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에 대해 생각하다

by 로칼두

A는 의자에 앉아 B의 관념을 생각했다. 관념은 본질에서 비롯된다. 비롯되었다는 말이 동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로 생각하면 된다. 부모와 자식이 흡사한 점이 있지만, 같지 않은 것처럼.관념과 본질은 다른 것이다. B의 관념은 A가 B를 만난 경험에서 기인했다. A가 B를 만날수록 B의 관념은 만날수록 명확해졌다.


A는 B의 관념을 생각한다. B의 관념은 B를 의미하지 않는다. B의 관념은 A에게만 해당된다. 다른 이들이 가진 B의 관념은 각기 다르다.따라서 B의 관념은 A에게만 있다. A의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B의 관념이 희미해진다. 시간이 지난다.점점 B의 생생함은 희미해지고 B의 특질만 남았다. 이제 A가 기억하고 있는 건 B의 관념이 아니라, B의 왜곡일지도 몰랐다. A는 두려웠다. A가 두려워하는 건 B를 상실하는게 아니었다. 두려워하는 건 A가 지닌 B의 관념과 B의 본질의 괴리감이었다. B의 관념이 왜곡되어, B의 본질을 맞이했을 때, 다가오는 낯섦이었다. 쉽게 말하면, A가 알고 있는 B와 실제 B의 차이에 대한 두려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A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본질을 알 수 있는가? 인식은 왜곡을 야기한다. 어떤 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온전히 받아들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인식은 왜곡을 야기한다. A가 주의해야할 것은 하나뿐이다. 관념에 대해 맹신하지 않으면 된다. 눈 앞에 B가 있다고 해도, B의 관념은 본질이 결코 될 수 없다. 죽을때까지 A는 B의 본질은 알 수 없다. 그러한 이유로 A는 슬펐다. 본질은 진리로 볼 수 있다. 진리를 아는 인간은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가? 진리는 행복을 담보하지않는다. 그저 아는 것에 그친다. A는 B의 본질을 안다고,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A는 그 사실을 깨닿고 만족해한다. 물론 B의 관념은 여전히 A를 괴롭게 한다. 이는 어쩔 수 없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A가 B를 맞이하는 수 밖에 없다. 관념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질 않는다. B의 진정한 모습을 맞이하는 것. 이것이 A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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