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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코크 Apr 04. 2023

내가 진짜 ADHD가 맞기는 한 걸까?

ADHD 셀프 진단 테스트 이야기 

주변 지인들 대부분은 내가 ADHD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딱히 숨긴 건 아니었다. 

말할 기회가 없었을 뿐.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제가 지금 허리가 아파요~! 하지는 않지 않는가? 

나의 일상을 시시콜콜 SNS에 공유하는 스타일도 아니라 더욱 말할 기회가 없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할 친구도 별로 없다) 



진단을 받고 열흘쯤 되었을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얘길 꺼냈다.

 

나 ADHD 진단받았어... 




 

아내를 제외하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말한 순간이었다. 

ADHD가 있다는 것을 털어놓으면서 나는 어떤 기대를 하였던 걸까?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친구의 놀라움을 기대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이 사실을 털어놓고 싶었던 걸까?



세 번째였던 것 같다. 

나의 쇼킹한(?) 근황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친구의 반응이 의외였다. 


야, 네가 무슨 ADHD야? 야, 그 의사 돌팔이 아냐? 


내가 일하는 모습과 예전 회사 내에서 평판을 잘 알고 있던 친구여서 그랬던 걸까? 

직장동료이기도 했던 친구는 이 사실을 아예 믿지를 않았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친구의 머릿속 ADHD에 대한 이미지는 자리에 가만 앉아 있지 못하는 몹시 산만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던 걸까? 






사실 병원 문을 두드릴 때까지 긴가민가 한 순간이 많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가지 버전의 ADHD 테스트를 여러 번 해봤는데 할 때마다 알쏭달쏭이었다. 


아래는 금쪽상담소에 소개된 ADHD 체크리스트 10가지 항목이다.  


1.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 

2. 모임에 항상 늦는다. 

3. 휴대폰이나 자동차 열쇠 같은 물건을 하루에도 몇 번씩 찾는다. 

4. 저축을 못하고 돈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 

5. 유명 맛집이어도 웨이팅이 있으면 포기한다. 

6. 영상을 볼 때 2배속으로 시청한다. 

7. 4차원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8. 말실수 등으로 사람들에게 오해를 자주 받는다. 

9. 6개월 이상 게임 중독에 빠진 적이 있다. 

10. 주변 친구들보다 이직이나 퇴사가 잦은 편이다. 

 

난 여기 10가지 항목 중에 단 1개만 해당이 된다. 


휴대폰, 지갑 등은 잃어버려본 적도 없고 돈 관리를 잘 못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말실수를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게임 중독에 빠진 적도 없다. (사실 게임은 거의 안 해봤다) 


이런 테스트로는 나의 ADHD적 성향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친구의 반응도 이해할만하다. 



방송에 등장한 버전 말고 더 믿을 만한 자료가 없을까 찾다 발견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성인 ADHD 자가진단표 (18가지) 항목>을 살펴보자 


혹시 본인이 ADHD인지 긴가민가 하다면 아래 표로 다시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


위 표에서는 색칠된 영역이 4개 이상이면 상담이 필요하고 9개 이상이면 '즉시' 의사와 상담 후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WHO의 원문 자료에는 첫 6개 항목 중 4개면 ADHD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하고 있다. 


https://www.hcp.med.harvard.edu/ncs/ftpdir/adhd/18Q_ASRS_English.pdf






나의 테스트 결과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테스트를 해봤다.


사실 몇 년 전 이 테스트를 했더라면 결과를 다르게 표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혼자 일을 하면서부터 나 스스로를 면밀히 관찰하게 되었고 ADHD 진단항목을 더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나 3번 질문은 아직도 가끔 그렇다로 표시해야 할지 고민된다.) 



1~6번 항목 중 5,6번 항목은 하이퍼액티비티 (과도한 행동)에 대한 항목이니 나같이 조용한 ADHD는 해당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난 '상담이 필요'한 케이스였고, 

병원에서 20여만 원을 들여서 한 각종 검사 결과로는 ADHD가 맞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20만 원 넘게 들일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검사 항목을 살펴보니 몇 가치 사례들이 생각이 났다.

ADHD 유병율이 10%가 안 된다고 하는데 나 같은 특징에 대해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어려운 일을 끝내 놓고 그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해 곤란한 적이 있습니까? 


- 며칠 전 일이다. 업무 상 몇 가지 자료를 작성하고 이메일 회신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검토해야 할 내용도 많고 까다롭게 생각된 일이라 하기 싫었지만 꾸역꾸역 자료 작성을 다 마치고 이메일 전송 버튼을 누르려고 하다가, 나중에 다시 검토를 한번 더 해보기로 하고 저장만 해뒀다. 

혹시 수정을 해야 할 부분이 당장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이 일은 나에게 '미루고 싶은 일'에 해당하였고 미루고 또 미뤘다. 

마감일 오후가 되어서야 메일을 다시 열었는데 아뿔싸... 


데드라인은 당일 오후 3시였고, 그걸 확인한 순간은 이미 오후 6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뒤늦은 메일 회신으로 인한 손해는 내 몫이다. 

지금도 자책 중이다. 에휴... 




체계가 필요한 일을 순서대로 진행하기 어려웠던 경우가 있습니까? 


- 사실 이 문항을 처음 봤을 때 난 여기에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니깐.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 문항은 충동성과 관련이 된 문항 같다. (그리고 난 충동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 주말, 

가족들은 외출을 했고 혼자 여유롭게 오디오북을 들으며 집을 청소하고 있었다. 


청소는 

1) 분리수거 및 음쓰를 먼저 버리고 ) 바닥 짐을 정리한 뒤 3) 청소기를 돌리고 4) 걸레질을 하면 대강의 청소가 끝이다. 


그런데 난 분리수거할 것들을 챙기다가 문득 세탁기가 눈에 거슬렸다. 


'세탁조 청소를 한 게 언제더라? 세탁기 밑 거름망 청소를 할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언제 했는지 기억이 안 나네...' 


그리고 계획에 없던 세탁기 거름망과 세탁조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묵은 때를 벗겨내는 쾌감은 맛봤지만 청소하는 내내 '나는 왜 계획에도 없던, 아내가 시키지도 않은 세탁기 청소를 하고 있단 말인가...?' 하는 혼자만의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늘 이런 식이다. 

청소는 그나마 모범사례에 속하지만 어떨 땐 충동적으로 유튜브 영상을 한 시간씩 본 적도 있다. 

게임에 취미가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약속이나 해야 할 일을 잊어버려 곤란을 겪은 경우가 있습니까? 


- 약속을 잊은 적은 거의 없다. 대부분 캘린더 앱에 적어 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적어 놓지 않으면 놓쳐버린다. 며칠 전에도 한 달 만에 병원을 가는 날이었는데 아침에만 해도 오후 4시 병원 진료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노트에 적어놓기까지 하고 정작 오후가 되니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오후 4시 5분, 병원의 전화를 받고서야 깨달았다... 


이런 일은 흔치는 않지만 어떤 곳에 정신이 팔려버리면 완전히 잊는 경우가 생긴다. 


돌이켜보면,

적어놓지 않은 일인데 내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일은 까먹거나 한없이 미룬 일도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ADHD에 인지행동치료가 중요한 것 같다. (요즘 인지행동치료에 대한 공부 중이다) 





골치 아픈 일을 피하거나 미루는 경우가 있습니까? 


- 이 부분 나 스스로를 ADHD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회사나 조직에서 발생하는 일이야 내가 미루더라도 시스템적으로 데드라인은 반드시 지키게 되어있으니 결국은 하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인 문제들은 미뤄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차일피일 미루게 되고 까먹고 곤란에 빠진다. 


몇 달 전에는 세금 신고 기간에 자료 작성하는 것이 귀찮고 골치 아파 보여서 차일피일 미뤘고 결국에 한바탕 곤란을 겪고 또 자책을 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세금 관련 된 부분, 부동산 계약을 하는 부분 등 여러 가지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면 미루다가 결국 후회를 하게 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왜 그 간단한 일을 미뤘는지 스스로를 한심하다 여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재미있는 건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런 캐릭터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내 조차 내가 ADHD 진단을 받자 놀랬으니깐. 곰곰이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빵꾸'를 내지 않으려고 늘 신경을 쓰면서 무던히 애썼던 것 같다. 남들도 다 나처럼 하는 줄 알았는데 의사 선생님은 ADHD 때문이란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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