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바다보다 아름다운

시와 사막 투어

by rocio

이집트에서 영어학원을 다니는 친구(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곱슬머리 외대생, 시험 붙고 여유롭게 여행하는 친구, 자유 영혼(지금은 프랑스에 있다지), 세계 여행자, 그리고 어쩌다 이곳에 떨어진 나. 각자의 인생을 살던 우리가 사막투어 크루가 되었다. 좋은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과는 이집트 여행 내내, 그리고 한국에 와서까지도 연락을 했다. 심지어 지금까지 소식이 닿는 사람도 있다. 해외만 나가면 인복이 많다.


사막에 대한 기대가 적었다. 그저 큰 모래사장이겠거니 했는데 내 작은 기대가 미안할 정도로 놀라웠다. 후기를 읽고 오지 않아 더 그랬다. 예상치 못했을 때 더 큰 즐거움이 있다. 지프차로 빠르게 모래 언덕을 타는데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다. 그냥 차인데 언덕을 올라갔다가 내려올 땐 살짝 무중력까지 느꼈다. 어떤 놀이기구보다 재밌었다. 또 타고 싶다.


이날은 바람이 불었다. 원래 바람이 불지 않는 게 더 좋은 날이라는데, 나는 오히려 바람 덕에 사막이 아름다웠던 거 같다. 모래 때문에 눈을 거의 못 떴지만 바람 부는 사막에 또 언제 올까. 바람을 타고 모래 물결이 잔잔하게 생겼고 그 위로 모래 구름이 얕게 깔렸다. 사막이 바다보다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핫 스프링
콜드 스프링

핫 스프링콜드 스프링. 그저 재밌다. 이때의 사진을 보면 내가 정말 신나 있다. 물속에 들어가 탬버린은 왜 치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즐거웠다. 모든 걸 잊는 느낌이다. 마지막엔 샌드보드를 탔다. 샌드보드가 더 빠를 거 같았는데 훨씬 느리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모래를 뒤집어써도 참 행복했다. 때론 무언가 많은 것보다 사막처럼 아무것도 없는 게 더 좋다. 너무 많이 가지면 복잡하려나.


신나게 놀고 천막으로 갔다. 사막에서의 1박이다. 천막 안에는 담요가 조금 깔려있다. 어떤 천막에 들어가면 마쓰리들이 이집션 음악에 박자를 맞춰 놀고 있다. 화장실은 노상 수준이지만 점차 적응해간다. 저녁은 치킨이다. 특별한 음식은 아니지만 이런 데서 먹으면 꼭 맛있다. 우리 크루 말고도 사막투어에 한국인이 꽤 됐다. 이날은 12월 31일.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날이었다. 첫해를 사막에서 보는 것도 큰 의미일 수 있겠다. 나는 그저 우연히 날짜가 맞았지만.

하룻밤 묵을 천막
사막의 치킨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없지만 밤이 깊을 때까지 모닥불 주위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춥다는 말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사막의 낮이 뜨거운 만큼 해가 지면 확 식는다. '여행 준비를 좀 해올 걸.'이라고 생각한 가장 큰 순간이다. 모두 야외 취침을 위해 침낭이다 뭐다 해서 많이 가져들 왔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리털 패딩과 수면양말뿐. 너무 추워서 양말을 손에 꼈다. 하루가 즐거워 에너지를 쏟은 만큼 추워도 잠이 들더라. 어두운 천막에서 뭔가 끌어당겨 잠이 들었다. 나처럼 침낭이 없던 세계 여행자 언니는 모닥불 바로 옆에서 모래를 파고 자서 덜 추웠다고 했다. 나는 모닥불과 떨어져 있는 천막에서 밤새 오들오들 떨었다.


아침에 일어나 깜짝 놀랐다. 발에 감각이 없었다. 거울을 살짝 보니 몰골이 가관이더라. 목욕탕에 불이 나면 얼굴만 가리듯,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을 가리고 빨리 마을로 가자고 했다. 잘 자고 아름다운 첫 해를 사막에서 바라보며 소원을 빈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첫해고 나발이고, 해는 매일 뜬다며 어서 안식처로 돌아가길 바랐다.


이렇게 사막에서의 1박은 끝났다. 다행히 숙소에서 내 몰골은 돌아왔고 감각도 정상이 되었다. 정말 추웠지만 그 아름다운 사막을 잊지 못한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이유 없이 신났던, 활짝 웃던 내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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