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5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겪어보니 슬픈 말이었다.
투병하는 엄마를 둔 지인의 고백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마음이 미어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도 덤덤해져서 가끔 죄책감이 들어.”
“네가 그 시간을 지낼 동안 얼마나 아팠니. 덤덤해지지 않으면 네가 못 살아서 덤덤해지는 거야.”라고 그녀를 위로했었다.
내 어머니도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결국 돌아가실 때, 나는 조금 후련했다.
‘더 이상은 엄마가 아프지 않을 거란 안도’와 ‘내 일상을 되돌릴 수 있겠다는 후련함’이 있었으니까.
한때는 사랑하던 가족의 고통을 지켜보는 순간도 익숙해지고, 이별에도 덤덤해지는 것이 시간이 준 선물인가라고 여겼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었고, 지금도 어떤 순간들은 사무치나,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이젠 안다.
나한테 그 10년 동안 새끼가 둘이나 생겼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지만, 내 새끼인 보름 샤샤가 아프면, 매번 무너진다.
경험치가 있으니 덤덤해질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다.
아픈 부모를 간병하는 것에 지친 자녀를 대변하는 말은 있으나, 아픈 자녀를 간병하다 지친 부모를 대변하는 말은 없는 이유가, 이런 이유인 걸까?
보름이는 나와 만날 때 한쪽 옆구리 전체에 심한 피부병이 있었다.
펫샵에서 교환해 주겠다고 했지만, 아이를 약용목욕하고,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이며 지극 정성으로 돌봐 70일 만에 깨끗하게 낫게 했다.
내 품에 오자마자 아픈 아이는 더 소중해져 버렸다.
생후 6개월쯤 되었을 때는, 하루아침에 등에 큰 혹이 두 개나 생겼다. 그 크기나 모양이 심상치 않아 동물병원 여기저기를 다녔는데 어느 병원도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다만 아직 어려서 암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했지만, 떼어낸 조직은 무시무시하게 생겨 모양만으로는 악성종괴같이 보였다.
중성화수술도 하기 전에 등을 도려낸 보름이가 그렇게 아팠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보름이가 여름 내내 붕대를 몸에 감고 있어 물놀이도 못했다.
또 털이 많아 헥헥대면서도 나가면 신나고 즐거운 아기여서 그것조차 안타까웠지만 씩씩한 보름이라 우리는 잘 이겨냈다.
여름을 보내고 초가을에는 중성화 수술을 했고, 겨울이 되자 거짓말같이 또 시련이 왔다.
평소와 너무 같은 아침. 보름이 왼쪽 앞발이 돌아간 것 같았다. 자주 짝다리를 짚던 아기라 그것 마저 귀여웠는데 알고 보니 ‘전완골격기형’이었다.
너무 생소한 병명. 전완근의 두 개의 뼈대 중 한 개의 뼈가 자라지 않아 계속 자라는 뼈가 휘어지고 있어 양다리가 짝짝이고 클수록 틀어져 관절이 상하고 결국 장애가 된다는 병.
난 주저앉아 울었다.
마음을 놓을만하면 아프고 나을만하면 아픈 내 새끼.
에너자이져 보름이.
공놀이 하루에 300번씩 하는 보름이.
두 귀를 펄럭이며 웃는 보름이.
이탈리안그레이하운드랑 뛰어도 지지 않는 보름이.
내 새끼가 앞발 뼈가 자라지 않아 결국 못 걷게 될지도 모른다.
새끼가 아프면 어미는 가슴이 무너진다.
그래도 울고만 있을 수가 없다. 정신 똑바로 안 차리면, 내 새끼를 돌보고 구할 사람이 없었다.
해맑게 뛰고 놀이하는 강아지를 지켜주고 싶었다.
태어난 지 한 살도 안되어 뼈를 자르고 고정하는 큰 수술을 받은 강아지.
수술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붕대에 감겨, 이제 막 마취에서 깬 아기가 내 품에서 벌벌벌 떨었다.
핸드폰 진동처럼 떠는 강아지를 차마 꽉 껴안지도 못하고, 행여 수술부위가 아플까 쓰다듬지도 못하고 바라보던 심정은 마음에 구멍을 냈다.
보름이가 수술 후 약해지자, 평소 쪽도 못쓰던 샤샤가 보름이게 덤비기 시작했는데, 대꾸도 못하고 엎드려 보던 눈빛은 습기 가득 찬 구슬 같아
회복기간 동안 보름이를 엎어 키워, 나는 디스크가 생겼다.
디스크가 생겼지만, 그게 또 하나도 힘들지가 않았다.
병원에서 놀랄 만큼 빠른 회복력으로 보름이는 예상보다 한 달 먼저 달리기 시작했고, 병원 메인페이지에 “전완골격기형 수술 성공증례”로 소개되었다.
이제와 그때 일을 웃으면서 지인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내 새끼가 지금은 건강하기 때문이다.
다리에 철심을 박고도 웃으며 달리는 내 새끼.
보름이에 비해 샤샤는 건강했지만 자주 아무것이나 주워 먹어 장염을 달고 산다.
아이들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아프고 기운이 없거나 밥을 먹지 않는다.
이제 곧 3살이 되는 보름 샤샤이니, 내 경험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조금 아파도 그러려니 하고 무뎌질 만도 한데, 경험할수록 무뎌지는 다른 일들과 다르게 새끼가 아픈 것 같으면 두렵다.
아직도 새끼가 아프면, 나는 찢어진다. 난 출산을 안 하고도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개이득이다.
같이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사랑하는 마음은 커지고, 아끼는 마음은 깊어져 내 새끼 아픈 것 대신 아프고 싶을 만큼이라, 이런 경험은 무뎌지지 않나 보다.
이 마음 하나하나가 사랑의 증거다.
나보다 먼저 나이 들어 금세 아플 내 새끼들, 하루라도 어리고 건강할 때 더 많이 웃고 함께 행복하자.
사랑해. 보름샤샤. 엄마가 앞으로의 시간도 함께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