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그림 그리는 게 최고야
수업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오면 그것에 대해 피드백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를 지망한다면 더 체계적이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취미 단계에서는 재미를 느끼면서 지속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뭘 그리면 좋을까… 고민에 빠졌다. 덕질을 하면 그림에 재미를 느끼면서도 많이 그려서 실력이 쑥쑥 늘어난다고 들었다. 그럼 슬램덩크 캐릭터를 열심히 그리면 될 텐데? 아쉽게도 첫 수업을 기다리던 일주일 사이에 개인적인 일로 인해 슬램덩크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식어버렸다.
엄청 그리고 싶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임의로 몇 가지 상황을 설정해서 그림을 그려갔다.
▼ 첫 과제로 그려간 그림
피드백은 내 그림에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 필요한 만큼만 설명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얼굴 이목구비의 비율, 신체 비율, 약간의 해부학과 근육의 움직임 등에 대해 알려주셨다. 옆모습을 그릴 때 코끝과 턱을 연결하면 입술이 그 선 밖으로 안 나온다든지, 나이 들어 보이는 인물을 그리려면 턱이 더 쳐져야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부족한 게 보이는 부분에 대해 시연하면서 가르쳐줬다.
▼ 두 번째 과제로 제출한 그림의 피드백
그 밖에도 그때그때 필요한 단축키나 기능도 함께 알려주었다. 예를 들어 Ctrl+Shift를 누른 채로 그림을 누르면 그 그림이 그려져 있는 레이어로 바로 이동된다.
작업할 때는 좌우 반전을 자주 하면서 하라는 팁을 주기도 하고, 자료를 많이 찾아보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핀터레스트라는 시각 자료 사이트를 알려주셨다. (습관이 잘 들지는 않았다.)
부끄럽지만 또 금방 그만뒀다. 여름이 오고 날이 너무 더워지면서 축 쳐졌다. 수업도 한 달 반 만에 그만뒀다. 선생님은 나에게 그동안 가르쳤던 사람 중에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이 실력이 는 학생이라고 했다. 수업은 그만두더라도 그림을 계속 그리면 좋겠다고. 근데 그냥 한순간에 질려버렸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안 그리면서 짧은 서너 컷짜리 만화를 그리면서 지냈다. 근데 또 일상을 보내다 보니 문득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은 날이 왔다. 일러스트를 그리지는 않았고 한동안은 웹툰 쪽에 관심이 가서 웹툰 모작을 하거나 짧게 생각나는 만화들을 그렸다.
다시 쫌쫌따리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한 건 그해 겨울이었다. 어떤 상황을 그리면 좋을까 하다가 ‘새벽에 산 정상에서 무야호를 외치는 소년’을 그려보기로 했다.
▼ 일러스트 구도 구상해 본 것
이것저것 그려보다가 반 측면으로 외치는 게 마음에 들어서 그거로 정했다. 손 그리는 게 어려워서 직접 내가 자세를 취한 뒤에 사진을 참고했다. 처음에는 머리카락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서 부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선풍기 강풍으로 쐬고 있는 것처럼 완전히 휘날리게 됐었다.
▼ 수정 전 러프
이마와 머리카락의 경계가 보이는데 경계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었다. 유튜브에 머리카락 그리는 방법을 찾아봐도 손이 따라주지가 않았다. 정면 돌파하는 게 실력 향상에는 도움이 됐겠지만, 강풍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은 너무 부자연스럽다는 핑계를 대며 우회하기로 했다.
▼ 완성된 일러스트
포커스를 인물에게 맞춘 것처럼 배경 사진을 조금 흐리게 하고, 일출 느낌을 내기 위해 새벽에 햇빛을 받는 것처럼 팔 쪽에 노란색으로 넣어주었다. 종이 질감이 나도록 합성도 하고 나니까 나름 그럴싸하게 완성됐다. 명암 그림자 넣는 법을 여전히 몰라서 이 부분이 향상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인의 제안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동물을 그리는 데는 원래 흥미가 없었는데, 지인이 아는 분에게 반려동물 그림을 선물 해주고 싶다고 나에게 부탁했다. 처음에는 원하는 그림이라고 예시로 준 게 나랑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안 하려고 했었다. 근데 다른데 맡길 수도 있는데 일부러 나한테 용돈벌이 겸 맡겨주는 거라 고민 끝에 하기로 했다. 새로운 도전도 괜찮을 거 같기도 했고.
▼ 처음으로 그린 강아지 그림
그리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털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였다. 브러쉬도 적절한 것을 써야하긴 했겠지만 그 이전에 내 실력의 문제 같았다. 털을 선으로 그린 뒤에 투명도를 낮춰보기도 하고 에어브러쉬 같은 걸로 뭉개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하다가 어찌어찌 완성해서 전달했다.
그다음에도 털이 짧은 흰색 강아지 한 마리를 맡겼는데 도무지 못 그리겠어서 못 하겠다고 했다. 주문 제작은 역시 힘들어….
일부러 나에게 맡겨준 건데 못 하겠다고 포기하니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조금 들었다. 시무룩한 것을 조금 해소하기 위해 이번에는 고양이를 그려보기로 했다. 제대로 그릴 수 있을지도 아직 모르는데 일단 인터넷에 반려동물 그려준다고 글을 올려서 신청받았다.
▼ 신청받아서 그린 고양이 그림들
위의 두 개는 처음 신청받았을 때 그린 거고 아래 두 개는 몇 마리 더 그려서 연습해 보면서 익숙해진 뒤에 그린 거다. 그리다 보니까 합성하면 재밌을 거 같아서 또 해버렸다. 역시 취향을 가득 담아야 그림 그리는 게 재밌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