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진단 후 드는 생각
ADHD 진단을 받고나니 두 가지의 상반된 마음이 교차했다.
학창시절의 내 모습과 기억들이 영화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크게 말썽을 피운 적도 없었고 신나게 놀아보지도 못한 그저 그런 평범하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난 조용한 ADHD니깐)
청소년 시절에는 지속적으로 우하향 하는 성적으로 꽤나 고생을 했었는데 난 그저 공부머리가 없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책상에 붙어있는 시간도 적지 않았는데 왜 난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학원비를 날려댔을까?
만약...
나의 성향을 알아보고 도와주는 사람을 어렸을 적에 만났더라면 나의 학창시절은 좀 달랐을까?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면 거짓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부정하기 힘든 진한 아쉬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ADHD란 단어 조차 흔치 않던 시절이었고,
ADHD약의 보험적용도 안되던 시절이었으니 알아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그 원인을 찾았으니 다행이란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몇 년 일찍 성인 ADHD 진단을 받았더라면?
4~5년 전까지만 해도 '성인 ADHD'는 익숙치 않은 키워드였다.
최근 1~2년 사이,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고, 코로나로 인한 정신질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중의 ADHD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 같다.
아마도 성인 ADHD 판정을 몇 년만 일찍 받았더라면 나는 자연그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확신이 서질 않는다.
분명한 것은 두 명의 인플루언서 덕분에 내 마음에 ADHD에 대한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영향력으로 난 1~2년 전부터 ADHD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ADHD와의 동거 준비가 시작된 것 같이 느껴진다.
이 분을 모르는 분도 있겠으나 서점 가는 걸 좋아하는 분이라면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책을 아실지는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 송희구 작가는 사실 부동산 투자자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진 블로거였는데 블로그에 연재하던 이야기가 인기를 얻고 책까지 내게 된 분이다. (안읽어보신 분은 꼭 읽어보시라. 정말 재미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담을 위주로 자전적 소설로 쓰여진 이 책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하지만 나의 흥미를 불렀던 것은 작가 자신이 지금까지 겪었던 방황과 어둠의 시간들을 담담히 3인칭 관점에서 풀어낸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나 주인공이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었고 ADHD 진단을 받는 이야기가 나온 대목이 있다.
한 팟캐스트에 들었던 뒷 이야기는 ADHD의 무게감을 엿볼 수 있었다.
작가는 자신의 책이 출간이 될때까지도 자신의 친한 친구들 조차 자신이 ADHD가 있고 지금껏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담담히 고백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ADHD의 이미지가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그때가 성인 ADHD 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본 때였던 것 같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나도 그 중 한명일 줄은 몰랐다)
아무튼 송희구 작가 덕분에 난 성인 ADHD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ADHD가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매력적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는 정말이지 샘이날 정도록 글을 잘 쓰는것 같다)
(송희구 작가 브런치와 블로그)
https://brunch.co.kr/@lselectric/23https://blog.naver.com/hkssong1/222334512660
미국 소아정신과 의사이면서 본인이 ADHD임을 고백하신 지나영 선생님 덕분에 ADHD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이 된것 같다.
사실 나도 처음엔 ADHD를 가진 정신과 의사가 있단말야? 라고 신기하게 생각을 하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ADHD가 있는 의사 선생님이 제법 있었다)
지나영 교수님의 메시지가 큰 도움이 되었던 이유는
소아정신과 의사로서 ADHD를 어떻게 이용할지 가이드를 잘 해주었고,
스스로가 ADHD를 이용해서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시킨 롤모델이 되었기 때문이다.
ADHD는 질환이 아닙니다. ADHD는 성향입니다. - 지나영 교수
좀 더 정확하게 말하지만 ADHD는 질환이 아닌 장애(disorder)로 분류 된다고 한다.
아무튼 ADHD는 질환이 아니라 성향이라고 격려의 메시지를 던진 지나영 교수의 메시지는 나에게 큰 인사이트를 남겨주었다.
이제라도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으니 내가 가진 장점들을 어떻게 더 잘 이용하고, 단점들을 보완할 방법이 없는지 그 정답은 없으나 흥미로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지나영 교수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inayoung2020/222125511171
고백하자면,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을 그리 잘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몇년 전부터
나와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해결하려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 ADHD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난 핸디캡이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능력이 훨씬 더 향상이 된 것 같다.
특히나 마음이 아픈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나도 많이 바뀌었다.
아파본 의사가 아픈 환자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고,
힘들어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듯,
내가 가진 ADHD라는 성향이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생긴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어렵고 힘든 과정들은 나를 더 성숙하고 깊이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ADHD와의 동거도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 중 하나로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