돼가는 단골 미용사랑 두서없는 대화를 나누다 나의 다음 행선지를 물어봤다.


 "모처럼의 휴일이라서 밖에 나왔는데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영화, 술, 카페, 촛불, 뭐가 좋을까요?

 "음, 저는 영화를 고를래요! 카페는 주말 저녁에 가면 북적거려서 별로예요. 술은 이틀 전에도 마셨다 그랬죠? 그럼 영화 보러 가요!"

 "오케이, 그럼 영화로. 재미없으면 책임져요."

 "ㄴㅔ^^"


 무책임한 말을 내뱉는 숏컷이 어울리는 미용사였다. 집에 닥터마틴 신발을 네 켤레나 가지고 있단다.


 <연애담>과 <라라 랜드> 중 무얼 볼 지 고민했다. 예고편의 감성은 연애담 쪽이 더 끌렸다. 하지만 동성애 영화를 과연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결국 라라 랜드를 골랐다. 모험보다는 안전빵이었다.



 영화를 기다리는 동안 울린 휴대폰. 익숙한 목소리. 병원에서 일하는 Joey였다. 6개월째 짝사랑 중이다. 그것도 남자 친구 있는 여자를. 짝사랑이라는 게 하는 본인은 애틋하고 가슴 아프고 할지 몰라도 옆에서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입장에 서면 지루할 뿐이다. 진전이란 게 없으니까. 전화를 하면 어떻게든 그 여자 얘기로 빠진다. 처음에는 지난 사랑을 떠올리며 공감하다가 1개월 정도 지나고부터는 질려버렸다. 매번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하고 '이번엔 진짜로 끝이야'라는 말을 열 번쯤 들으면 짜증까지 난다.


 "이번엔 진짜로 끝이야. 나 소개팅해 보려구. 친구한테 얘기도 해놨어."

 "응 잘해봐, 앞으로 열 번은 더 들을 것 같지만. 소개팅하는 여자는 예쁘냐?"


 그래도 이번엔 끝날 조짐이 보이는 게 같이 있을 때 쓰는 돈이 아깝기 시작했다고 한다. 16 완결 예정인 드라마를 30화까지 연장되는 걸 보고 있는 기분이다. 종영이 답이다.


 통화를 하다 보니 영화 시간이 되었다. 50분이나 통화했다, 남자 둘이. 조금 늦게 들어갔지만 자리를 잡으니 광고가 끝나고 영화 상영을 할 타이밍에 딱 맞췄다.


 꿈과 사랑, 진부한 주제를 다루는 특별한 영화였다.

 배경으로 펼쳐지는 해 질 녘의 언덕, 지루해 질려하면 나오는 음악과 춤, 실험적으로 느껴지는 연출기법, 이해가 되는 배우의 감정선과 이야기의 맥락이 특별함을 만들었다. 수작이었다. 나보다 네 살 밖에 많지 않은 감독인데 질투가 날 정도로.


 배우를 꿈꾸는 여자의 무대는 오디션이 이루어지는 작은 사무실 뿐이었고, 재즈 피아니스트인 남자의 연주회는 레스토랑 지배인의 지휘 아래 이루어졌다. 여자는 언젠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직접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길, 남자는 전통이 새겨진 장소에서 자신만의 재즈 바를 세우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의 꿈 앞에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서로의 눈이 마주쳤을 때, 그들은 사랑을 시작했다.



 현실과 꿈의 간극에서 오는 좌절을 서로의 사랑으로 위안하는 둘의 관계는 꿈같은 환상이었다. 환상으로 시작한 사랑에 현실은 시간을 타고 들어온다. 그들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했고 관계의 전환기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이별을 택했다.


 5년이 흐른 뒤 헤어진 그들이 남자가 운영하는 바에서 다시 눈을 마주쳤을 때 흘러간 장면. 어디에도 없지만 연애에는 더더욱 없는 그들의 '만약'이 한 편의 뮤지컬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눈 앞의 펼쳐지는 장면에 당황하다가 이내 황홀함에 빠졌다.




 나에게도 지난 연애의 '만약'은 있었다. 1년 전이었고 그녀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짝사랑이었다. '내가 거기서 이런 행동을 했으면, 이런 말을 했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라는 그런 생각. 친구가 자신의 짝사랑을 얘기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하나씩 떠오른다.


 영화를 전공했고 글을 쓰는 삶을 원했던 그녀. 막연하게 공기업에 들어가길 원했던 1년 전의 나는 지금에 와서는 영화 쪽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평생 글을 쓸 수 있는 삶을 원하고 있다. 이렇게 된 내가 그녀를 다시 본다면 지난날과 다른 전개를 맞이할 수 있을까?


"Where are we?"


 서로의 미래가 불확실의 절정에 달했을 때 여자가 남자에게 던진 질문.

 그리고 지금의 내가 그녀에게 묻고 싶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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