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의 감각을 읽는 시간. 9화

가장 위대한 조과

by 돌부처

토요일 새벽, 나는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을 떴다. 창밖은 아직 짙은 남색이었지만, 더 이상 어둠이 두렵지 않았다. 이전의 출조일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비장함 대신 차분함이, 정복욕 대신 조심스러운 설렘이 마음을 채웠다. 나는 가장 좋은 원두를 갈아 보온병에 따뜻한 커피를 채웠다. 쓴맛과 신맛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물의 온도를 여러 번 확인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약간은 연한 농도였다. 아버지의 무릎에 덮어드릴 담요와, 혹시 출출하실까 싶어 부드러운 카스텔라 몇 조각을 챙겼다. 낚시 가방에는 고가의 루어나 수십 개의 튼튼한 채비 대신, 황 사장이 챙겨준 작고 단순한 채비 몇 개만 들어 있었다. 트렁크를 채운 것은 어획물에 대한 기대가 아닌, 한 사람을 향한 온전한 배려였다. 모든 준비는 서두르지 않았고, 모든 과정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병원에 들러 퇴원 준비를 마친 아버지를 부축해 차에 태웠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동작이라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재촉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느린 걸음에 내 시간의 속도를 맞췄다. 휠체어를 트렁크에 싣는 동작이 아직은 서툴렀다. 아버지는 조수석에 앉아, 오랜만에 마주하는 바깥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창문에 비친 아버지의 얼굴 위로 새벽의 가로등 불빛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한 시간 넘게 달리는 동안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차 안에는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라디오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옛 노래, 그리고 서로의 나직한 숨소리만이 존재했다. 한때 내가 그토록 어색해했던 아버지와의 침묵이, 이제는 그 어떤 대화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아버지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느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가 며칠 밤낮으로 찾아낸,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바다 위 낚시터였다. 주차장에서 낚시 자리까지 이어진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휠체어를 밀었다. 삐걱이는 바퀴 소리가 낯설었다. 내가 서 있던 거칠고 위태로운 방파제와는 다른, 안전하게 정돈된 세상. 바다는 저만치에 있었지만, 그 거리를 메워주는 단단한 나무 데크가 있었다. 발밑에서 전해져 오는 안정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낚시터 가장 안쪽, 햇살이 잘 드는 곳에 아버지의 휠체어를 세웠다. 그리고 황 사장에게서 사 온 작고 가벼운 낚싯대를 꺼내 채비를 꿰었다. 모든 것이 아이들 소꿉놀이처럼 단순했다. 찌와 봉돌, 그리고 바늘. 그게 전부였다. 나는 작은 갯지렁이를 꿰어 아버지의 마비되지 않은 왼손에 낚싯대를 쥐여드렸다. 아버지의 손은 생각보다 더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손 위로 내 손을 겹쳐, 낚싯대를 함께 잡았다.


“아버지, 여기 이 버튼만 누르면 줄이 풀려요. 천천히 한번 내려보세요.”


아버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눌렀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주황색 찌가 바로 발밑 수면 위로 떨어졌다. 멀리 던질 필요도, 기술도 필요 없었다. 그저 드리울 뿐이었다. 찌는 물결을 따라 부드럽게 흔들렸다.


우리는 그렇게 나란히 앉아,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찌를 바라보았다. 입질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시간을 물 위에 던져두고 있었다. 갈매기가 끼룩거리며 머리 위를 맴돌았고,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아버지의 옅어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나는 따뜻한 커피를 따라 아버지께 건넸다. 아버지는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한참 동안 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얼굴에, 아주 오랜만에 희미한 혈색이 도는 것 같았다.


“바람… 좋다.”


아버지가 나직이 말했다. 나는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낚으려던 것은 물고기가 아니었다. 바로 이 순간, 이 평온한 시간의 한 조각이었음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패턴’과 ‘맥락’은, 거창한 데이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평범한 순간 속에 숨 쉬고 있었다는 것을.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찌가 아주 미세하게 ‘까딱’ 하고 움직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다, 아버지의 손을 보고 멈칫했다. 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그저 물끄러미 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아주 오랜만에 호기심이라는 이름의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입질인지 아닌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작은 움직임이 아버지의 멈춰있던 시간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버지는 무언가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 살아있다는 신호 그 자체를 느끼고 있었다.


결국 그날 우리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텅 빈 쿨러.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충만했다. 아버지는 조수석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나는 백미러에 비친 아버지의 평온한 얼굴을 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가장 위대한 낚시는, 가장 큰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침묵의 시간을 건져 올리는 것임을. 나는 그날, 내 인생 최고의 ‘조과’를 기록했다. 그것은 쿨러에 담을 수 없는, 오직 마음속에만 담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 사무실의 공기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키보드 타건 소리,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 동료들의 분주한 발소리. 그 모든 소음의 교향곡은 여전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안의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이전에는 그 모든 것이 나를 재촉하고 압박하는 당연한 세상의 소음이었다면, 이제는 마치 다른 주파수의 소리처럼 한 겹의 막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내 안의 어딘가가 고요해진 탓이었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바다의 침묵이, 내 안에 작은 섬처럼 떠올라 어떤 소란도 잠재우는 방파제가 되어주고 있었다.


복귀한 나를 팀원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고, 내가 없는 동안의 업무 진행 상황을 공유해주었다.


“박대리, 그 까다롭던 클라이언트한테서 최종 컨펌 메일 왔어. 자네가 지난번에 만들어 둔 B안 덕분에 일이 아주 순조롭게 풀렸다고 다들 칭찬이 자자해.”


동료의 말에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 주 전의 나라면 뛸 듯이 기뻐했을 성공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 소식은, 그저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담담하게만 느껴졌다. 성취의 짜릿함은 분명했지만, 그 감정은 더 이상 내 존재의 전부를 뒤흔들지 못했다. 내 마음의 낚싯대는 더 이상 ‘성공’이라는 이름의 물고기를 향해 있지 않았다.


그날 오후, 내가 이끌던 프로젝트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다. 우리가 야심 차게 기획했던 신규 기능의 핵심 파트너사에서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런칭 일정을 맞추기 어렵다는 통보가 온 것이다. 긴급하게 소집된 회의실에 모인 팀원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당장 다음 주부터 대규모 마케팅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이번 통보는 프로젝트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였다.


“이거 완전히 계획이 다 틀어지는 거 아닙니까? 런칭 일정에 맞춰서 다른 모든 마케팅 계획이 잡혀 있는데…”

“파트너사를 더 압박해야 합니다. 계약서대로 이행하라고 강하게 푸시하죠. 위약금 이야기까지 꺼내야 합니다.”


팀원들은 흥분했다. 목소리가 높아졌고, 서로의 의견이 부딪히며 회의실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이전의 나라면, 나 역시 이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파트너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계약 조항을 근거로 그들을 압박하는 가장 논리적인 방법을. 하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불만을 토로하는 담당자, 이대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주말에도 출근하며 일정을 챙겼던 그의 노력을 알기에, 지금 그의 얼굴에 떠오른 깊은 좌절감이 남 일 같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이대리의 자리에 조용히 다가갔다. 그는 책상에 놓인 서류들을 신경질적으로 뒤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대리님, 잠깐 옥상에 바람 쏘러 가지 않을래요?”


옥상에 올라서자, 차가운 도시의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빼곡한 빌딩들이 만들어내는 회색빛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예전의 나라면 해결책부터 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가장 큰 문제가 뭡니까?’, ‘대안은 생각해 봤어요?’ 하지만 나는 그저, 그와 함께 침묵했다. 아버지와 함께 찌를 바라보았던 그 시간처럼. 때로는 어떤 질문도, 어떤 위로도 없이 그저 곁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나는 병실에서 배웠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이대리였다.


“죄송합니다, 박대리님. 제가 좀 더 꼼꼼하게 체크했어야 했는데… 파트너사만 믿고 있다가…”


그의 목소리에는 자책감이 가득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대리님 잘못이 아니에요. 그건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변수였잖아요. 지금 자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따뜻한 캔커피를 뽑아 그에게 건넸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파트너사 담당자랑은 자주 통화했어요?”

“네… 거의 매일같이 쪼았습니다. 근데 맨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제대로 된 상황 공유를 안 해줍니다. 답답해 미치겠습니다. 무슨 앵무새인 줄 알았다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클라이언트의 반박에 맞서기 위해 더 단단한 논리를 준비했던 것처럼, 이대리는 파트너사를 압박하기 위해 더 강한 요구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팽팽한 낚싯줄은 오히려 아무런 감각도 전해주지 못하는 법이다. 물고기가 겁을 먹고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듯이.


“혹시… 그 담당자분하고, 일 얘기 말고 다른 이야기는 해본 적 있어요?”


내 엉뚱한 질문에 이대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그럴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일정도 빠듯한데.”

“내일 오전에, 그분하고 딱 30분만 만나서 커피 한잔하고 와요. 가서 일 얘기는 꺼내지도 말고, 그냥 요즘 힘들지는 않은지, 주말에 뭐 했는지,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하고 와요. 이건 팀장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박대리가 부탁하는 겁니다.”


다음 날,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파트너사를 찾아갔던 이대리는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의 얼굴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분노와 좌절감 대신,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대리님… 그쪽 담당자, 신입이더라고요. 사수가 얼마 전에 퇴사해서 혼자 이 프로젝트 다 떠맡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기술팀이랑 소통도 잘 안되고, 위에서는 쪼고… 죽을 맛이었다고 하소연하는데, 차마 더 쪼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매일같이 죄송하다고 한 것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랬던 겁니다.”


그날 오후, 우리는 파트너사를 압박하는 대신, 그쪽 신입사원이 내부 보고를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우리 쪽 데이터를 더 보기 쉽게 정리해서 보내주었다. 그리고 우리 팀의 기술 인력을 잠시 파견해 그들의 문제를 함께 들여다보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팽팽했던 관계의 줄이 느슨해지자, 막혀 있던 소통의 물꼬가 트였다. 문제는 놀랍도록 쉽게 풀리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나는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았다. 그저 동료의 말을 들어주고, 그의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했을 뿐이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입질을 기다리듯, 그들의 시간이 흐르도록 잠시 지켜봐 주었을 뿐이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패턴’과 ‘맥락’은, 데이터의 흐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감정의 물결 속에, 그리고 그 흐름을 잠시 멈추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고요의 시간’ 속에 있었다. 나는 그날, 낚싯대 없이 가장 큰 것을 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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