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03
우리가 사는 동네는 강아지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있고, 마당이 있는 집들이 많은 동네라 대형견도 많은지, 산책에서 대형견을 자주 만난다. 처음에는 대형견들을 보면, ‘멋있다’며 감탄만 했다. 다른 강아지들이 내 강아지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 강아지와 살게된 많은 보호자들이 나처럼 아무런 경각심이 없이 동거를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랬다. 보름 샤샤가 다른 강아지에게 공격성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내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오늘 산책 도중 만난 커다란 검은 개는 그런 순진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일깨워줬다.
보름이가 응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그 커다란 검은 개도 응가를 하고 있었고, 힘이 좋아보이는 남자가 리쉬를 잡고 있어 나는 그다지 긴장하지 않았다. 보름이가 쭈그리고 앉은 틈에 앞서가던 샤샤와 언니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었고, 나는 평소처럼 조용히 똥을 주으려했다.
그런데 그 순간.
샤샤가 우리에게 거의 다가올 무렵, 그 커다랗고 검은 개가 보호자의 손을 벗어나 샤샤에게 뛰어들었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나는 보름이 응가를 놓치고 “으아악~ 안돼. 안돼. 안돼”를 외쳤다.
언니는 샤샤의 리쉬를 낚아채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그 덕분에 그 개에게 물리지 않았다. 데롱데롱 메달려 간발의 차로 샤샤는 그 개에게 벗어났다.
검은 큰 개의 보호자는 너무 놀랐는지 그 개를 잡으려고 했지만 조금 늦었고, 리쉬를 잡으려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어렵게 잡아냈다. 보름이가 검은 큰개에게 왈왈거리며 맹렬히 짖어댔다.
”리쉬를 발로 밟았는데, 빠졌어요.“
그 남성분은 덜덜 떨리는 말을 더듬고 있었다.
언니는 “어머나, 진짜 미쳤나 봐”라고 소리쳤고, 나는 보름이를 안고 ”리쉬를 밟지 말고 발에 끼우세요!“라고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때 그 큰 개가 또 흥분하여 힘을 썼고, 그 큰 개의 몸통을 감싸고 있던 하네스가 빠졌다.
악! 하네스가 빠졌다.
검은 큰 개는 또 샤샤에게 뛰어가려다 주인의 저지하려는 큰 몸짓에 놀라 저 멀리로 뛰어갔다. 우리는 얼떨떨하고 너무 놀라서 덜덜덜 떨리는 다리로 보름이와 샤샤를 안고 있었다. 그 개가 싼 커다란 똥이 지나가는 차바퀴에 깔려 뭉개졌다.
그 개가 멀어지고, 우리 넷은 그 길을 벗어났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즐거워서가 아니고, 그저 그래도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자 나는 웃음이 났다. 너무 놀라면 사람은 때론 엉뚱한 반응을 보이나 보다.
평소 깨발랄한 샤샤는 금새 사고를 잊었다. 궁뎅이를 씰룩거리며 앞서 걷는 샤샤를 바라보니, 단단하게 착용된 하네스가 고마워졌다. 구입 당시에 언니는 비싸도 좋은 것을 쓰자고 했고, 나는 두 마리를 키우는 집에서 너무 비싼 애견용품은 부담스럽다며 망설였다. 보름 샤샤가 끌기는 하지만 힘이 그리 세지 않으니 다이소 하네스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샤샤가 하네스에 데롱데롱 메달려 공중을 가로질러 그 검은 커다란 개를 스쳐지나는 순간, 하네스 선택이 생명을 지킨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얇고 부실했다면 샤샤는 공중에서 버텨내지 못했거나, 물리지 않았더라도, 줄에 목이 졸렸을지 모른다.
산책하고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또 그 검고 큰 개를 만났다. 멀리서 그들이 보이자마자 우리는 보름 샤샤를 안아올렸다. 상대편 보호자는 검은 큰 개를 다리 뒤로 가리듯 세우고 있었다. 서로 가까워지자 그 분은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그 검은 큰 개는 보호소 출신이라 정확하지 않지만 추정으로는 아직 아기이고, 에너지가 넘치는데다가 며칠 산책을 나오지 못해서 흥분한 상태였고, 보름 샤샤를 보고 너무 놀고 싶었던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그렇지만 놀라게 해서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을 두서없이 더듬거렸다. 그가 진심으로 당황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몸에 묶는 줄을 사용하거나 리쉬를 이중으로 사용하는 것을 권했고, 그 보호자도 당장 알아보겠다며 언거푸 사과했다. 검은 큰 개의 하네스가 헐렁했다는 점도 이미 알고 있었다.
강아지들과 함께 사는 동안, 강아지 물림사고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SNS에도 넘쳐난다. 실제로 주변 지인들이 크게 다툰 경험도 있다. 나 역시 샤샤가 웰시코기에게 물리는 사고를 당해본 경험도 있다.
소형견의 보호자는 격분하다. ‘내새끼는 물리면 죽는다‘는 감정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무조건 피해자가 되는 위치에서 감정적으로 양보는 어려워진다. 극한의 감정표현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그랬다.
대형견의 보호자는 덮어놓고 죄인처럼 사과하기 시작하지만, 때로는 그 후 보상과 처리 과정에서 갈등은 폭발한다. 막말이 오가고, 감정적으로 번져간다.
사실 어느 한쪽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대형견의 견주도 마치 덮어놓고 가해자가 되는 반려견 문화 속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종특인데 어쩌라고” “합당한 보상을 한다고 했지, 원하는대로 준다곤 안 했다.”“차라리 죽여버리지 그럼 개값만 물어주면 되는데”
이런 말들이 대형견주들의 인성의 문제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모두가 감정적인 순간을 겪으면서, 피해자니까 감정을 쏟아부어 맹비난을 해도 괜찮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이제 산책 중에 만나는 대형견이 두렵다.
원칙적으로 다른 개와 인사시키지 않지만, 사고는 항상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기다린다. 순식간에 샤샤는 공중에 떴다. 그 큰 개에게 왈왈거리며 짖어대던 보름이와 간발의 차로 피한 물림사고.
그리고 그 순간을 벗어나게 한 것은 우리가 고심해서 선택했던 단단한 하네스였다.
그 검은 큰 개에게는 죄가 없다.
다만, 보호자가 남탓이 직업인 사람이였다면, 이야기의 결말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