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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초 Aug 11. 2024

그림을 배우는 두 가지 방법

학원과 과외

학원에 가봤는데….


4월 말에는 학원을 알아봤다. 한번 즉각적인 피드백의 황홀함을 맛본 뒤로 배가 고팠다. 작은 도시라서 그런지 웹툰·일러스트 쪽 관련인 것 같은 학원이 딱 하나 있었다. 시 외곽에 살았기에 편도 40분가량 걸려서 시내까지 가야 했는데 부푼 가슴을 안고 기꺼이 운전했다. 


등록하기 전 안내로는 이곳은 만화과 입시를 준비하는 곳이라고 했다. 학원에 디지털 장비도 없고 디지털 그림을 다루지도 않는다고. 내가 원하는 것과 맞지 않으니 그때 그냥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기본기를 쌓는 데 도움 되겠거니 하면서 냅다 등록해 버렸다. 그나마 월 초에 한꺼번에 학원비를 받는 곳이라서 1주일 치만 내서 다행이었다. 


안내인은 연필과 도화지, 지우개, 칼이 필요하다고 데스크에서 판다고 해서 사 들고 강의실로 올라갔다. 뭐라뭐라 설명을 하고 따라 그리라고 했다. 첫날에는 인체 비율이 설명된 그림을 따라 그렸고, 둘째 날에는 해부학 설명과 함께 인체 도형화를 배웠다. 셋째 날에는 컬러 일러스트를 모작하고 수채화 물감으로 채색했다. 


너무 재미없었다. 기본기를 쌓는 중인 게 맞기는 할 텐데… 어딘가 모르게 거부감이 들었다. 첫날 수업이 끝나고 다니는 학생들 작품을 구경했는데 입시 만화와 내가 원하는 건 전혀 다른 것 같았다. 지루한 걸 참고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참을성 없고 그동안 재밌어야지만 했던 내가 그걸 묵묵히 견디기는 힘들었다. 결국 4일차 수업을 가지 않고 나는 탈주하고 말았다. 




그럼 과외는 어떨까?


학원은 탈주했지만 그림에 대한 피드백과 기초적인 공부의 필요성은 여전히 느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사이에 어영부영 5월이 되었다. 인터넷 사이트에 그림을 올려봤는데 초보자고 혼자 하기 막막하면 과외를 받는 것도 추천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네이버에 ‘그림 과외’라고 검색하니 ‘숨고’라는 사이트가 제일 상단에 떴다. 카테고리를 살펴보니 일러스트, 웹툰, 드로잉 등의 분야가 나뉘어져 있었다. 나쁘지 않아 보였다. 계정을 만들고 견적 요청을 넣었다. 


과외 선생님 개인에게 견적을 문의하는 건 줄 알았는데 양식을 작성하면 내 요청을 보고 선생님이 연락해야 상담이 가능했다. 내가 먼저 마음에 드는 선생에게 연락할 수도 있긴 한데 그 선생님한테 요청을 보내도 어쨌든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요청서가 공개되는 시스템이었다. 


견적 요청서를 작성하자 몇몇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다. 어떤 식으로 과외를 진행할 건지 프로필에 쓰여 있었다. 일단 쓸데없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혓바닥이 긴 사람들은 제외했다. 보통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는 경우와 학생 실력에 따라 다르니 1대1 상담 후에 정하겠다는 경우로 나뉘었다. 전자의 경우 선 쓰는 법부터 시작해서 기본 도형의 이해, 인체 도형화, 해부학, 명암, 채색… 이런 식으로 단계별로 진행됐다. 


나는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는 수업 말고, 상담 후에 맞춤형으로 하는 수업 위주로 맛보기 무료 강의 혹은 1회분 비용 내고 첫 수업을 들어보기로 했다. 수업 일정은 일주일 뒤로 잡았다. 원래 성격대로면은 바로 당일날도 듣고 싶다고 했을 텐데 첫 번째 선생님과 내 일정을 조율하다 보니 일주일 뒤부터 가능했다. 


나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수업을 듣기 전에 미리 작업 환경을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머지 선생님들은 일부러 일주일 뒤로 미뤘다. 대체로 프로필 설명에 ‘클립 스튜디오’를 사용하여 수업을 진행한다는 내용이 있었기에 클립 스튜디오부터 결제하고 설치했다. 


수업 방식은 보통 ‘디스코드’라는 프로그램의 화면 공유 기능을 이용하는 형식이었다. 나도 아이패드로는 수업 진행이 어려울 것 같았다. 12.9인치 크기의 제품을 가지고 있었지만 화면도 너무 작게 느껴졌다. 내 화면도 공유하면서 선생님이 공유한 화면도 보려면 PC를 이용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마침 듀얼모니터는 이미 가지고 있었다. 


없는 돈을 긁어모아 큰맘 먹고 액정 타블렛을 샀다. 앞으로 평생 그려야지, 라고 생각했다. 제품명은 신티크 22 DTK-2260이다. 워낙 종류가 많아서 어떤 것을 사야할까 고민하다가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제품에 대한 설명을 쭉 읽었다. 신티크 22가 다른 신티크 제품의 판매를 방해하는 수준으로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다고 해서 그거로 정했다. 


▼ 신티크 22를 설치한 모습 




타블렛 설치까지 완료했다. 수업을 들을 준비가 끝났다. 수업은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다. 어쩌다 보니 다 웹툰 작가에게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게 요즘 인기 많은 일반적인 웹툰 느낌의 작화와 퀄리티였어서 꼭 일러스트레이터한테 듣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첫 번째 선생님은 웹툰 한 작품 연재를 마친 후 현재 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들어본 작품은 아니었다. 맛보기 수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유료로 들었다. 1회에 5만 원. 이미 알고 있는, 레이어 생성법 같은 쌩 기초부터 하나하나 설명하고 사실상 기능 튜토리얼 수준이었다. 대화의 핀트도 묘하게 벗어나기까지 해서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수업은 맛보기 무료 수업이었다. 30분 정도 그림 시연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냐고 물으셔서, 슬램덩크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윤 대협을 그려달라고 했었다. (얼마 안 가서 덕심이 식긴 했는데 당시에는 아직까지 슬램덩크를 좋아했었다.) 


선생님은 러프 잡는 것부터 선화, 채색, 후보정 과정까지 전부 보여주셨다. (내 그림이 아니라서 첨부하기는 어려운 게 아쉽다.) 사실 설명을 해줘도 제대로 못 알아들었지만 신기해하면서 재밌게 봤다. 열의에 차서 가르쳐주시다 보니 30분가량 초과했었다. 대화 핀트도 그럭저럭 잘 맞고 수업도 괜찮을 것 같았기에 바로 정식으로 수업을 듣겠다고 했다. 


일단 질러버리고 나니 세 번째 선생님과의 약속을 취소해야 하나 싶었다. 어차피 안 할 텐데 괜히 서로에게 시간 낭비일 것 같기도 했다.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듣고 안 듣는다고 하는 거랑, 안 듣기로 결심한 상태에서 수업을 듣는 건 좀 기분이 달랐다. 안 듣는다고 하기가 괜히 신경 쓰였다. 


카페에서 반나절 고민한 끝에 그냥 들어보기로 했다. 이분은 수업이라기보다는 수업 듣기 편하도록 클립 스튜디오의 전반적인 설정을 작업하기 편하게 바꿔주셨다. 듣다 보니 세 번째 선생님도 마음에 들었는데 금전 문제로 아쉽게도 듣지는 못했다. 참고로 세 명 다 금액은 주 1회 2시간씩 한 달에 20만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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