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제록 (禁祭錄)] - 72화

서울의 심장, 남산으로

by 돌부처

점점 가까워지는 사이렌 소리가 어린이 대공원의 평화로운 소음을 날카롭게 갈라놓았다.


최민준은 품에 잠든 아이를 고쳐 안았다. 5년의 악몽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의 체온이, 그의 낡고 해진 전투복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 작고 따스한 온기는 그가 이 비현실적인 싸움에 뛰어든 이유이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모든 것이었다. 이 아이가 돌아갈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는 기꺼이 괴물이 될 수 있었다.


“갑시다.”


한지운이, 해 질 녘 노을에 검붉게 물든 남산 타워를 응시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지친 기색 대신, 모든 것을 끝내야 하는 마지막 전장을 앞둔 왕의 비장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잠시 후, 경찰차와 구급차가 요란한 불빛을 번쩍이며 벤치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젊은 형사가 유령이라도 본 듯, 온몸이 피와 먼지로 뒤덮인 너덜너덜한 모습의 최민준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선배님! 이게 도대체… 연락도 안 되시고, 무슨 일이십니까! 몸은 괜찮으세요?”

“설명은 나중에 한다.”


최민준은 다급하게 달려오는 후배의 말을 잘랐다. 그는 잠든 민아를 구급대원에게 조심스럽게 인계했다. 아이의 작은 손이 그의 옷깃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는 오랫동안 짊어졌던 경찰로서의 임무가 끝났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동시에, 비교할 수 없이 더 거대한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아이 부모님께는… 내가 직접 연락하겠다. 5년 만이다. 충격이 크실 테니, 반드시 아동 심리 전문가와 함께 접근하도록.”

“네? 아니, 선배님. 같이 서에 가셔서 경위 보고를 하셔야 합니다! 지금 이게 얼마나 큰 사건인지…!”


최민준은 후배의 말을 뒤로한 채, 말없이 돌아섰다. 그의 시선은 이미 자신을 기다리는 동료들에게, 그리고 그들이 함께 바라보고 있는 서울의 심장을 향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경찰 조직의 일원이 아니었다. 그는 이 도시를 지키는, 법과 제도를 넘어선 이름 없는 수호자였다.


“난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았다.”


어리둥절한 후배를 뒤로하고, 네 사람은 인파 속으로 다시 스며들었다. 공원 후문, 월하가 준비해 둔 검은색 밴이 엔진 소리도 없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석에는 말없이 고개만 숙이는 돌쇠가 앉아 있었다.


차문이 닫히자, 바깥세상의 평화로운 소음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차량 내부는 마지막 전쟁터로 향하는 전투 지휘 본부와도 같았다.


“남산 타워 주변의 모든 통신망에 장애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전파 방해 수준이 아니라, 특정 주파수 대역이 현실에서 아예 ‘소멸’하고 있어요. 마치…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것처럼.”


박종윤의 목소리가 차량 내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과학자로서의 이성적인 분석을 넘어선 공포가 섞여 있었다.


장서린은 흔들리는 차 안에서 태블릿으로 관련 데이터를 미친 듯이 분석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서울의 지맥(地脈)을 따라 흐르는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이었다. 마치 인간의 혈관처럼, 도시의 보이지 않는 동맥들이 남산을 향해 검붉은 피를 쏟아붓고 있었다.


“이건…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주술진으로 만들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막아낸 네 개의 저주는,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대동맥을 끊어내는 수술과도 같았어요. 하지만 결국… 화천회는 예비 동력을 이용해 심장을 기어코 가동시킨 겁니다. 남산 타워는 그 모든 에너지를 증폭시켜 하늘로 쏘아 올리는, 거대한 주술적 대포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서화는 눈을 감은 채, 차창에 이마를 기대고 있었다. 그녀는 탈진한 몸을 이끌고, 마지막 남은 영력을 쥐어짜 내 남산의 ‘기록’을 읽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희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땅이… 땅이 울고 있어요. 수백 년간 이 도시를 지켜온 용맥이, 비명을 지르며 뒤틀리고 있어요…. 산의 정령들이… 고통 속에서… 검게 물들고 있습니다….”


최민준은 묵묵히 자신의 리볼버를 분해하고, 한 발 한 발 정성스럽게 닦아 다시 장전했다. 그의 손놀림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법의 집행자가 아니었다. 그는 악을 심판하는 처형인이 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지운은, 칼집에 든 사인검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풍경을 눈에 담고 있었다. 퇴근길 인파로 붐비는 거리, 불 켜진 아파트의 창문들, 연인들의 웃음소리. 그가 지켜야 할 백성들의 평범한 일상. 그 모든 것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느껴졌다. 그는 이 모든 기록을 지키기 위해, 왕으로서 모든 것을 걸어야만 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차가 남산 순환도로 입구에 멈춰 섰다. 도로 위에는 원인 불명의 차량 사고들이 뒤엉켜 있었고, 그 너머로는 기이할 정도로 짙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여기까지입니다.”


돌쇠가 말했다.


네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안개 속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도시의 소음은 들리지 않았고, 오직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불길한 저주파의 진동만이 심장을 불쾌하게 압박했다.


그들은 말없이, 안갯속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면 오를수록, 공기는 무거워지고 기온은 급격히 떨어졌다. 길가의 나무들은 생기를 잃고 검게 말라 비틀어져 있었고, 그 가지들은 마치 고통 속에 죽어간 사람의 팔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바위에는 붉은 핏물 같은 이끼가 껴 있었다.


마침내, 그들이 남산 타워 앞 광장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인간의 상상력으로 그려낼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지옥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광장 바닥 전체에는, 네 개의 저주를 상징하는 거대한 혈문(血文)이 그려져 있었다. 그 문양은 마르지 않은 피처럼 번들거리며,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양의 중심, 남산 타워의 기둥은 더 이상 강철 구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지옥에서 끌어올린 거대한 뼈 기둥처럼, 수많은 원혼의 얼굴이 뒤엉킨 채 검붉은 빛을 내뿜으며 고동치고 있었다. 수많은 검은 기운이 타워를 휘감으며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고, 서울의 밤하늘은 거대한 폭풍전야처럼 검은 구름에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의 가장 중심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화려한 금실로 용 문양이 수놓아진 검은 도포.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한 눈빛. 그는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적과도 차원이 다른, 신(神)과 마주한 듯한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남자가, 천천히 그들을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세상을 뒤엎을 만한 광기와 신념이 담겨 있었다.


“오래 기다렸다, 마지막 시대의 가짜 왕이여.”


그가, 한지운을 보며 비웃듯 미소 지었다.


“나의 이름은 ‘천무(天舞)’. 화천회의 주인이자, 이 낡고 병든 세상을 끝내고 새로운 하늘을 열 자다.”


천무가 두 팔을 벌리자, 그를 중심으로 광장 전체가 울리기 시작했다.


“너희가 필사적으로 막아낸 네 개의 제물 덕분에, 나의 위대한 의식은 마침내 완성될 수 있었다. 너희의 발버둥이, 오히려 최고의 제물이 되어준 셈이지. 이제 곧, 이 서울의 용맥은 뒤틀릴 것이고, 땅은 하늘이 되고 하늘은 땅이 될 것이다. 죽은 자들이 일어나 산 자들을 심판하고, 마침내 고통도 슬픔도 없는 나의 왕국이 이 땅 위에 세워질 것이다!”


그의 선언과 함께, 고동치던 남산 타워에서 하늘을 찢을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최후의 전쟁은, 서울의 심장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천무의 선언에 응답하듯, 남산 타워가 된 뼈 기둥에서 터져 나온 굉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서울의 용맥(龍脈)이 물리적으로 뒤틀리며 내지르는 고통 그 자체였다. 광장 바닥에 그려진 거대한 혈문(血文)이 용암처럼 끓어오르며 핏빛 증기를 내뿜었고, 그 증기에서는 쇠 냄새와 썩은 흙냄새가 진동했다. 네 사람은 발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지독한 진동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은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마치 세상의 종말처럼 검붉은 번개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크큭… 보아라.”


천무는 이 지옥도 속에서, 마치 아름다운 교향곡의 클라이맥스를 감상하는 지휘자처럼 평온하고 희열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너희가 외면해 온, 이 땅의 진정한 목소리다. 수천 년간 고통받고, 잊혀지고, 버림받은 모든 것들의 울부짖음!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낡은 하늘을 향해 연주하는 것뿐이다!”


그가 손을 들자, 끓어오르던 혈문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꾸물거리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한 연기 같던 것들이, 이내 낡고 찢어진 갑옷을 입고 녹슨 칼을 든 병사들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수많은 전란 속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원혼들이었다. 그들의 텅 빈 눈구멍에서는 수백 년 묵은 원한이 푸른 도깨비불처럼 타올랐고, 그들의 움직임에는 산 자에 대한 순수한 증오만이 담겨 있었다.


“저것들은…!”


서화가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창경궁의 짐승 원혼과는 차원이 달랐다. 짐승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슬픔이라도 있었지만, 저들은 오직 순수한 분노와 살의로만 이루어진, 이 땅의 아물지 않은 상처 그 자체였다.


“흩어지지 마! 대형 유지해!”


최민준이 외치며 가장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총알은 그림자 병사의 가슴을 꿰뚫었지만, 병사는 잠시 휘청일 뿐 연기처럼 상처를 메우고 다시 소리 없이 전진했다. 물리 법칙이 통하지 않는 적 앞에서, 그의 총은 무력한 장난감에 불과했다.


“소용없어요! 저것들은 저 혈문과 연결되어 있어요! 저 제단이 존재하는 한, 무한히 되살아날 겁니다! 에너지가 무한 공급되고 있어요!”


장서린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태블릿은 이미 ‘분석 불가’라는 경고만을 띄우고 있었다. 화면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기호와 깨진 데이터만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과학이, 신의 영역 앞에서 무력하게 무릎 꿇는 순간이었다.


그림자 병사들의 파도가, 네 사람을 향해 소리 없이 밀려들었다. 그들의 칼날에서는 죽음의 한기가 뿜어져 나왔고,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광장의 바닥이 검게 썩어 들어갔다.


“제가… 이 땅의 마지막 기록을 지키겠습니다!”


서화가 비틀거리면서도 결연하게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더 이상 방어적으로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 땅의 의지를 대변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모든 영력을 끌어모아, 차갑고 썩어 들어가는 광장 바닥에 손바닥을 짚었다.


“수백 년의 아픔 속에서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낸 이 땅의 모든 생명이시여…! 저 거짓된 죽음에 맞서, 당신들의 살아있는 역사를 증명하소서! 부디… 마지막 힘을… 빌려주소서…!”


그녀의 기도는 더 이상 애원이 아니었다. 땅의 정령들을 향한, 이 땅의 정당한 후계자가 내리는 명령이자 선언이었다. 그녀의 외침에 응답하듯, 그녀의 손바닥 아래에서부터 금빛 균열이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균열 속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따뜻하고 눈부신 황금빛의 방어막이었다. 방어막의 표면에는, 마치 살아있는 나무의 뿌리처럼 힘찬 생명의 문양들이 새겨지고 있었다.


그림자 병사들은 방어막에 닿는 순간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타들어 갔다. 하지만 그 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뒤에서 더 많은 병사들이 솟아나, 동료의 재를 밟고 미친 듯이 방어막을 두드렸다. 서화의 입가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방어막이 유지될수록, 그녀의 생명력도 함께 타들어가고 있었다.


“서화 씨!”


최민준이 절박하게 외쳤지만,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눈은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그녀가 다시 한번 땅을 향해 외쳤다.


“피어나라!”


그녀의 외침과 함께, 방어막 표면을 수놓았던 황금빛 뿌리들이 살아있는 채찍처럼 튀어나와 그림자 병사들을 휘감기 시작했다. 뿌리에 휘감긴 병사들은 검은 연기를 피우며 정화되었지만, 그 공백은 즉시 새로운 병사들로 채워졌다. 이것은 끝없는 소모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태워, 모두를 위한 시간을 벌고 있었다.


이대로는 모두가 잠식당할 뿐이었다. 한지운은 깨달았다. 저 그림자 병사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이 모든 비극을 지휘하고 있는 단 한 사람, 저 거짓된 신을 쓰러뜨리지 않는 한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길을… 열어라.”


한지운이, 서늘한 왕의 목소리로 명했다.

그는 더 이상 그림자 병사들을 보지 않았다. 그의 비취색 눈동자는 오직 한 사람, 제단의 중심에서 그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천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땅을 박차고, 그림자 군단의 파도를 가르며 천무를 향해 직선으로 돌진했다. 그의 몸을 감싼 황금빛 기운이,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유성이 되었다. 그림자 병사들이 그를 막아서려 했지만, 그의 몸에 닿기도 전에 왕의 기운에 부딪혀 먼지처럼 소멸했다.


“호오.”


천무의 입가에, 흥미롭다는 미소가 걸렸다.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지운을 보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왕을 참칭하는 자여, 네놈의 용기는 가상하나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지운의 사인검이 마침내 천무의 심장을 꿰뚫기 직전.

천무가, 아주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까앙-!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 공간 자체가 뒤틀려 만들어낸 방어막에, 지운의 검이 막혔다. 그는 마치 거대한 산과 충돌한 것처럼, 더 이상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의 전력을 다한 일격이, 벌레 한 마리의 발버둥처럼 무력하게 막혔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내가 정하는 것이다.”


천무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는 지운의 검을 막아낸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볍게 쓸었다. 그러자 지운의 몸이 마치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속수무책으로 튕겨 나가 광장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크헉…!”


단 한 번의 공격. 지운은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에 신음했다. 힘의 차이가, 절대적이었다. 이것은 강자와 약자의 싸움이 아니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싸움과도 같았다.


천무는 천천히, 쓰러진 지운에게로 걸어왔다.


“네가 지키려는 것이 무엇이냐. 고통과 슬픔, 배신과 전쟁으로 가득 찬 이 낡고 추악한 역사냐? 나는 그 모든 것을 끝내려는 것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고통도 없는 완벽한 안식의 왕국을 만들려는 구원자다. 그런데 너는, 그저 낡은 기록에 집착하며 나의 위대한 구원을 방해하는 어리석은 수문장에 불과해.”


“네놈의 안식은… 죽음일 뿐이다.”


지운이, 피를 토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꺾이지 않았다.


“왕이란… 백성의 슬픔을 지우는 자가 아니다. 그 모든 고통의 기록마저 끌어안고, 기억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여는 자다! 너는 그저 모든 것을 끝내려는 겁쟁이에 불과해!”


“어리석기는!”


천무의 눈이, 처음으로 차가운 분노로 번뜩였다.

그가 손을 뻗자, 뒤틀린 남산 타워에서 검은 번개가 그의 손으로 모여들어 이 땅의 모든 원한이 응축된 거대한 창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너의 그 낡은 기록과 함께 소멸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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