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것과 싸우는 것의 차이
금요일 밤, 나는 내 작은 방을 작업실 삼아 낚시채비를 만들었다. 이전처럼 어설프게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며칠간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했던 과정을, 마치 숙련된 장인처럼 한 단계씩 밟아나갔다. 부드럽고 신축성 좋은 나일론 원줄 끝에, 쓸림에 강하지만 뻣뻣한 카본 목줄을 연결했다. 황 사장에게 배운 직결 매듭법은 이제 제법 손에 익어, 열 번을 묶으면 여덟 번은 만족스러운 모양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매듭의 양 끝을 잡고 힘껏 당겨보았다. 지난주, 나를 허무하게 만들었던 그 저항의 순간을 떠올리며, 더 강하게. 매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비로소 내가 만든 ‘연결’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토요일, 나는 다시 그 방파제에 섰다. 지난주와 같은 ‘사리’ 물때. 바다는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나는 미지의 적과 싸우러 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바위틈에 숨어 사는 놈의 습성, 그리고 그것을 버텨낼 나의 채비. 나는 확신에 차 있었다.
준비한 채비를 던졌다. 무거운 봉돌은 거친 조류를 뚫고 묵직하게 바닥에 안착했다. 나는 천천히 바닥을 읽기 시작했다. ‘투둑, 투둑.’ 낚싯줄 끝으로 전해져 오는 살아있는 정보들. 자갈밭을 지나는 감각, 미역 뭉치에 잠시 걸렸다 빠져나오는 부드러운 저항감, 그리고 마침내, 바위들이 험하게 널려있을 것이 분명한 지점. 나는 숨을 죽였다. 바로 여기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바닥을 긁던 낚싯대 끝이 ‘툭!’ 하고 강하게 튕겨져 나갔다. 지난주와 똑같은, 하지만 훨씬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충격.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졌다 다시 솟구쳤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힘껏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챔질!’
‘투툭!’
낚싯대가 허리까지 휘어지며 바다에 처박힐 듯 고꾸라졌다. 지난주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육중하고 포악한 저항. 놈은 본능적으로 바위틈으로 파고들려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낚싯줄은 터지지 않았다. 내가 밤새도록 묶었던 단단한 매듭이, 쓸림에 강한 카본 목줄이, 그 맹렬한 저항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에 희열이 온몸을 감쌌다.
“그래, 이번엔 안 터져!”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치며 릴을 감기 시작했다. 놈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나는 힘으로 맞섰다. 한 뼘, 또 한 뼘. 놈과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졌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던 낚싯대의 저항이 갑자기 ‘툭’ 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줄이 끊어진 감각은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바위에 채비가 걸려버린 듯, 낚싯줄은 팽팽한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놈이 바위틈에 처박힌 것이다.
“안돼…!”
나는 당황해서 릴을 더 감아보기도 하고, 낚싯대를 좌우로 흔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놈은 바위틈에 몸을 끼운 채 완강하게 버텼다. 낚싯줄은 팽팽했지만, 그 끝에 매달린 생명의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거대한 지구의 일부를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절망적인 무게감뿐이었다. 옆에서 낚시하던 노인이 다가와 혀를 찼다.
“에고, 틀어박혔구먼. 우럭 놈들이 원래 그래. 첫 힘겨루기에서 제압 못 하면 저렇게 바위틈에 대가리 처박고 버텨. 그럼 신선이 와도 못 빼내.”
그는 내 낚싯대를 한번 보더니 말을 이었다.
“힘으로만 당기니까 놈이 더 악착같이 파고들지. 낚시는 힘자랑이 아니여. 줄다리기지, 줄다리기. 놈이 째면 버텨주다가도, 아주 잠깐 힘이 빠지는 순간이 있어. 그때 감아들이고, 또 째면 슬쩍 놔주면서 방향을 돌려야지. 바위 반대쪽으로. 힘으로만 하믄 백전백패여.”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던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리 없었다. 나는 오기로 낚싯대를 더 강하게 잡아당겼다. ‘끼기긱…’ 낚싯대가 부러지기 직전의 비명을 질렀다. 결국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 손으로 직접 낚싯줄을 끊어내야만 했다.
돌아오는 길, 나는 지난번보다 더 깊은 패배감에 휩싸였다. 첫 번째 실패는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실패는, 완벽하게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왔다. 나는 ‘버티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싸우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노인의 말처럼, 나는 힘자랑만 하고 있었다. 놈이 바위틈으로 파고들려 할 때, 무작정 힘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잠시 줄을 늦춰주며 다른 방향으로 유도했어야 했다. 놈의 힘을 역이용해 바위에서 떼어놓는 ‘기술’이 필요했다. 나는 그저 더 단단한 무기를 들고 갔을 뿐, 그 무기를 휘두르는 법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월요일 아침, 나는 김 부장에게서 넘겨받은 새로운 프로젝트 기획안 초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완벽한 데이터와 논리로 무장한, 내가 보기에도 빈틈없는 기획안이었다. 이전의 나라면, 이 ‘단단한 채비’를 들고 곧장 임원 보고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미팅에 참석할 임원들의 명단을 보며, 지난번 클라이언트와의 미팅 때처럼 그들의 성향과 예상 반론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재무팀 임원은 분명 예산 문제를 걸고넘어질 것이다. 공격적인 마케팅팀 상무는 우리의 제안이 너무 소극적이라고 공격할 것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바위틈’으로 파고들려 할 터였다.
나는 깨달았다. 이 완벽한 기획안은 그저 싸움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그들의 저항에 힘으로 맞서 내 논리만 주장한다면, 결국 이 프로젝트는 가장 완고한 바위틈에 처박혀 좌초되고 말 것이다. 재무팀 임원의 예산 지적에 더 많은 데이터를 들이미는 것은, 바위틈으로 파고드는 우럭의 머리를 힘으로 잡아당기는 것과 같다. 그는 더 완고하게 버틸 것이다. 그럴 땐 오히려 그의 우려를 인정하며 한발 물러서 주는 ‘느슨함’이 필요했다. 마케팅팀 상무의 공격에는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그의 의견을 일부 수용하며 더 큰 그림으로 방향을 트는 ‘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반론을 버텨낼 단단한 논리를 넘어, 그들의 저항을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고, 그들의 힘을 역이용하여 내 편으로 끌어들일 줄 아는 섬세한 ‘기술’과 ‘전략’이었다. 나는 기획안의 첫 페이지를 넘기며, 두 번째 싸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침의 회의실은 차가운 전장 같았다. 프로젝트의 성패를 결정할 임원 보고. 내 앞에는 각 부서의 수장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앉아 있었다. 이전의 나라면, 이 압박감에 질식해 준비한 내용의 절반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차분했다. 지난 주말, 바다 앞에서 느꼈던 깊은 패배감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보고가 시작되고, 예상했던 대로 재무팀 임원의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들었다.
“박대리, 기획안의 기대효과는 좋은데, 초기 투자 비용이 너무 과도해. 이 리스크를 어떻게 감당할 생각이지?”
그것은 바위틈으로 파고들려는 우럭의 첫 번째 저항과도 같았다. 나는 힘으로 맞서는 대신, 노인이 가르쳐 준 ‘줄다리기’를 떠올렸다. 나는 그의 우려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신, 일단 한발 물러섰다.
“네, 임원님. 지적해 주신 리스크에 대해 저희 팀 역시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초기 비용을 15% 절감할 수 있는 B안을 함께 준비했습니다. 물론 B안은 A안에 비해 기대효과가 다소 감소하지만, 안정성 측면에서는 훨씬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희는 두 가지 안의 장단점을 비교 검토해 주시고, 회사의 전략적 방향에 더 부합하는 쪽으로 결정해 주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내 대답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나는 내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 것이 아니라, 선택권을 넘겨주며 그의 우려를 존중했다. 그는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B안의 자료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첫 번째 저항을 무사히 흘려보낸 것이다. 이어서 마케팅팀 상무가 공격적으로 파고들었다.
“이거 너무 안정성만 추구하는 거 아니야? 요즘 같은 시장에서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가서 뭘 얻겠다고!”
나는 그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의 의견을 일부 수용하며, 바위 반대쪽으로 놈의 머리를 돌리듯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상무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래서 저희 기획안의 핵심은, 안정적인 B안으로 시장에 먼저 진입한 후, 2단계에서 상무님께서 말씀하신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쳐 시장 점유율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것입니다. 12페이지를 보시면…”
미팅은 그렇게 끝났다. 나는 완벽하게 승리하지도, 패배하지도 않았다. 다만 터지지 않고, 바위틈에 처박히지도 않은 채, 무사히 ‘싸움’을 끝냈을 뿐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김 부장은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두 번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 주 내내, 나는 머릿속으로 지난 주말의 싸움을 복기했다. 단단한 채비만으로는 부족했다.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일까. 답을 찾지 못한 채, 금요일 저녁 나는 다시 ‘만선조구’로 향했다.
“사장님. 고기가 바위틈으로 파고들 때, 힘으로 당기면 안 된다고 하던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질문에 황 사장은 기름 묻은 손을 닦으며 내 낚싯대의 릴을 가리켰다. 릴의 위쪽에는 숫자가 적힌 작은 다이얼이 달려 있었다. ‘드랙(Drag)’. 나는 그것이 그저 릴을 분해할 때 쓰는 나사 같은 것인 줄로만 알았다.
“릴에 이게 왜 달려있겠어? 이게 보험이야, 보험. 낚싯줄이 버틸 수 있는 힘 이상으로 고기가 당기면, 이놈이 스풀을 역회전시켜서 줄을 슬슬 풀어주는 장치라고. 이걸 꽉 잠그고 힘으로만 버티니까 줄이 터지거나 고기가 처박히는 거야.”
그는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드랙을 꽉 잠근 채 줄을 당기자, 낚싯대가 부러질 듯 휘기만 했다. 하지만 드랙을 적당히 풀자, 강하게 당길 때마다 ‘치이익-’ 하는 상쾌한 소리와 함께 줄이 부드럽게 풀려나갔다.
“이 드랙 소리가, 고기하고 너하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신호야. 놈이 힘을 쓸 땐 이걸로 버텨주면서 힘을 빼고, 힘이 빠져서 멈칫할 때 감아들이는 거지. 무작정 버티는 게 아니라, 상대의 힘을 인정하고 받아주면서 싸우는 거라고.”
나는 처음으로 내 낚시 장비에 그런 섬세하고 지적인 기능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작은 다이얼 하나가, 힘과 기술의 균형을 잡아주는 핵심이었다.
주말, 나는 세 번째로 같은 방파제에 섰다. 채비를 던지기 전, 나는 드랙을 조절했다. 너무 헐거우면 챔질이 안 되고, 너무 꽉 조이면 터져버릴 것이다. 손으로 줄을 당겨보며, 적당한 저항과 함께 ‘치이익-’ 소리가 나는 최적의 지점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놈이 다시 찾아왔다. ‘쿠쿵!’ 심장이 멎을 듯한 충격과 함께, 낚싯대가 바다로 끌려 들어갔다. 놈은 어김없이 바위틈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이전의 나라면 반사적으로 릴을 꽉 쥐고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는 낚싯대를 세워 허리로 버티면서, 놈의 저항을 온전히 받아냈다.
‘치이이이익-!’
릴이 비명을 질렀다. 드랙이 풀리며 낚싯줄이 시원하게 빨려나갔다. 내 모든 준비와 신뢰가 담긴 줄이었다. 불안했지만, 나는 릴의 핸들을 놓았다. 지금은 내가 아니라, 저 작은 장치가 싸워야 할 시간이었다. 몇 초간의 격렬한 저항 끝에, 놈의 돌진이 잠시 멈췄다. 바로 지금이었다. 나는 멈칫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미친 듯이 릴을 감았다. 바위틈에서 한 뼘, 또 한 뼘, 놈을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놈은 다시 방향을 틀어 반대쪽으로 내달렸다. ‘치이이익-!’ 드랙은 또다시 노래했다.
그렇게 몇 번의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버티고, 감고, 풀어주고, 다시 감고. 그것은 힘자랑이 아닌, 정교한 리듬과 호흡의 싸움이었다. 마침내 놈의 저항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놈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검붉은 몸체, 억센 지느러미. 지난 두 번의 패배를 안겨주었던 바로 그놈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뜰채를 들어 놈을 건져 올렸다. 그리고 방파제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가만히 내 릴의 드랙을 내려다보았다. 승리의 열쇠는 더 강한 힘이 아니었다. 상대의 힘을 받아주고, 흘려보낼 줄 아는 저 작은 ‘여유’와 ‘유연함’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