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제록 (禁祭錄)] - 62화

거짓된 기록의 감옥

by 돌부처



한지운이 보내온 메시지는, 어둠 속의 등대처럼 선명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안도보다 더 큰 의문과 불길함을 안겨주었다. 혼돈의 바다 너머에서, 친구는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목숨을 걸고 보낸 이 암호는, 그들이 맞서야 할 다음 절망의 예고편이었다.


“거문.. 그리고 거짓된 기록의 감옥…?.”


최민준이 문장을 곱씹었다. 그의 남색 눈동자가, 마치 암호를 해독하려는 듯 날카롭게 빛났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서울 시내의 모든 교정 시설이 스쳐 지나갔다.


“감옥이라. 그렇다면 다음 장소는, 교도소나 구치소 같은 곳인가? 하지만 그런 곳은 보안이 삼엄해. 화천회가 대규모 의식을 벌이기엔….”

“아닐 겁니다.”


장서린이 최민준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말했다. 그녀는 붕대를 감은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체 조직의 변성. 그녀는 이제 자신이 부정해왔던 세계의 언어로 생각해야만 했다.


“그런 물리적인 장소를 뜻하는 게 아닐 거예요. ‘기록’을 가둔다는 건, 단순히 사람을 가두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예요. 이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서화가 그녀의 말을 이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붉은 실과 뼛조각들을 내려다보았다. 화천회가 남긴 끔찍한 잔해.


“누더기 신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어요. 화천회는 이 땅의 모든 저주와 원념을 ‘부품’처럼 수집하고, 그것들을 이용해 자신들만의 ‘거짓된 신’을 조립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짜 역사의 기록은 지워지고, 잊히고, 거짓된 기록으로 대체되고 있죠. 그들 자체가, 역사를 가두는 거대한 감옥인 셈이에요.”

“잠깐만….”


박종윤이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저절로 켜진 태블릿 위에서 망설이듯 움직였다. 하늘의 등대에서 쏟아지는 데이터. 한지운이 보내는 신호. 그것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방대한 양의 좌표와 역사적 데이터가 암호처럼 숨겨져 있었다. 그는 한지운이 남긴 이 거대한 데이터의 바다 속에서, 단 하나의 의미 있는 좌표를 찾아 헤맸다.


“거문(巨門)….”


그는 천문학 데이터베이스와 고대 점성술 기록을 동시에 검색했다.


“북두칠성의 두 번째 별. 옛 기록에는 ‘어둡고 거대한 문’을 상징한다고 나와 있군요. 병(病)과 구설수, 암흑, 그리고… ‘숨겨진 진실’을 주관하는 별….”


그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그는 고대의 성도(星圖) 위에, 현대 서울의 지도를 겹쳤다. 그리고 수백 년간 축적된 지맥의 흐름 데이터를 입력했다. 그의 컴퓨터가, 인간의 뇌로는 불가능한 연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별의 기운이, 현대 서울의 지맥과 가장 강하게 연결되는 곳은….”


그는 태블릿 화면을, 다른 세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지도 위에, 하나의 점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맙소사….”


최민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머릿속에, 잊혔던 역사의 페이지가 펼쳐졌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고문당하고 죽어갔던 고통의 장소. 독재 시절, 민주화를 외치던 이들이 억울하게 스러져간 원한의 땅. 그곳만큼, ‘거짓된 기록’과 ‘감옥’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곳은 없었다. 그곳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가장 깊은 상처이자, 지워지지 않는 흉터였다.


“하지만 거긴… 지금은 박물관입니다.”


박종윤이 말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에요. 그런 곳에서, 화천회가 대체 무슨 짓을….”

“가장 좋은 숨바꼭질 장소는, 언제나 등잔 밑이지요.”


서화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수많은 산 자들의 활기찬 기운 속에, 죽은 자들의 비명을 숨기는 것. 산 자들의 웃음소리로, 죽은 자들의 울음소리를 덮는 것. 그것이 그들의 방식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가장 성스러운 곳을 가장 더러운 제단으로 만드는 자들이니까요.”


네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정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그곳까지 가느냐였다. 그들의 차는 저수지 입구에 버려두었고, 이 깊은 산속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막막했다. 모두가 지쳐 있었고, 부상당했다. 이 상태로는, 서울 시내에 들어서는 순간 경찰에게 체포될 것이 뻔했다.


그때였다. 부스럭. 종탑의 부서진 입구. 어둠 속에서,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구냐!”


최민준이 반사적으로 총을 겨누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것은, 적이 아니었다. 낡은 사냥복 차림. 한쪽 눈이 먼, 낯익은 얼굴. 산지기였다.


“어르신…!”


서화가 놀라 외쳤다.


“살아… 계셨군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라고 했을 터.”


노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의 형체는 이전보다 훨씬 더 투명해져 있었다. 마치 새벽녘의 안개처럼. 그의 발은 땅에 닿아있지 않았다.


“내 친구들이, 마지막 힘을 빌려주더구나. 너희에게, 마지막 길을 열어주라고.”


그는 종탑의 바닥을, 자신의 낡은 엽총 개머리판으로 쿵 하고 내려쳤다. 그러자, 놋쇠 종이 떨어져 있던 바로 그 자리. 바닥의 돌 하나가 드르륵 소리를 내며 옆으로 밀려나며, 아래로 향하는 어두운 입구를 드러냈다. 그 안에서는, 차갑지만 맑은 바람이 불어 올라왔다.


“이 길은….”

“이 종탑이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있었던, 산의 혈맥이다.”


노인이 말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마을을 떠났던 내 친구들이 처음으로 정착했던, 세상 밖의 정거장으로 이어지지. 인간들이 파 놓은 땅굴과는 다른, 진짜 ‘산의 길’이야.”


그는 최민준을 보았다.


“자네가 쫓는 ‘법’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게야. 하지만 기억하게. 때로는 산의 법이, 인간의 법보다 먼저라는 것을.”


그는 장서린을 보았다.


“죽은 자들의 이야기는, 이제 자네의 몫이야. 그들의 뼈에 새겨진 진실을, 세상에 알려주게나.”


그는 박종윤을 보았다.


“자네의 그 희한한 기계, 아주 쓸모가 많았어. 하늘의 별을 땅으로 끌어내리는 재주가, 아주 놀랍더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화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파수꾼의 후예여. 부디… 그 길의 끝에서, 길 잃은 모든 영혼들의 안식을 찾아주게나.”


그의 몸이, 서서히 빛의 입자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도 가봐야지.”


그의 입가에, 평온한 미소가 걸렸다.


“내 친구들이… 너무 오래 기다렸어.”


산지기의 마지막 미소는, 새벽녘의 이슬처럼 맑았다. 그의 형체가 완전히 빛의 입자가 되어 사라진 후, 종탑 안에는 깊고 평화로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수십 년간 이 땅을 짓누르던 슬픔과 분노가, 마침내 진정한 안식을 찾은 것이다. 달빛이 부서진 천장 틈새로 쏟아져 들어와, 흩어진 뼛조각과 붉은 실의 잔해 위로 성스러운 진혼곡을 그리는 듯했다. 네 사람은 말없이, 그가 열어준 마지막 길,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더 거대하고, 더 끔찍한 진실을 향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가야 합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서화였다.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다시 파수꾼의 갑옷을 입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지만, 흔들림은 없었다.


“산지기 어르신께서 열어주신 이 길은, 영원하지 않을 겁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어둠 속 계단 입구는,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며 닫히려는 듯한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산의 혈맥은, 더 이상 이방인의 출입을 원치 않았다. 이 길은 산 그 자체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잠시 열어준 기적과도 같은 통로였다. 네 사람은 차례대로,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최민준이 앞장섰고, 그 뒤를 장서린과 박종윤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화가 따랐다. 그들이 모두 들어서는 순간, 입구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닫혔다.


계단의 끝은, 예상보다 가까웠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낡은 버스 정류장이었다. 수십 년 전, 구천리 마을 사람들이 도시로 나가기 위해 이용했던, 세상과의 유일한 연결고리. 지금은 폐쇄되어, 1970년대에 멈춰버린 낡은 시간표와 녹슨 벤치, 그리고 거미줄만이 남아 있었다. 마치 시간이 박제된 듯한, 세상의 경계에 선 공간이었다.


“세상 밖의 정거장….”


최민준이 중얼거렸다. 산지기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다행히, 이곳은 전파가 터졌다. 화면에는,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떠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그의 세상이, 그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그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제… 어떡해야 하죠.”


장서린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지쳐 있었지만, 눈빛은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져 있었다.


“우리는 이제, 공식적으로는 ‘없는’ 사람들입니다. 경찰은 우리를 쫓을 거고, 화천회는 우리를 죽이려 하겠죠.”

“잠시… 쉬어야 합니다.”


서화가 말했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벽에 기대섰다.


“모두 한계예요. 특히 박사님은….”


그녀의 시선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장서린을 향했다. 그녀는 방금,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수백의 원혼을 다스렸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깎여나간 듯한, 지독한 탈진.


“아니요.”


장서린이 고개를 저었다.


“쉴 시간 없어요.”


그녀는 자신의 태블릿을 켰다. 종탑에서 회수한, 누더기 신의 ‘부품’들. 붉은 실과 뼛조각들의 분석 데이터가 화면에 떠올랐다.


“이 뼛조각들… 분석할수록 이상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단순히 꿰맨 게 아니에요. 뼈와 실 사이에, 미세한 유기적 결합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리고 이 관리 번호들. A-07, C-12….”

“부품 목록입니다.”


박종윤이 그의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누더기 신은, 그들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놈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그저 ‘재료’로 취급한 겁니다. 이 번호들을 조합하면, 우리는 화천회의 ‘설계도’를 역추적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서대문형무소.”


서화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깊은 슬픔이 어렸다.


“그곳이, 그들의 두 번째 실험장이자, 다음 ‘부품’을 수집하는 장소겠군요. 이 땅의 가장 깊은 한이 서린 곳을, 또다시 더럽히려는 겁니다.”


네 사람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쉴 시간이 없다는 것을. 그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에도, 화천회는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 서울로 돌아가야 합니다.”


최민준이 결론을 내렸다.


“이 모습으로는 안 되니, 옷부터 갈아입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류장 저편, 어둠 속에서 두 개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오래된 택시 한 대였다.


“이 시간에… 택시가…?”


박종윤이 의아해했다. 택시는 그들 앞에 멈춰 섰다. 운전석의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 안에는, 인자한 미소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어디까지 가시오, 손님들?”


그의 목소리는 따뜻했지만, 어딘가 기묘했다. 네 사람은 동시에, 경계 태세를 갖췄다. 최민준은 조용히,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노인은 그런 그들을 보며, 허허 웃었다.


“걱정들 말아.”


그가 말했다.


“나는, 길 잃은 나그네를 태우는 늙은이일 뿐이니.”


그는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작은 나무패 하나가 옷핀으로 매달려 있었다. 최민준이 지산 노인에게서 받았던 것과 똑같지만, ‘月(달 월)’ 자가 새겨진, 나무패였다.


“지산 어르신께서… 보내셨소?”


최민준이 놀라 물었다.


“그 양반 성미가 급해서 말이야.”


노인이 웃었다.


“손님들이 곤경에 처할 걸 미리 알고, 마중을 보내셨지.”


그는 뒷좌석 문을 열었다.


“자, 어서들 타게. 갈 길이 머니.”


네 사람은, 망설이다. 마침내, 택시에 몸을 실었다. 월하(月下) 연구회. 한상현의 옛 동료들.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어디로 모실까.”


노인이 물었다. 최민준이,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서대문으로 갑시다.”


그가 말했다.


“감옥의 문을, 열러 가야겠습니다.”


택시 기사 노인은, 그의 말을 듣고 희미하게 웃었다.


“서대문 감옥의 문이라.. 알고 있지.”


그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곳의 문은… 열기보다, 닫기가 더 힘든 문이지.”


택시는, 어둠 속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바퀴가 땅에 닿는 마찰음도 없었다. 마치 시간의 강 위를 떠가는, 유령선처럼.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현실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이었다. 차 안은 기묘한 정적으로 가득했다. 운전기사 노인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앞을 볼 뿐이었다. 그의 쭈글쭈글한 손이 쥔 운전대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조종하는 돛의 키처럼 보였다. 창밖으로는, 익숙한 국도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지만, 무언가 이질적이었다. 가로등 불빛은 더 희미했고, 어둠은 더 깊었다. 마치 세상의 채도가 한 단계 낮아진 듯한, 기이한 감각. 박종윤은 자신의 태블릿을 켰지만, GPS는 여전히 먹통이었다. 화면에는 그저 ‘신호 없음’이라는 글자만이 떠 있을 뿐이었다.


“저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박종윤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불안하게 울렸다.


“서대문으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맞소.”


노인이, 백미러를 통해 그를 보며 대답했다. 그의 눈이, 어둠 속에서도 맑게 빛났다.


“세상의 길과, 밤의 길은 조금 다르다네.”


그는 핸들을 꺾어, 지도에도 없는 좁은 샛길로 들어섰다. 길의 입구에는, ‘출입금지’라는 낡은 팻말과 함께, 악귀를 막기 위한 금줄이 쳐져 있었다. 하지만 택시는 그 금줄을, 마치 연기처럼 통과해버렸다.


“이 길은….”


서화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창밖을 보며, 숨을 삼켰다. 길 양옆으로, 수십 개의 돌무덤과 낡은 장승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오래전, 역병으로 몰살당한 이름 없는 마을의 터. 산 자들은 결코 들어와서는 안 되는, 금기의 땅이었다. 장서린은 자신의 센서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에 경악했다. 이곳은 물리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완벽한 ‘다른’ 공간이었다.


“가장 빠른 길이지.”


노인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숲의 정령처럼, 차 안을 맴돌았다.


“산 자의 눈을 피해, 죽은 자들의 땅을 가로지르는 길. 우리는 지금, 역사의 틈새를 달리고 있는 게야.”


택시가 숲의 가장 깊은 곳을 지날 때였다. 후두둑. 무언가, 차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


“비가….”


장서린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하늘은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었다. 후두두둑. 소리는 점점 더 거세졌다. 빗방울이 아니었다. 더 작고, 더 단단한 무언가가 차체를 때리는 소리였다. 최민준은 창문을 열고,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 위로 떨어진 것은, 빗방울이 아니었다.


검고, 차가운 새의 깃털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보았다. 수백, 수천 마리의 까마귀 떼가, 나뭇가지에 빈틈없이 앉아 소리 없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녀석들의 눈은 평범한 검은색이 아니었다. 핏빛으로 붉게 빛나고 있었다.


“화천회의… 눈입니다.”


서화의 목소리가 떨렸다.


“놈들이, 우리가 움직이는 것을 눈치챘어요. 이 길까지 쫓아온 겁니다.”


까악.

까아아아악-!


한 마리가 울자, 수천 마리가 동시에 울부짖기 시작했다. 밤의 정적을 찢는, 끔찍한 소음. 까마귀 떼가 일제히 날아올라, 검은 폭풍처럼 택시를 덮쳤다. 부리로 유리창을 쪼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차체를 긁어댔다. 콰드득, 콰드득.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차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젠장!”


박종윤이 소리쳤다. 하지만 운전기사 노인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운전대 옆에 놓여 있던, 낡은 놋쇠 요령(搖鈴)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딸랑-


맑고, 청아한 소리. 그 순간, 택시를 덮치던 수천 마리의 까마귀들이, 비명도 없이 한 줌의 검은 재가 되어, 흩어져 내렸다. 소음이 멎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이 정도 소란은, 언제나 있는 법이지.”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요령을 내려놓았다.


“이제 거의 다 왔소.”


그의 말이 끝나자, 택시는 금기의 숲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 다시 익숙한 서울의 야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들이 나온 곳은, 평범한 도로가 아니었다. 서대문형무소의, 높고 육중한 붉은 벽돌 담벼락 바로 아래였다. 마치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이곳에, 저희를 위한 ‘거점’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그는 형무소 건너편, ‘독립문 여관’이라는 낡은 간판이 희미하게 빛나는 곳을 가리켰다.


“월하(月下)의 다른 동료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소.”


그는 네 사람을 내려주고, 낡은 주머니 하나를 최민준에게 건넸다. 그 안에는, 현금과 함께 여러 개의 낡은 신분증, 그리고 대포폰이 들어 있었다.


“앞으로는, 이걸로 움직이시오. 당신들은 이제, 세상에 없는 그림자들이니.”

“어르신은….”


최민준이 물었다.


“함께 가지 않으십니까.”

“나는, 밤의 길을 지키는 늙은이일 뿐.”


노인은 웃었다.


“산 자들의 싸움에, 너무 깊이 끼어들 수는 없지.”


그는 마지막으로, 네 사람을 둘러보았다.


“부디….”


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살아서 돌아들 오시게.”


택시는 왔을 때처럼 소리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네 사람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밤의 어둠 속에 잠긴 거대한 감옥, 서대문형무소를 올려다보았다. 공기 중에는, 수십 년간 쌓여온 원한과 슬픔의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서화는 수많은 영혼들의 흐느낌을 들었고, 장서린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극심한 한기를 느꼈다. 최민준은 법으로도 구원받지 못했던 억울한 죽음의 무게를 느꼈고, 박종윤은 도시의 모든 데이터가 이곳 앞에서 침묵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이곳이, 그들의 두 번째 전쟁터였다.


그리고 저 안 어딘가에, 화천회가 숨겨놓은. 거짓된 기록의 감옥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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