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정치

거리로 나온 사람들

by 로칼두

참 몇 달 간 시끄러웠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니, 북쪽에선 미사일을 쏘니,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어디까지 퍼졌는지.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핫하면서도 여전히 불길이 끊이지 않는 이슈는 '조국 사태'일 것이다. 지금 포털에 기사들만 봐도 그렇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된지 한달이 되었는데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정치 성향이 다른 집단끼리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검찰 개혁 VS 조국 사퇴라면서.


무엇이 진실일까?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들. 진보 측에서는 검찰과 언론이 '조국 죽이기'에 나섰다면서 필사적으로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워낙 의혹이 끊임없이 끊기지 않기에 몇몇 인사들은 조국 보호에 중도하차하기도 한다. 워낙 다양한 의혹들이 존재해서 언제 그 공부하는 틈틈이 그런 걸 다 해왔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은 때론 정치권에서 무의미하다. 진실 논쟁은 답을 찾는 문제이다. 답은 찾는 것은 학문에선 유용한 태도이다. 하지만 정치 세계에서 답을 찾는 건 의미가 없다. 답이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는 답이 아닌 것을 답으로 만드는 행위이다.


가령 1+1=2라는 클래식한 명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명제이기에 이 명제를 가지고 투쟁하는 것은 쓸모없는 힘의 낭비로 보인다. 혹은 투쟁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정치적 힘 겨루기가 아닌 조용한 카페나 연구실에서 펜과 종이를 통해 진행되는 학문적 투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이뤄지는 투쟁은 '조국은 법무부 장관의 자격이 있는가'의 명제를 둘러싼 투쟁이다. 진보 측은 '검찰 개혁'의 중요성을 들면서 그 이외의 보이는 것을 사소하게 만드는 시도를 한다. 지금 보도되는 수많은 의혹들. 이 의혹들이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괴물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괴물이 진짜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있는 것은 그 괴물의 실체 여부가 아니라 괴물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위협적인지였다. 아마도 조국 장관이 아닌 다른 후보자였다면 이 정도 의혹은 낙마시키기, 혹은 문재인 정부에서 인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괴물일 것이다. 의혹의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이 중요했던 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루고 있는 주제는 어떻게 여기는가에 대해서만 논의했을 뿐.


그런 이유에서 보면 지금의 갈등은 '조국'이라는 키워드로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이나 검찰은 당연히 그들의 목적에 맡게 '조국'이라는 인물이 어떤 잘못과 연관되었는지 밝히는 노력을 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마녀사냥처럼 보일수도, 누군가에겐 정당행위로 보일 것이다. 반면에 조국을 보호하는 사람들은 초반에는 조국과 관련된 의혹들을 반박하는 방식을 취하다가 어느새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화법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의혹들이 사사롭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많아서, 어떤게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축구로 비유하면 자신에게 어떤 선수들이 있는지 모르고 전술을 짜는 거랑 비슷하다. 그것만큼 위험한 건 없다. 그래서 전술을 바꾸기 시작했다. 검찰개혁의 정당성을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 .


그래서 최근 언론 보도에서 양 진영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오늘 유시민 작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의혹에 대해 이야기 하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자의 녹취록을 활용한 의혹 제기), 새로운 진실이 나온 것으로 보아 이 방식은 실패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시민 작가가 저 방식을 썼다는 것은 정말 패가 없어서 위험한 방법을 택했구나.


이러한 진실 논쟁과 별개로 사람들은 거리에 나오기 시작했다. 광화문을, 서초구를 가득 채우는 그들의 목소리. 이 목소리는 정치적 투쟁이다. 광우병 사태를 이야기했던, 노무현 탄핵을 반대했던,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냈던, 이들의 목소리는 각자 다르지만, 또 같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수보회의에서 '싸울 수는 있지만, 국론 분열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것은 워딩 미스이다. '국론 분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언어 프레임에 갇히기 시작했다. '국론 분열'이 맞든 아니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국론 분열'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기에 스스로 약점을 만든 것이다.


수많은 언론에선 거리의 정치를 비판한다. 정치적 공간에서 정치적 담화를 하지 못하고, 정치의 실종을 이끌었다고. 하지만 시민들의 힘은 놀랍게도 선거권보다는 거리에서 빛난다. 나 역시 문재인 대통령처럼 '국론 분열'이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워딩미스이기때문에 애초에 이 언어를 쓰진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정치의 탄생'을 말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거리에 나와서 떠드는 것은 하나의 문화이며, 하나의 정치를 의미한다.


여전히 우리의 정치가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긍정적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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