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죽음을 대한다는 것
갑작스럽게 오늘 오후.
이젠 어제가 되었겠네. 가수 구하라의 죽음이 비보로 들려왔다.
언론에선 이제 '베르테르' 효과로 단정짓고, 그 다음엔 누가 죽게 될지 관심을 환기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누가 죽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누군가는 늘 죽게 되기 때문에 그 이후에 관심을 가져도 충분하다.
더 이상 나는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할 힘이 남아있지 않으며, 더이상 내가 슬퍼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정확히는 내가 겪은 슬픔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그만큼 슬퍼할 힘은 없다.
젊은 나이에 사라진 설리와 구하라.
그제, 발을 잘못 더뎌서 실측사한 야구 선수
몇년 간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끝내 돌아가신 한 여성
어제까지 죽을지 몰랐지만, 오늘이 되니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분
모두 다 똑같은 죽음인데, 와닿는게 왜 이리 다른건지.
어떠한 삶을 살았던, 어떠한 죽음을 맞이했던, 똑같이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게 허무하다.
지금도 누군가는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누군가는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
누가 잘못된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