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8년이 지나 글을 쓰는 이유

치유용 파일

by rocio

통증을 느끼며 살아온 지 대략 6년. 밝고 명랑한 성격이었지만 긴병에 장사 없다고, 밤새 통증은 없었나 몸을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감각을 내내 통제하지 못하니 점점 우울감이 깊어졌다. 올해 초 다시 한번 통증이 심해졌고 나는 또 앞날이 두려워졌다. 그래도 상담도 받고 책도 읽으며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그중 한 권이 ‘미라클’이라는 책이다. 잠재력과 긍정의 힘으로 병을 치유한다는 내용이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도 있었으나, 밑져야 본전.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어차피 하루하루를 살아갈 인간이라면 좋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이 책의 내용 중 ‘치유용 파일’이라는 것이 있다. 통증이 있을 때마다 나를 즐겁게 해 줄 자료를 만들어라. 내게는 그것이 바로 이번 산문, '슈크란 이집트'다.


8~9년 전 나는 교환학생을 핑계로 유럽과 이집트를 여행했다. 시험만 보면 Pass 점수를 주었으므로 출석보다는 인생 경험(?)에 초점을 맞췄다. 기숙사는 여행 중간중간에 쉬는 베이스캠프 정도로 사용하였다. 교환학생보다는 ‘교환여행’이 더 어울리는 단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대미는 학기를 마치고 한 달간 홀로 다녀온 이집트 여행이 되었다. 최근 ‘드로잉 살롱’이라는 그림 그리기 모임에 참여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집트를 그리고 샛노랗게 칠하고 있더라. 끝이 보이지 않는 블루홀, 수평선 너머로 지는 크고 붉은 태양, 바다보다 아름답던 사막.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그리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시기는 그 여행의 8년 후이다. 항상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인 이집트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고 우후죽순 널브러진 사진들도, 거기에 끼인 내 생각들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온 이후 겪은 슬럼프와 취업난에 그리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10년은 안 채우겠다며 드디어 펜을 든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8년은 그에 조금 못 미치는 기간이다. 내 기억도 점점 흐려지고 잃어간다. 다시금 기억하기 위해 모아놓은 입장권, 기념품, 일기, 사진, 그리고 페이스북 글과 댓글까지 모두 한데 모아 훑어보았다. 특히 페이스북을 볼 때 혼자 내내 큭큭거렸다. 나는 참 밝고 예뻤구나(외모보단 성격이).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였구나.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변했구나. 물론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밝은 사람으로 인식한다. 통증이란 게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저 혼자 예민해하지 그걸 티 내진 않는다. 매일같이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렇게라도 살아가야 하니까.


본 랭어 교수의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Counter Clockwise Study)’이라는 게 있다. 어르신들을 20년 전과 똑같은 상황에서 당시처럼 생활하게 했더니 실제로 1주일 만에 젊어졌다는 내용이다. 얼굴에 주름이 사라지고 허리가 펴지며 지팡이까지 던져버린 분도 있을 정도다. 이제 이 글을 쓰며 나도 내 시간 돌려보려 한다. 통증이 한 번에 사라질 순 없더라도 ‘치유용 파일’을 갖고 자주 보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싶다. 8년 전 기억을 더듬으며 쓰는 글이라 흐릿한 부분들도 있겠지만 그만큼 나 또한 겪고 성장한 모습이 있다. 8년 전의 생각과 느낌을 기억하는 동시에 8년이 지나 조금 더 성숙해진 시선으로 이 글을 시작해본다.


2020-10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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