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는 살람(سلام)이었다.(‘살람’은 ‘평화’라는 뜻으로, '인샬라'처럼 인사로도 쓰였다.) 유유한 동키가 지나다니며 달그닥 달그닥 소리를 내는 곳. 자그마한 동키를 볼 때면 마음 한켠이 편하고 느긋해졌다. 사막 관광을 위해서 왔지만 여느 시골 마을처럼 소박하고 정겨웠다.
어린 아이들도 동키를 탄다.
住
가장 먼저 숙소에 갔다. 신식이지도, 깨끗하지도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불편할만한 외관이었지만, 유럽에서 10인실 도미토리에도 익숙해져 있던 터라 내겐 오히려 넓고 과분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집트의 침대는 좀 딱딱하다. 펴진 상자를 중간이 살짝 봉긋하게 쌓아 올려 그 위에 담요를 다시 겹겹이 깔아놓은 느낌이었다. 여행 내내 침대는 무엇으로 만들었나 궁금해서 담요를 들춰보고 싶었는데 항상 피곤해서 그냥 잤다. 시와의 숙소는 한화로 1박에 3천 원 정도. 이 정도면 괜찮다 했는데…, 그랬는데…, 화장실을 본 순간 좀 당황을 했다. 화장실 칸 안에 샤워기가 있었던 것. 좁은 화장실 한 칸, 변기 바로 앞에 서서 샤워를 해야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이집트 숙소 중 딱 이 곳만 이랬다. 사막 지역이라 모래바람이 불어서 꼭 씻어야 했지만 그 어색한 느낌에 첫날은 도전 실패. 공중화장실에서 샤워를 해야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둘째 날은 어쩔 수 없이 꾹 참고 샤워를 했다. 생각보다 할 만했다. 그 뒤론 매일 잘 씻었다. 이렇게 하나씩 내려놓는 건가 보다.
食
이집트식 식사
시와에서의 첫 식사. 가까운 나라 중국음식은 그렇게 안 맞더니, 먼 나라 이집트 음식은 참 잘 맞았다. 공기의 모래가 살짝살짝 씹히긴 했지만 훌륭했다. 우리가 간 곳은 East West, 동서 식당. 저렴하고 맛도 괜찮아서 인기가 있었다. 이집트 음식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에,
“나 뭐 먹어?”
“샥슈카 먹어.”
동행 중에 이집트에 꽤 체류한 사람들이 있어서 물어보니 바로 샥슈카(شكشوكة)라는 말이 나왔다. 그들의 도움으로 샥슈카와 이집션 수프, 고기, 빵 종류들을 시켰다. 샥슈카. 사진만 봐도 맛이 없을 수 없는 비주얼이다. 달걀과 고기는 그냥 진리 아닌가. 그런데 맛이 잘 생각이 안 났다. 분명 맛있었을 텐데….
“엄마 내일 요리해먹자. 아랍 음식.”
검색해보니 '샥슈카'는 'Egg in Hell'로도 불리는 이슬람 음식이었다. 지옥에 빠진 달걀인가. 이름도 잘 붙였다. 나는 처음 듣는데 친구는 회사 급식에도 나온다고 했다. (나만 몰랐나.) 샥슈카를 파는 곳이 있긴 한데 만드는 법이 간단하고 특별한 재료가 필요하지 않아 직접 해 먹기로 했다.
지옥에 빠진 달걀
'샥슈카'는 '뒤섞인 것'이라는 뜻이다. 집에 있는 것들을 섞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같이 먹을 빵을 사러가는 김에 마트에 들러 재료를 보충하기로 했다. 바게트, 토마토, 파프리카, 애호박, 송이버섯만 샀으면 됐는데, (사실 애호박과 송이버섯도 안 사도 됐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돈을 아끼려면 마트에 가지 말라고. 샥슈카에는 필요 없는 짬뽕도 사고, 커피도 사고, 토르티야도 사고, 버터도, 파도 사서 어느새 장바구니가 가득 찼다. 엄마와 가득 짐을 들고 가며 하는 말이,
"사 먹는 게 싸겠어."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튼 우리는 샥슈카를 만들기 시작했다.
애호박 1/4개, 송이버섯 6개, 표고버섯 4개, 양파 1/2개, 빨간 파프리카 1/2개, 노란 파프리카 1/2개를 먼저 다졌다. 얼마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종류가 많아서 그런가 썰어놓으니 수북했다. 그동안 엄마는 사온 토마토 3개를 십자 모양을 내서 물에 끓였다. 이래야 껍질이 잘 까진다. 끓인 토마토를 껍질을 벗겨 다지고, 해동한 베이컨을 가위로 큼지막하게 잘랐다. 고기가 적은가 해서 다이어트하려고 사서 결국 냉동실에 처박아 둔 야채맛 닭가슴살도 뚝뚝 썰었다. 재료가 은근히 많다 보니 써는 게 일이었다.
이제 샥슈카. 다 섞어 볶다가 토마토소스를 넣으면 얼추 된다. 먼저 올리브 오일에 다진 마늘을 넣고 볶다가 양파를 넣고 살살 젓는다. 그리고 썰은 야채들을 다 넣어버리고 숨을 좀 죽인 뒤, 고기를 넣었다. 재료들이 어느 정도 익으면다진 토마토와 페이스트를 부었다. 집에 아라비아따 토마토소스가 있었는데 살짝 매콤해서 더 맛있었다. 그리고 우유 1/2컵을 넣어 부드러운 맛을 냈다. 내가 우리 엄마를 '큰손'이라고 가끔 하는데 양을 많이 잡는다. 얼마 안 된다 생각했는데 프라이팬이 가득 찼다.
"절반은 덜어 내야 겠다."
절반을 덜어 냈는데도 한 3인분 양은 나온 것 같다. 양 조절을 잘해야 한다.
마지막 단계는 달걀과 모차렐라 치즈를 익히는 일이다. 인원수대로 달걀을 퐁당퐁당 깨준 뒤, 모차렐라 치즈를 탈탈 털어 골고루 붓는다. 여기서 포인트는 흰자는 좀 익어도 되지만, 노른자는 살짝만 익어야 한다. 어느 블로그에는 2분, 어떤 블로그에는 8분이라고 쓰여있어서 한 5분 정도 뚜껑을 닫고 기다렸는데 좀 더 익었다. 2~3분이 적당한 것 같다. 그래서 슬프게도 달걀 하나는 익사했다. 올라와 있어야 예쁜데…. 그동안 엄마는 오븐에 바게트를 구웠다. 이것도 오븐에 나온 시간대로 기다렸으면 다 탈 뻔했다. 한쪽은 괜찮은데 다른쪽이 좀 까맣다. 요리는 아기 돌보듯 한눈을 팔면 안 된다. 요리는 타이밍이다.
지옥에 익사한 달걀
한국에서 만든 샥슈카가 더 용암 지옥에 가깝다. 사실 맛은 생각하는 딱 그 맛이다. 서양 요리는 보통 볶거나 끓이다가 토마토소스를 넣으면 끝인 게 많다. 달걀이 조금 더 익었지만 맛있었다. 노른자를 자르면 진한 노란색이 살짝 나오다 멈춘다. 이런 묽지도 팍팍하지도 않은 찐덕한 노른자를 좋아한다. 나는 피클을, 엄마는 오늘 담근 파김치를 올려서 맛있게 먹었다. 비주얼도, 맛도 조금 달랐지만 이집트를 떠올리며 엄마와 함께 요리를 하는 즐거운 주말이었다.
衣
이집트에 왔다면 하나씩 사기 좋은 것이 있다. 바로, '커튼' 혹은 '가린다'는 뜻의히잡(حجاب). 아랍스러운 무늬의 다양한 천들. 흰색, 녹색, 파랑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이 있었지만, 흙의 나라에 온 만큼 황토색을 골랐다. 내 겉옷이 노란 계열이 많아 잘 어울렸다. 히잡이 도통 예쁘게 안 매져서 그냥 훌훌 둘러 묶었다. 가끔씩 잘 매는 사람을 만나면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혼자서는 잘 못 맸다. 천 한 폭인데 정말 유용하게 썼다. 현지인처럼 히잡으로,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한 가리개로, 허전한 목엔 스카프로, 추울 땐 이불로, 어깨에 휙 둘러 망토로, 그리고 레깅스 위에는 치마로도 사용했다. 분명 이집트 여행의 만능키였다.
동행 중 한명이 묶어준 히잡
나는 여행객이라 주로 패션 아이템으로 썼지만, 현지인들에게 히잡은 온전히 생활이었다. 이집트는 국교는 따로 없지만 인구의 90%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그들의 경전, 코란에는 여인은 밖으로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다. 여성을 보호한다는 것인데 코란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정도는 변할 수 있다. 수도로 올라갈수록 히잡을 쓰지 않은 마쓰리아(이집트 여자)를 종종 볼 수 있고 종교의 다양성도 인정되는 편이다.(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10%는 주로 기독교를 믿는다.) 이집트는 일부다처제도 허용되는데 수도와 가까울수록 1부 1처로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시골과 사막지역으로 갈수록 일부다처가 많고 히잡으로 온몸을 감싸는 여인들이 늘어난다. 시골이자 사막인 시와의 거리에서는 도통 마쓰리아를 볼 수가 없다. 가끔씩 본다면 몸은 물론 손가락과 눈까지, 전신을 모두 까맣게 가린 모습이 많았다. 이렇게 눈까지 망사로 다 가리는 것을 '부르카'라고 하는데, 죄송하지만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시와를 여행하다가 우연히 귀여운 꼬마를 만났다. 아주 예쁘게 웃는 여자 아이였다. 서로 말은 안 통했지만 우리를 멀지 않은 집 앞까지 데려갔다. 낮은 담이 둥글게 둘러진 집이었다. 문이 없는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아 내 손에 매니큐어를 칠해줬다. 서투른 솜씨에 매니큐어가 삐죽삐죽 나와있었고 사실 좋아하는 색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도 추억이라며 여행 내내 지우지 않았다. 이대로 한국까지 갔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손이 이게 뭐냐며 이니스프리로 데려가 직접 지워주었다.(내가 창피했나.) 그렇게 나의 추억은 타의적으로 지워졌다. 나중에 사진들을 모아보니 손톱이 예쁘진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이야기가 있는 손톱이었다.
꼬마가 칠해준 손톱
아이와 꽁냥꽁냥 놀고 있는데 담장 안에 아이의 엄마가 보였다. 순간 놀랐던 것이 시와에서 마쓰리아의 민낯을 처음 봤다. 아이와 놀고 있으니 엄마가 나와볼 만도 한데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몸을 가리지 않으면 담장 밖에 나갈 수가 없던 것. 그저 여자아이보다 더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우리를 보며 수줍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야 생각 없이 매일 나가는 문턱이 저 여인에게는 금기겠구나. 나는 이렇게 쉽게(그녀보다는 쉽게)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왔는데, 이런 경험을 평생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 한켠이 아렸다. 그녀가 불행할 거라고 단정 지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보다 더 큰 행복을 누릴 수도 있다. 종교가 주는 안정감과 운명에의 순응이 형식적인 자유나 좌절보다 더 큰 축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마음이 시큰했던 것은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기회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코란에서 말하는 '보호'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인지. 그녀를 보고 있자니 현대의 해석이 좀 더 유해질 순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잡. 사실 매우 어려운 문제다. 누군가는 종교적 신념이라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유의 억압이라고 한다. 이집트인들에게 히잡은 우리가 그냥 바지에 티를 입듯 자연스럽게 걸치는 것일 텐데 그것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마쓰리아가 진정 원한다면 그녀가 세상을 보고 배울 기회는 주어졌으면 한다. 꼭 나의 경우처럼 먼 나라를 직접 가는 것이 아니더라도 문 밖 세상이라도 자유롭게 다녔으면 한다. 그리고 여인의 몸이라서 전신을 가리는 것보다는 좀 더 캐주얼하고 자연스럽게 착용하는 것이 더 멋져 보였다. 그녀가 넘을 수 없는 낮지만 묵직한 울타리 앞에서, 정답을 쉽게 내릴 수 없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자니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