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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코크 Mar 28. 2023

성인 ADHD 진단을 받다.

회사를 나와서야 알게 되었다. 

15년도 더 된 옛 기억 속에 어렴풋이 생각나는 남자아이가 있다. 

운영스태프로 참가했던 해외영어캠프에서 만났던 초등학생 남자아이. 


단발머리를 한 귀여운 외모의 그 녀석은 무척이나 주의가 산만하고 유독 말을 안 들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 녀석은 ADHD가 있다고 들었고 나의 첫 ADHD 환자와의 만남은 그렇게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 가만히 있질 못하고 매우 산만하고 주의집중을 잘 못하는 사람. 





당시 대학생이었던 난 시간이 한참 흘러 사회생활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겼다. 

그렇게 평범한 중년이 되어가는 듯싶었다. 


그러나 난 사실 평범하게, 물 흐르듯 살기는 싫었다. 

조금만 더 나이를 먹으면 회사라는 굴레를 벗어날 자신이 없을 것 같았다. 

우연히도 회사를 그만둘 명분(?)이 생겼고 월급 대신 내가 스스로 돈을 벌어보기로 했다. 



문제는 그렇게 혼자 일을 하면서 시작이 되었다. 


조직을 뛰쳐나와 홀로 남으니 

보고를 할 필요도 없었고, 

업무일지를 쓸 필요도 없었고, 

의사결정을 내려달라고 재촉하는 부하직원도 없었다. 



혼자서 일을 하니 하기 싫은 일은 미뤄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고, 

업무를 할 시간에 무언가에 꽂히면 엉뚱한 것을 몇 시간씩 하기도 하였다. 



왜 난 집중을 못하고 눈앞에 일을 쳐내지 못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 속해 있을 때는 해보지 않은 고민이었다. 



답답함과 고민이 쌓여가던 어느 날, 

아이의 문제로 병원을 다녀오고 전해준 아내의 어떤 메시지에 난 확신을 하게 되었다. 



'내가 ADHD 인 것 같아.' 


유튜브에서도 성인 ADHD에 관련된 영상도 찾아보고, 관련 셀프테스트도 해보았지만 결과는 긴가민가, 알쏭달쏭했다. 


유튜브를 본다고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근처 정신과에 전화를 걸었다. 


"저, ADHD 검사를 받아보고 싶은데요."


다음날 방문했던 병원에서는 3가지 정도의 검사를 했던 것 같다. 



- 컴퓨터 앞에서 30-40분 동안 진행이 되는 종합주의력검사 (CAT라고 부르는 것 같다)

- 머리 및 손목등에 집게 따위를 붙이고 하는 뇌파검사  

- 그러고 상대적으로 평범했던 문진표 작성



그리고 마주한 의사 선생님은 어떤 계기로 ADHD 검사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를 묻더니 대뜸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 그리곤 전에 다녔던 직장과 하던 일을 물었고, 심지어는 학부는 어디를 나왔는지, 전공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속으로 아니 내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를 왜 묻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검사 결과지를 내밀며, 난 ADHD가 맞고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ADD에 속한다고 하였다. 


ADHD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에서 hyperactivity (과잉행동)이 빠진 소위 말하는 조용한 ADHD라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high-functioning ADHD로 부른다는 설명도 해줬다. 

하이 펑셔닝 ADHD, 즉 ADHD가 있지만 학교에선 공부도 잘했고 대학도 잘 가고 직장도 준수한 곳에 다니는 사람들이다. (참고로 난 하이펑셔닝은 아니다. 미드펑셔닝이라고 해두자) 


그러나 이런 하이펑션닝 ADHD는 남들이 보기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없는 집중력을 끌어내서 일을 해야 하기에 늘 긴장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라고. 


순간 진료실에서 즙을 짜낼 뻔했다. 

그동안 내가 스트레스를 매우 많이 받고 있었구나... 

그래서 내가 맘 편히 쉬지를 못했던 것이구나... 

난 내가 힘든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힘들었을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무언가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나의 눈 밑을 가리키며, 

그 눈 밑에 다크서클도 과도한 긴장과 신경을 쓰기에 생긴 겁니다. 

ADHD 치료를 받다 보면 그 다크서클도 없어질 수도 있어요. 

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광명을 찾은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면, 

사실 난 회사에서 꼼꼼하단 평가를 제법 들었던 것 같다. 

챙겨야 할 일을 챙기지 않아 사고를 친 기억도 거의 없고, 

핵심인재는 못되었어도 나름대로 회사는 잘 다녔던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아마도 조직 내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지켜야 하는 마감기한이라는 게 있고 보고해야 할 상사가 있고 챙겨야 할 부하직원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하다 보니 모든 게 다 설명이 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때 왜 그랬고 어떤 마음이 들었었는지... 


주말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했었는데 그걸 보고 사람들은 부지런하다고 나를 평가했지만 사실은 ADHD 영향이 컸었다. 




콘서타를 처방받고 난 뒤 의사 선생님은 2가지 숙제를 내줬다. 


하나는 추천해 준 ADHD 책 2권을 읽어보라는 것. 

둘째는 명상을 하라는 것.


ADHD는 주의력 문제가 있는데 명상을 통해서 주의자각 훈련을 하면 상당히 개선을 시킬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병원을 나오는데 무척이나 담담했다. 

아니 오히려 나의 삶에서 짙은 안개가 걷히면서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설명되지 않던 게 설명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의 성인 ADHD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성인ADHD #주의력결핍 #ADHD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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