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제록 (禁祭錄)] - 63화

감옥의 문

by 돌부처


밤 12시.


서대문형무소는 도시 한복판에 떠 있는 거대한 관(棺)이었다. 달빛이 높고 육중한 붉은 벽돌 담벼락 위로 창백하게 쏟아져 내렸다. 그 위를 감시하는 철조망은 마치 가시면류관처럼 보였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비바람에 깎여나간 담벼락의 붉은빛은 마치 마르지 않는 핏자국처럼 섬뜩했다.


네 사람은 형무소 뒤편의 가장 어둡고 후미진 담벼락 아래 섰다. 월하 연구회가 알려준 유일하게 살아있는 ‘틈’이었다. 공기는 쇳가루와 피가 뒤섞인 듯한 비릿한 냄새로 가득했다. 단순한 냄새가 아니었다. 수십 년간 쌓이고 쌓인 수천의 원혼들이 내뱉는 고통의 숨결이었다. 박종윤은 자신의 휴대용 센서가 미친 듯이 울리는 것을 보았다. 공기 중의 음이온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는 이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이곳은 영혼의 밀도가 너무 높아 현실의 물리 법칙마저 왜곡시키고 있었다.


“여깁니다.”


서화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는 담벼락의 한 부분을 손으로 짚었다. 그곳에는 다른 벽돌과는 달리 이끼 하나 끼지 않은 매끄러운 돌 하나가 박혀 있었다.

그녀가 손바닥을 대고 주문을 읊조리자 돌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며 주변의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젠장….”


장서린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고성능 센서는 이미 망가진 듯 미친 듯이 널뛰고 있었다.


“이곳의 자기장은 그냥 ‘없어요’. 모든 물리 법칙이 붕괴된 완벽한 제로(Zero) 필드예요. 이곳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라고요. 마치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처럼.”


공간의 왜곡이 멎었을 때 담벼락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한 검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너머는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심연이었다. 그 안에서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흐느낌 같은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제부터는 각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최민준이 권총을 고쳐 쥐며 말했다. 그의 남색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저 안은 우리의 법이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오직 죽은 자들의 법만이 존재하는 곳이겠죠.”


네 사람은 차례대로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서화가 들어서는 순간 구멍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완벽한 벽으로 돌아왔다. 이제 돌아갈 길은 없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형무소의 중앙 감시탑 아래, 수많은 감방들이 부채꼴처럼 펼쳐진 감옥의 심장부였다.


너무나도 고요했다. 바깥세상의 모든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된 죽음의 정적이었다.


“아무도 없군.”


최민준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컹-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등 뒤에서 들어왔던 문이 저절로 닫히는 소리였다. 동시에 철컹, 철컹, 철컹. 사방의 모든 감방 철문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닫혔다. 그 소리는 마치 거대한 짐승이 이빨을 부딪히는 소리처럼 복도 전체를 울렸다.


그리고 복도를 밝히던 희미한 비상등이 퍽- 소리를 내며 꺼졌다. 완벽한 암흑, 완벽한 고립이었다.


“이런 제기랄….”


박종윤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떨렸다.


“왔구나.”


서화가 중얼거렸다. 그때,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한국어가 아니었다. 날카롭고 차가운 일본어였다.


“쥐새끼들이 제 발로 감옥에 들어왔군.”


목소리는 2층 복도에서 들려왔다. 네 사람이 고개를 들자 그곳 난간에 한 남자의 실루엣이 서 있었다. 낡고 각진 일본 순사 복장에 허리에는 긴 칼을 차고 있었다. 오카다 류노스케였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그의 얼굴은 사진 속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의 몸은 반투명한 유령이 아니었다. 그는 이 감옥에 쌓인 수천의 원념을 양분 삼아 거의 완벽한 실체를 얻은 상태였다. 그의 피부는 밀랍처럼 창백했고,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타오르는 악의만큼은 생전보다 더 지독하고 선명했다.


“네놈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오카다가 낡은 가죽 장갑을 끼며 말했다.


“스스로 무릎을 꿇고 천황 폐하께 충성을 맹세할 것인가, 아니면….”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닫혀 있던 모든 감방 안에서 붉은 안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의 눈동자는 이곳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슬픔이나 분노 대신 오직 굶주린 살의만이 가득했다. 오카다는 그들의 한(恨)마저 자신의 군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나의 충실한 개들의 먹이가 될 것인가.”


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이 미친 쪽바리 새끼가….”


최민준이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장서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형사님.”


그녀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 자, 그림자가 없는데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오카다의 발밑에는 있어야 할 그림자가 없었다. 그는 빛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빛을 무시하는 존재였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서화가 말을 이었다.


“저건 진짜 오카다가 아닙니다.”


그녀의 눈에는 오카다의 몸을 휘감고 있는 기운의 흐름이 보이고 있었다.


“저건 화천회가 만든 강력한 ‘허상’이에요. 이 감옥 전체의 원념을 한데 모아 만든 일종의 아바타 같은 거죠. 저놈의 본체는 다른 곳에 숨어서 우리를 시험하고 있는 겁니다.”

“호오?”


오카다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눈치가 빠른 계집들이군. 하지만….”


철컹! 철컹! 철컹!


모든 감방의 문이 일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굶주린 원혼들이 비명을 지르며 네 사람을 향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진짜든 가짜든, 너희의 죽음은 변하지 않는다!”


오카다의 외침은 저주 그 자체였다. 수백 개의 감방에서 쏟아져 나온 원혼들은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고문으로 뒤틀린 팔다리, 굶주림으로 찢어진 배, 분노로 불타는 눈동자. 그들은 이 감옥이 만들어낸 살아있는 악몽이었다.


키에에엑-!


수백의 비명이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되어 네 사람을 덮쳤다. 그것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영혼을 직접 가격하는 음파 병기였다. 박종윤은 귀를 막으며 비명을 질렀고, 최민준은 이를 악물며 고통을 버텼다.


“정신 차려요!”


서화가 외쳤다. 그녀는 품에서 네 개의 작은 귀마개를 꺼내 모두에게 나누어주었다. 그 안에는 파수꾼의 비술로 처리된 솜이 들어 있었다.


“이걸 껴요! 저들의 목소리에 영혼을 내주면 안 돼요!”


귀마개를 끼자 끔찍한 비명 소리가 희미해졌다. 하지만 원혼들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벽과 천장을 무시하고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차가운 손가락이 목을 조르고 날카로운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젠장, 흩어져!”


최민준이 외치며 가장 가까운 원혼을 향해 총을 쏘았다.


탕-!


총알은 원혼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반대편 벽에 박혔다. 물리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소용없어요!”


장서린이 소리쳤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원혼들을 느끼고 있었다.


“저것들은 순수한 영체(靈體)가 아니에요! 이 감옥의 벽, 바닥, 공기 중에 깃든 원념 그 자체라고요! 저것들을 없애려면 이 감옥 전체를 불태우는 수밖에 없어요!”

“하하하하!”


2층 난간에서 오카다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발버둥 쳐 보아라, 쥐새끼들! 너희의 절망이 나의 힘이 될 것이니!”


그의 말대로였다. 네 사람이 느끼는 공포와 절망감이 오히려 원혼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곳은 거대한 감정이 증폭되는 최악의 전장이었다.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서화가 세 사람을 자신의 등 뒤로 모았다.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을 그어 흐르는 피로 바닥에 진(陣)을 그리기 시작했다.


“제가 이곳의 모든 원념을 저에게로 끌어모으겠습니다. 그 틈을 타 당신들은 2층으로 올라가 저 가짜 오카다를 처리해야 해요.”

“무슨 소리예요!”


박종윤이 경악했다.


“그건 자살 행위라고요!”


“파수꾼의 숙명입니다.”


서화는 담담하게 말했다.


“어서요! 시간이 없습니다!”


그녀의 몸에서 맑고 푸른빛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원혼들의 검붉은 악의와는 정반대인, 모든 것을 정화하고 감싸 안는 치유의 힘이었다. 굶주린 원혼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가!”


서화의 외침에 세 사람은 이를 악물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달렸다. 수많은 원혼들이 그들을 막아섰지만, 그들의 목표는 오직 서화뿐이었다. 계단에 다다른 순간, 최민준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서화는 수백의 원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의 푸른빛은 거대한 어둠 속에서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드시 그녀를 구해내야만 했다.


2층 복도에서 오카다는 여전히 난간에 기댄 채 여유롭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작 세 마리인가. 실망스럽군.”

“닥쳐라, 이 망령 새끼야.”


최민준이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네놈의 본체는 어디에 있지?”

“본체?”


오카다가 비웃었다.


“나는 본체 따위는 없다. 나는 이 감옥 그 자체이니.”


그가 손을 들자 복도의 벽과 바닥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쇠창살이 벽을 뚫고 튀어나와 세 사람을 덮쳤다.


“피해!”


최민준이 소리치며 몸을 굴렀다. 박종윤은 자신의 방탄 가방으로 간신히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장서린은 피할 틈이 없었다. 그녀의 심장을 향해 날카로운 쇠창살이 날아들었다.


그 순간,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최민준이었다. 그의 어깨를 쇠창살이 깊숙이 꿰뚫었다.


“크윽…!”

“형사님!”

“괜찮아….”


최민준은 비틀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쇠창살이 박힌 어깨를 부여잡은 채 오카다를 노려보았다. 그의 남색 눈동자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제야 제대로 열받기 시작했거든.”


최민준의 목소리는 으르렁거리는 맹수와 같았다. 그의 어깨를 꿰뚫은 쇠창살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그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그는 더 이상 냉철한 형사가 아니었다. 눈앞의 악(惡)을 자신의 손으로 부숴버리려는 한 마리의 사냥개였다.


“호오, 제법이군.”


오카다는 그의 분노를 즐기는 듯 여유롭게 칼을 뽑아 들었다.


“그 눈, 마음에 들었다. 네놈의 눈알은 내가 직접 뽑아주마.”


그가 손을 들자 복도의 모든 벽과 바닥에서 수십 개의 쇠창살이 다시 튀어나와 세 사람을 덮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최민준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어깨에 박힌 쇠창살을 우드득 소리와 함께 맨손으로 뽑아냈다. 그리고 그것을 창처럼 오카다를 향해 던졌다. 동시에 그의 등 뒤에서 박종윤이 소리쳤다.


“지금!”


그는 자신의 방탄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서 수십 개의 작은 드론들이 벌떼처럼 쏟아져 나와 날아드는 쇠창살들을 향해 돌진했다.


쾅! 쾅! 쾅!


자폭 드론이었다. 박종윤의 마지막 비장의 무기. 폭발이 복도를 뒤흔들고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박사님! 지금이에요!”


최민준이 외쳤다. 장서린은 망설이지 않고 연기 속을 뚫고 오카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의 손에는 메스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노린 것은 오카다의 몸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발밑, 그림자가 없는 허공을 향해 메스를 그었다. 그녀의 무당의 피가 과학의 칼날에 깃들어 보이지 않는 것을 베기 시작했다.


“뭣이!”


오카다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당혹감이 느껴졌다. 그의 발밑 공간이 마치 종이가 찢어지듯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 감옥의 원념을 한데 모아 그의 허상을 유지시켜 주던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있었다. 그의 몸이 아지랑이처럼 희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년… 감히…!”


그 순간 연기를 뚫고 최민준이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부서진 쇠창살 조각이 들려 있었다.


콰직-!


최민준은 오카다의 심장이 있어야 할 곳을 자신의 모든 분노를 담아 꿰뚫었다. 오카다의 몸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노이즈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것들….”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오카다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1층에서 들려오던 수백의 비명 소리도 거짓말처럼 멎었다. 그들을 덮치던 원혼의 파도가 길을 잃고 허공으로 스르르 흩어져 내렸다.


“해냈어….”


박종윤이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서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은 다급하게 1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1층 중앙에 서화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푸른빛은 사라지고 그녀의 몸은 마치 미라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수백의 원혼이 가진 원념을 그녀의 작은 몸이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그녀의 숨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희미했다.


“서화 씨!”


최민준이 그녀를 흔들었지만 그녀는 미동도 없었다.


“안 돼….”


장서린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의학 지식을 동원해도 그녀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육체의 죽음이 아닌 영혼의 소멸이었다. 그때였다. 삐걱- 소리와 함께 닫혀 있던 감옥의 정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 문밖의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한지운이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이전과 달랐다. 그의 몸을 휘감던 검푸른 패기는 사라지고 그의 눈동자는 깊고 고요한 비취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손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오래된 붓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지운아!”


박종윤이 외쳤다. 하지만 지운은 그를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죽어가는 서화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그녀의 앞에 섰다. 그리고 붓을 들어 허공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손놀림은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삶(生)’.


그가 허공에 생(生) 자를 썼다. 그러자 붓끝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흘러나와 서화의 몸을 감쌌다. 바싹 말라 있던 그녀의 피부가 서서히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희미하던 숨결이 다시 고르게 돌아왔다.


“이건….”


장서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건 ‘기록’을 새로 쓰는 거야.”


그렇다. 한지운은 혼돈의 바다 속에서 마침내 기록자의 진정한 힘에 눈을 뜬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를 읽는 힘이 아니었다.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 운명의 페이지에 새로운 문장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창조의 힘이었다.


지운은 서서히 눈을 뜨는 서화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주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이전 12화[금제록 (禁祭錄)] - 6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