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한겨레의 보도를 시작으로, 올해 SBS와 국민일보의 연이은 보도를 통해 온 국민이 N번방·박사방의 실체를 알게 됐다. 조주빈을 비롯한 가해자들의 신상이 드러난 것은 3월~5월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7월을 눈앞에 둔 6월 29일이다. 지난해 11월 보도를 기준으로 약 8개월이 흐른 것이다. 이들의 언론 보도는 사건을 밝혀냈지만, 또한 이들의 보도는 단일 사건만을 밝혔을 뿐,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밝히지 못했다. 11월 보도 이후 바뀐 것은 무엇인가?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으며 대중들은 일부 자극적인 언론 보도에 현혹돼 중요한 것을 놓쳤다.
지난해 11월, 한겨레의 보도는 시사점을 준다. 우선 N번방의 존재를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알렸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한겨레의 보도를 이어 여러 언론사가 탐사보도를 했고 사실을 밝히는 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지난해 11월에 이미 보도되었음에도 큰 화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타 언론사의 후속보도와 4개월 정도의 간격이 있었다. 실제로 해당 텔레그램의 방에서는 한겨레 기사를 언급하며, 언론에서도 N번방을 제대로 취재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유는 한겨레의 보도에서 N번방이 기존에 존재하던 평범한 사이버 성범죄처럼 다뤄졌다는 점과 특수한 사건으로 다뤄졌기 때문이다. 분명 N번방의 존재는 위험한 성범죄이다. 하지만 한겨레의 보도방식을 보면, 단조로운 문체와 피해자를 가명으로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가상의 사건에 대해 전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따라서 독자들은 읽으면서 감정을 이입하기보단 건조하게 읽게 되었다. 또한 어떠한 큰 틀에서 사건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일부 사이버 범죄자에 의해 자행된 사건으로 여기게 하는 방식의 묘사였다. 따라서 한겨레 보도는 큰 파장을 주지 못했다.
그 이후엔 국민일보의 탐사보도였다. 이 보도는 N번방 사건을 뜨거운 감자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기여했다. 실제로 몇 명의 취재원들이 N번방에 들어가 어떠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지 세밀하게 묘사해 국민이 감정적으로 이입하게 했다. 하지만 이 보도 또한 한계점이 있다. 첫 번째는 세밀한 묘사를 통해 N번방의 범죄 수법을 묘사해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범행 수법을 공개했다는 점이다. 범행 수법을 공개하는 것은 국민의 감정을 끓게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존재할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행위이다. 두 번째는 피해자 중심이 아닌 가해자 중심의 보도라는 것이다. 한겨레의 보도는 피해자 중심의 보도였고, 그래서 정확히 어떤 식으로 범죄가 일어나는지 보도되지 못했다. 반면에 국민일보의 보도는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세운 보도였고, 어떤 식으로 범죄가 자행되는지 밝혀냈다. 이 보도를 중심으로 N번방의 보도는 이어지게 되었고, 피해자에 대한 관심은 가해자의 자극성에 묻히게 되었다. 세 번째는 남성과 여성 대결 구도로 변질시켰다는 점이다. 이 보도 이후에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것은 ‘N번방 26만명’이었다. 여성들은 피해자이며, 남성들은 가해자 혹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프레임을 씌우게 되었다. 후에 여성들이 가해자이며, 남성자들이 피해자인 N번방도 발견되었으나 이 프레임에서 어긋나 관심받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성별 이분법은 기존에 첨예하게 대립하던 남녀갈등의 연장선이 되었고, N번방이라는 범죄는 성별 프레임에 막혀 흐릿해졌다.
그 이후엔 N번방은 국민의 관심을 끌었고, 각종 언론이 앞다퉈 보도했다. 자극적인 보도가 주가 되었다. 더 이상 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왜 일어났는지, 피해자는 어떠한 상처를 받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치료할 지가 아니라 순전히 가해자 중심으로 보도되었다. 가해자가 어떤 외모, 성격을 갖고 있는지. 가해자가 포토라인에 서서 어떠한 말을 하는지. 언론은 가해자들을 영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피해자에 대한 대처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피해자가 몇 명인지 알지 못한 채, 가해자들의 신상만 알게 되었다. 언론은 마치 단두대인양 가해자들의 신상 중심으로 보도를 했다. 방송과 신문은 하루종일 가해자에 대해서만 떠들어댔다. 마치 N번방 사건이 특수한 사건이며, 앞으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N번방 사건은 단순히 일부 사람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사회에서 형성된 어긋난 욕망이 만들어 낸 사건이다. 또한 처벌은 언론의 몫이 아닌 사법부의 몫이다. 언론이 신상공개를 하며 단두대의 역할을 자처한 이유는 이 사건을 끝으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성급하게 단정지은 탓이다. 하지만 새로운 N번방을 만들 가능성이 있는 가해자와 구매자, 피해자는 여전히 존재한다. N번방의 계기가 된 SNS에 들어가봤다. 여전히 그곳엔 성을 구입하는 사람들, 성을 구경하는 방관자들, 성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에겐 N번방 사건은 그저 운이 좋지 않아 걸린 케이스이다.
N번방 사건이 보도된지 어느덧 8개월이 흘렀지만, 더 이상 후속 보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N번방의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를 모르며, 어떠한 치료를 받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는 N번방의 불씨가 존재하는지, 어떻게 꺼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N번방의 보도 전과 N번방의 보도 이후엔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여전히 N번째 피해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