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재밌어
일러스트와 웹툰은 같은 선상에 놓이는 게 아니다. 전혀 다른 형태의, 각자 자리가 확고한 예술 분야다.
일러스트레이터와 웹툰 작가는 가수와 뮤지컬 배우 정도의 차이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가수는 노래를 부르고 뮤지컬 배우는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를 해야 한다. 일러스트레이터는 한 장으로 사로잡는 그림을 밀도 있게 그려야 하고, 웹툰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스토리를 짜고 연출하고 흐름을 알아야 한다.
만화를 끄적이게 된 건, 보다 보니 만화의 방식이 머릿속에 기억이 남아서 자연스럽게 그렸던 것 같다. 가장 처음 그렸던 건 판타지의 한 장면이다.
▼ 처음 그린 만화
이때는 글씨 넣는 법도 몰라서 손 글씨로 썼었다. 손 글씨는 가독성이 나쁘다. 컷과 컷 사이를 띄울 생각도 못 해서 다 붙여놓았었다. 연출상 뭔가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중간의 한 컷을 비워두기까지 했다.
그다음에 그렸던 건 치질 수술(…)을 한 뒤에 후기 만화를 그린 것이었다. 총 13컷 있는데 1페이지 6컷까지만 첨부한다.
▼ 수술 후기 만화 1~6컷
그 뒤로도 생각나는 것을 조금씩 그렸다. 보통 4~5컷 정도였던 것 같다. 10컷 정도만 돼도 은근히 많은 내용이 들어가서 그만큼의 이야기를 생각하지는 못했다. 글 쓸 때 서사와 에피소드를 못 짰던 고질적인 문제가 웹툰에서도 나타났다.
어쨌거나 그리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계속 그렸다. 크로키 물론 하면 좋겠지만 하나하나 기초부터 쌓는 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부딪히면서 잘 안되는 부분이나 모르는 것들을 그때그때 공부하는 게 나에게 더 맞는 방식 같았다.
▼ 채색까지 해본 만화 (1)
만화 작법서도 몇 개 찾아봤는데 <캐러멜의 만화 콘티 작법서>와 <만화 만드는 법>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 웹툰을 그리겠다면서도 콘티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초보자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이 되어있었다. (그걸 적용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지만.)
▼ 채색까지 해본 만화 (2)
마지막 컷은 클립 스튜디오에 있는 3D 인형을 사용해 봤다. 인체를 잘 못 그리니 기술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뒤로도 개구리를 소재로 한 4~5컷짜리 병맛 만화를 많이 그렸던 기억이 난다. 채색까지 제대로 하는 건 별로 없었지만. 명암을 못 넣다 보니까 채색을 해도 그냥 단색을 붓는 정도여서, 눈은 높은데 성에 안 차다보니 채색을 안 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수록 더 열심히 연습해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