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차린 밥상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쿨러 안에 담긴 우럭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묵직한 무게감. 그것은 단순한 물고기의 무게가 아니었다. 지난 몇 주간의 좌절과 고민, 그리고 마침내 얻어낸 성취의 무게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작은 원룸은 더 이상 어둡고 공허한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전리품을 들고 개선한 장군처럼 비장하게 부엌으로 향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나는 거대한 난관에 부딪혔다. 싱크대에 놓인 우럭은 더 이상 낚싯줄 끝에서 저항하던 ‘놈’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단한 비늘과 날카로운 지느러미, 그리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검고 깊은 눈을 가진 ‘생명’이었다. 나는 이 생명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막막했다. 칼을 들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도시의 마트에서 손질된 생선 토막만 사 먹던 나에게, 온전한 생선 한 마리는 너무나도 낯선 존재였다.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들고 ‘우럭 손질법’을 검색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영상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예전처럼 막연하게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싸워서 얻어낸 이 귀한 생명을, 최대한 존중하고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영상 속 전문가는 칼등으로 비늘을 긁어내고, 아가미를 들어 올려 내장을 제거했다. 나는 서툰 솜씨로 그를 따라 했다. ‘서걱, 서걱.’ 칼등에 긁혀나가는 비늘은 사방으로 튀었다. 내장을 제거할 때는 비위가 상해 몇 번이고 헛구역질을 했다. 생명을 다룬다는 것은 이토록 비리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잡은 고기에 대한 예의이자, 나의 승리를 완성하는 마지막 과정이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살과 뼈를 분리하는 ‘오로시’였다. 나는 몇 번이고 영상을 돌려보며 칼의 각도와 움직임을 눈에 익혔다. 등뼈를 따라 조심스럽게 칼을 넣고, 뼈를 긁는 감각에 집중하며 천천히 살을 발라냈다. 완성된 살점은 전문점의 그것처럼 매끈하지 않고 너덜너덜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내가 직접 분리해 낸 살점이었다. 나는 가장 두툼한 뱃살 부위를 골라 얇게 회를 떴다. 그리고 남은 뼈와 머리는 맑은 탕(지리)을 끓이기 위해 냄비에 담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내 앞에 조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서툰 솜씨로 썰어낸 우럭 회 몇 점과, 뽀얀 국물이 우러난 맑은 탕 한 그릇. 식당에서라면 결코 돈을 내고 사 먹지 않을 초라한 상차림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세상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완벽한 밥상이었다.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회 한 점을 집어 들었다. 혀끝에 닿는 순간, 단단하면서도 쫄깃한 식감과 함께 은은한 단맛이 번졌다. 놀라웠다. 이것이 내가 그토록 잡고 싶었던 놈의 맛이었다. 거친 조류를 버텨내고, 바위틈에 숨어 살아온 그 단단한 생명력이 내 입안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맑은 탕 국물은 그 어떤 조미료도 없이, 오직 생선뼈와 무에서 우러나온 깊고 시원한 맛으로 지친 속을 달래주었다.
나는 천천히 음식을 맛보며, 지난 몇 주간의 시간을 되새겼다. 첫 번째 실패는 준비 부족 때문이었다. 두 번째 실패는 기술 부족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세 번째 성공은, 힘과 기술의 균형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릴의 드랙을 풀어 상대의 힘을 인정하고 받아주었던 그 순간. 그것은 단순히 낚시의 기술이 아니었다.
재무팀 임원의 날카로운 공격에 더 많은 데이터로 맞서는 대신, 그의 우려를 인정하며 B안을 제시했던 나의 선택. 마케팅팀 상무의 거센 반박에 내 논리만 고집하는 대신, 그의 의견을 수용하며 더 큰 그림으로 대화의 방향을 틀었던 나의 전략. 그것은 모두 무의식중에 내가 바다에서 배운 ‘드랙의 철학’을 적용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깨달았다. 진짜 강함은 결코 부러지지 않는 단단함이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상대의 힘을 받아주며 부드럽게 풀려나갈 줄 아는 유연함. 그것이 바로 나를 터지지 않게 지켜준 보험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꿈속에서 나는 더 이상 텅 빈 보고서 앞에서 밤을 새우지 않았다. 대신, ‘치이익-’ 하는 경쾌한 드랙 소리를 들으며, 거대한 파도 위에서 춤을 추듯 유연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전의 나는 일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막연한 책임감으로 일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어떻게 이길 것인가’를 생각했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공략해야 할 대상어였고, 예상되는 문제들은 놈이 파고들 바위틈이었으며, 나의 데이터와 논리는 그것을 버텨낼 채비이자 기술이었다. 일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바뀌었다.
변화는 금세 인정으로 돌아왔다. 김 부장은 나를 따로 불러, 지난번 임원 보고를 통과한 프로젝트의 실무 책임을 맡겼다. 팀의 막내 대리에게는 파격적인 기회였다.
“박대리, 이 프로젝트는 자네가 처음부터 판을 짜고, 전략을 세워서 여기까지 온 거야. 이제 책임지고 끝까지 끌고 가봐. 필요한 지원은 내가 다 해줄 테니.”
어깨가 무거웠지만, 기분 좋은 무게감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 일의 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책임의 무게는 고스란히 시간의 빚으로 돌아왔다. 나의 평일 저녁은 온통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으로 채워졌다. 야근이 늘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노트북을 닫지 못했다. 주말을 하루 앞둔 금요일 오후, 김 부장이 내 자리에 다가와 말했다.
“박대리, 주말에 별일 없으면 출근해서 기획안 좀 더 다듬는 게 좋겠어. 월요일 아침에 바로 공유해야 할 것 같네.”
악의 없는, 지극히 합리적인 지시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번 주말, 나는 다시 그 방파제에 서기로 스스로와 약속했었다. 지난주에 얻어낸 승리의 감각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주말은 그렇게, 너무나도 쉽게 사라져 버렸다. 아이러니했다. 낚시를 통해 얻은 지혜로 일에서 성과를 냈더니, 그 성과가 이제 나의 낚시를 앗아가려 하고 있었다.
주말 내내 사무실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창밖은 화창했지만, 내 마음은 ‘조금’ 때의 바다처럼 정체되어 있었다. 문득, 낚시를 시작하기 전의 나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명확히 안다는 것이었다.
월요일 점심시간, 답답한 마음에 잠시 회사 밖으로 나왔다. 벤치에 앉아 캔커피를 마시는데, 옆에서 신입사원 몇몇이 스마트폰을 보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와, 이거 진짜 대박이다. 액션캠으로 찍었나 봐.”
힐끗 쳐다본 화면 속에는, 내가 알던 낚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 낚시꾼이 쉴 새 없이 낚싯대를 던지고 감으며,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휘두르는 낚싯대 끝에는 살아있는 미끼 대신, 물고기 모양의 반짝이는 무언가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물보라와 함께 놈이 가짜 미끼를 덮쳤다. 기다림의 낚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냥에 가까웠다.
“이게 루어 낚시라는 건데, 잘만 하면 한두 시간이면 손맛 볼 수 있대. 우리도 점심시간에 근처 강가에 한번 가볼까?”
한두 시간. 그 말이 내 귀에 박혔다. 내가 하는 원투낚시는 물때를 기다려 자리를 잡고, 채비를 멀리 던져 넣은 뒤에는 그저 하염없이 입질을 기다려야 하는, 하루의 대부분을 바쳐야 하는 낚시였다. 하지만 저것은 달랐다. 짧은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능동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낚시. 어쩌면 저것이라면, 지금의 나에게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만선조구’로 향했다. 쿨러도, 미끼 통도 없이 빈손이었다. 가게에 들어서자 황 사장이 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 초짜. 주말에 고기 좀 잡았나?”
“아뇨. 주말 내내 출근했습니다.”
내 대답에 그는 혀를 찼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물었다.
“사장님, 루어 낚시라는 거… 그건 좀 다른가요?”
황 사장의 눈이 반짝였다.
“어허, 벌써 다른 세계에 눈을 떴구만. 다르지, 완전히 달라. 자네가 하던 건 밥상 차려놓고 고기가 오기를 기다리는 낚시야. 근데 루어는, 굶주린 늑대처럼 네가 직접 발로 뛰면서 고기가 숨은 곳을 찾아내고, 이 가짜 미끼를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서 놈을 속여내는 거라고. 머리도, 몸도 훨씬 더 바빠.”
그는 카운터 서랍에서 작은 지그헤드와 벌레 모양의 고무 미끼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원투낚시가 ‘기다림의 철학’이라면, 이건 ‘유혹의 기술’이지. 생명 없는 이 고무 쪼가리에 네가 생명을 불어넣어야 돼. 살아있는 것처럼 헤엄치게도 하고, 다죽어가는 것처럼 비틀거리게도 하고. 그 미세한 움직임으로 놈을 속여내는 거야. 훨씬 더 머리 아프고, 훨씬 더 피곤한 낚시지.”
나는 내 손바닥 위에 놓인 작은 고무 벌레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이것으로 고기를 잡는다고?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강렬한 도전의식이 끓어올랐다. 이것은 낚시의 기술을 넘어, 심리를 파고드는 고도의 전략처럼 느껴졌다.
나는 새로운 낚싯대를 사는 대신, 그 작은 루어 몇 개만 사서 가게를 나왔다. 주말은 일에 빼앗겨 쿨러는 텅 비어 있었지만, 내 머릿속은 ‘유혹의 기술’이라는 새로운 화두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어떻게 이 생명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