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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Jul 24. 2016

지금, 당신의 비일상을 함께해 줄 사람이 있나요?

영화 <데몰리션>

 뉴욕의 다리 위를 건너는 차의 행렬. 수많은 차 중 하나에 한 부부가 있다. 아내는 운전을 하고 남편은 조수석. 정장 차림으로 보아 아마도 평일. 아내는 남편에게 냉장고의 새는 물을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한다. 투자 일을 하는 남편은 말로는 알겠다고 하지만 머릿속엔 온통 업무뿐이다. 내일 있을 몇 십억 단위의 투자건에 신경이 쏠려 있다. 서로의 대화는 언제나 그렇듯 평행선을 그린다. 그리던 중 운전석 쪽으로 강한 추돌이 일어나 에어백이 터진다. 화면은 전환되어 밤의 응급실, 아내는 죽었고 남편은 거짓말처럼 멀쩡하다.


 비일상은 전조 없이 일상에 끼어든다.


 <데몰리션>은 일상에 빠져들어 자신과 주위에 무감각했던 남자가 갑차기 찾아온 비일상을 마주하은 과정을 그린다. 장례식 다음 날, 데이비스란 이름의 그 남자는 평소처럼 5시 반에 일어나 운동을 한 뒤 샤워하면서 면도를 한다. 셔츠에 멜빵이라는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하면 어색한, 그러나 월스트리트의 커다란 빌딩에서 일하는 곱게 빗은 백인이 하면 자연스러운 복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직장에 들어선 그의 발걸음은 자연스럽지만 그를 둘러싼 동료들의 시선은 부자연스럽다. 당연하게도, 다들 전날 그가 부인의 장례를 치른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업무 회의를 진행하는 그와 그를 바라보는 의아한 시선. 일상과 비일상의 균열이 겉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균열은 그가 모르는 사이, 그의 내부에서도 퍼져나간다. 다시 지난날 병원 응급실, 자판기에서 M&M 초콜릿을 뽑으려던 그는 고장으로 제품이 걸려서 안 나오는 걸 확인한다. 병원 카운터에 문의하니 자판기 회사 측에 문의하란다. 그는 휴대폰 카메라로 자판기 고객센터 연락처를 찍어둔다.


 슬프게도... 그녀가 죽었는데 괴롭거나 속상하지도 않아요.


 아내의 장례식이 마무리될 즈음, 방으로 온 그는 고객센터 앞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판기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한 편지의 내용이 같은 날 죽은 아내와 그의 이야기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객센터의 유일한 직원이 새벽 두 시에 그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다시금 전환된다.



 편지 보고 울었어요, 얘기할 사람은 있나요?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의 유일한 직원, 그러니까 카렌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흐릿한 삶을 살고 있다. 회사 사장과 동거하고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의 시간을 그와 함께하리라는 확신이 없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삶은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일상엔  내일도 오늘과 같으리라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 그녀는 대마초를 피우며 Heart의 Crazy on You를 듣는다. 성 정체성 혼란을 겪는 아들은 사회의 주류에서 멀어져 간다. 그런 그녀였기에, 새벽 두 시, 고객센터에 아내가 죽은 이야기를 쓰고 있는 그에게 전화할 수 있었으며, 갑자기 찾아온 비일상에 혼란스러워하는 그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카렌과 그녀의 아들과의 만남을 통해 데이비스는 일상에 묻힌 비일상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아내와 자신의 관계파헤치고 더 나아가 지나간 자신의 삶에 대해 파헤치고 분해한다. 항상 앉아있던 통근 열차 좌석에서 일어나 갑자기 비상용 급정거 버튼을 누른다. 회사의 삐걱거리는 화장실 문짝을 분해해 버린다. 철거일을 하는 인부들에게 돈을 줘가면서 일을 도와준다. '해체(Demolition)'에 몰입하는 그의 행동은 결국 일상에 파묻힌 자신을 꺼내기 위한 작업이다.



 반복은 지루해 보일지 몰라도 평안함을 가져다준다. 평안함은 대부분의 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의 끝에 위치하며 이야기의 해피엔딩은 'Happily ever after', 그 상태가 죽 이어질 거라 생각하게 한다. 그렇기에 일상 속 평안함에 취해있는 이들은 그 간극에 있는 비일상을 들여다 보기보다는 무시하거나, 깊게 파헤치지 않는다. 매일 드나드는 카페 주인이 그냥 웃으며 맞이해주길 바라지, 그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로 고생하고 있음을 알고 싶진 않다. 비일상에 호기심을 갖고 관여하는 순간, 불안함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 이어질 것 같은 일상 속에서도  피할 수 없는 비일상적 사건은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일어난다. 어떠한 전조가 없이 일어난 그 사건은 이때까지 자신을 구성해 온 상식을 무너뜨린다. 한 번 무너진 상식은 재구축할 수밖에 없다. 균열을 놔두면 시간에 지날수록 퍼져나갈 뿐이다. 데이비스 역시 처음에는 균열을 품은 채로 일상을 지속하려 했지만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카렌과 만나고 스스로 망치로 두들기며 부수고, 재구축을 시작했다. 재구축의 과정에서 그의 곁에는 카렌이 있었고, 그 과정을 거쳤기에 그녀의 아들이 가진 고민을 듣고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누구든 삶의 길 위에서 자신이 믿어 온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파괴는 언제나 재구축의 기회라는 점이다. 단순한 복원이 아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위한 재구축. 그렇기에 일상 속의 비일상에 대한 시선을 놓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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