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의 감각을 읽는 시간. 8화

세상에서 가장 느린 낚시

by 돌부처

시간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나의 하루는 병원의 면회 시간과 아버지의 검사 스케줄에 맞춰 조각났다. 며칠간의 휴가를 내고, 나는 집과 병원을 오가는 무채색의 동선을 반복했다. 새벽 바다의 상쾌함도, 프로젝트 성공의 짜릿함도, 모두 먼 전생의 일처럼 느껴졌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아버지의 시간이라는 거대하고 불가해한 조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작은 부표에 불과했다. 복도를 오가는 간호사들의 바쁜 발소리, 주기적으로 울리는 기계의 경고음, 다른 병실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 그 모든 것이 낯설고 차가운 세상의 언어처럼 들렸다.




사무실에서의 전화가 몇 번 걸려왔다. 김 부장은 내게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물으면서도, 마지막에는 늘 “아버지는 좀 어떠시냐”고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업무적인 딱딱함 대신, 서툴지만 진심 어린 염려가 묻어 있었다. 나는 그에게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깊은 괴리감을 느꼈다. 그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프로젝트’와 내가 마주한 ‘아버지의 병상’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공들여 쌓아 올렸던 논리의 성벽, 데이터의 요새는 지금 이곳, 생과 사의 경계선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내가 분석했던 모든 데이터와 예측했던 모든 가능성 목록에, ‘아버지의 부재’라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았다.


낚싯대는 원룸 현관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나는 그것들을 쳐다볼 용기조차 없었다. 한번은 무심코 손을 뻗었다가, 차가운 카본의 감촉에 화들짝 놀라 손을 떼기도 했다. 그것들은 더 이상 나에게 위안이나 성취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나의 가장 이기적인 순간을 증명하는 낙인이자, 받지 못한 전화의 침묵을 담고 있는 고요한 증인이었다. 지난 몇 주간 나를 그토록 뜨겁게 만들었던 열정이, 이제는 차가운 쇠붙이가 되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차라리 저것들을 모두 부러뜨려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




일주일 쯤 지나서 아버지는 의식을 되찾았지만, 오른쪽 팔다리에 마비가 남았고, 어눌한 발음으로 몇 마디 단어를 내뱉는 것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그 작은 변화에도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아버지의 공허한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평생 단단하고 강인했던 아버지. 주말이면 낡은 등산화 끈을 조여매고 산으로 향하던, 무거운 쌀가마니도 번쩍 들어 올리던 그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몸의 자유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병실 창가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던 아버지의 입에서,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바…람…”


나는 깜짝 놀라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는 힘겹게 손가락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창밖에서는 가을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앙상한 가지 끝에 매달린 잎들이 마지막 힘을 다해 파르르 떨고 있었다.


“바람… 부네.”


그것은 아버지가 쓰러진 후, 내게 건넨 첫 ‘문장’이었다. 그 안에는 어떤 원망도, 어떤 슬픔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창밖의 바람을 느끼는 한 사람의 무심한 감각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나는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누르며 대답했다.


“네, 아버지. 바람이… 많이 부네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집착했던 ‘읽는 행위’의 오만함을. 나는 물결의 무늬를 읽어 고기를 예측하고, 데이터의 패턴을 읽어 시장을 예측했다. 나는 세상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그리하여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는,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지금, 그저 ‘바람이 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읽는 것이 아니라, 그저 느끼는 것. 세상의 모든 의미와 분석을 내려놓은 자리에 비로소 찾아오는, 순수한 감각의 세계. 나는 그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그날 이후, 나의 시간은 조금 달라졌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상태가 ‘호전될 것인가’를 예측하려 애쓰지 않았다. 의료진의 차트를 훔쳐보며 모르는 의학 용어를 검색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대신, 아버지의 곁에 앉아 그가 느끼는 것들을 함께 느꼈다. 창밖으로 비치는 오후의 햇살이 병실 바닥에 만드는 무늬의 변화,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희미하게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 나는 낚싯대를 드리우는 대신, 아버지의 시간에 나의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냈다. 어떤 목적도, 어떤 전략도 없는, 그저 함께 존재하는 시간.




어머니를 쉬게 해드리고 홀로 병실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깬 내게, 아버지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우물거렸다. 마치 물속에서 올라오는 기포처럼, 희미하고 불분명한 소리였다. 나는 급히 아버지에게 귀를 가져다 댔다.


“…낚…시…”

“네? 아버지?”


숨 막히는 정적 끝에, 아버지는 마지막 힘을 짜내듯 한 음절을 더 뱉었다.


“…가…자…”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나와 함께 낚시를 가자고 말하고 있었다. 그의 어눌한 발음 속에는, 퇴직하면 아들과 함께 뱃놀이를 가고 싶다던 그 소박한 꿈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 꿈은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처럼, 나를 향해 희미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눈물이 시야를 가렸지만, 애써 웃으며 말했다.


“네, 아버지. 꼭 같이 가요. 제가 더 좋은 낚싯대 사놓을게요. 아주 근사한 배도 빌리고요. 아버지 좋아하시는 따뜻한 커피도 보온병에 담아갈게요.”


아버지는 희미하게 웃는 듯했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버려야 했던 것은 낚싯대가 아니었다. ‘성공’과 ‘성취’라는 무거운 추를 매달아, 오직 나 자신만을 향해 던졌던 나의 이기적인 낚싯줄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 다른 종류의 낚시를 준비해야 했다. 고기를 잡기 위한 낚시가 아니라, 아버지의 시간을 건져 올리기 위한 낚시. 그 낚시에는 어떤 기술도, 어떤 채비도 필요 없을 터였다. 필요한 것은 오직, 함께 그 시간을 기꺼이 기다려주는 마음뿐이라는 것을. 나는 비로셔, 내가 드리워야 할 가장 무거운 낚싯대의 진짜 의미를 마주하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약속은, 가라앉던 내 일상에 던져진 구명튜브와 같았다. 그것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과제였다. 나는 더 이상 병원 복도에서 무기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나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다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다른 속도로.


나의 하루는 아버지의 재활치료와 함께 시작되었다. 물리치료사의 지도에 따라 아버지의 굳은 팔다리를 주무르고, 아주 조금씩 접었다 펴는 동작을 반복했다. 위축된 근육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차가웠다. 나는 내 손바닥의 온기가 조금이라도 전해지기를 바라며, 묵묵히 아버지의 다리를 주무르고 또 주물렀다. 그것은 지루하고 고된, 그리고 아무런 진전이 없어 보이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1센티미터쯤 더 굽혀진 아버지의 무릎, 희미하게 힘이 들어가는 어깨의 근육. 나는 그 미세한 변화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것은 마치 ‘조금’의 바다에서, 멈춰있는 듯한 물속의 아주 작은 흐름을 읽어내려는 노력과 같았다. 입질 한번 없는 바다에서 낚싯줄 끝에 매달린 감각에 모든 것을 거는 것처럼, 나는 내 손끝에 모든 것을 걸었다.




아버지가 잠든 오후, 나는 병원 휴게실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검색창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단어들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휠체어 낚시’, ‘장애인 낚시터’, ‘안전한 바다낚시 좌대’. 화면에는 화려한 조과를 자랑하는 낚시꾼들의 사진 대신, 평평한 데크가 설치된 저수지와 안전 난간이 둘러진 바다 위 낚시공원의 사진들이 떠올랐다.


나는 수십 개의 블로그와 카페 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곳의 언어는 내가 알던 낚시의 세계와는 달랐다. ‘비거리’나 ‘파이팅’ 같은 단어 대신, ‘주차장에서 포인트까지의 경사로 유무’, ‘화장실 접근성’, ‘안전 난간의 높이’ 같은 단어들이 더 중요했다. 한 블로그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모시고 낚시를 다녀온 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는 물고기 사진 대신, 휠체어 바퀴가 걸리지 않도록 틈새를 메운 낚시터 바닥 사진을 올려두었다.


‘아버지께서는 물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으셨지만, 날아가는 갈매기를 보며 아이처럼 웃으셨습니다.’


그 문장 아래에서 나는 한참을 머물렀다. 그것은 더 이상 대상어를 정복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불편함과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의 언어였다. 나는 마치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듯, 그 낯선 정보들을 하나씩 노트에 정리했다. 그것은 우럭 채비를 분석하던 오답 노트와는 다른, 희망을 위한 계획서였다.

며칠 후, 나는 오랜만에 ‘만선조구’로 향했다. 가게 문에 달린 종소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황 사장은 나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이구, 초짜. 이게 얼마 만이야. 나는 자네 낚시 접은 줄 알았네.”

“그럴 리가요. 그냥 좀 바빴습니다.”


그는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수척해진 얼굴과 그늘진 눈빛에서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낀 것 같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래, 오늘은 또 뭘 사러 왔나? 저번에 놓친 우럭 놈 잡으러 갈 채비라도 하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장님. 혹시… 휠체어 타고도 편하게 낚시할 만한 곳이 있을까요? 그리고, 한 손으로도 쉽게 다룰 수 있는 가벼운 낚싯대 같은 것도요.”


내 질문에 황 사장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과, 내 등 뒤의 허공을 번갈아 훑었다. 그는 모든 것을 짐작한 듯했다.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먼지가 뽀얗게 쌓인 낚싯대 하나를 꺼내왔다. 그것은 내가 샀던 날렵한 루어대도, 튼튼한 원투대도 아니었다. 2미터가 채 안 되는 짧고 아담한 크기의, 아이들도 쓸 수 있을 법한 작은 낚싯대였다.


“이거 한번 들어봐. 가볍고 짧아서 한 손으로도 충분히 다룰 수 있어. 멀리 던질 필요 없이 바로 발 앞에서 하는 낚시에 쓰는 거야.”


나는 낚싯대를 받아 들었다. 놀랍도록 가벼웠다. 그 위에는 버튼만 누르면 줄이 풀리고 감기는, 아주 단순한 구조의 릴이 달려 있었다. 복잡한 드랙 조절도, 정교한 캐스팅 기술도 필요 없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도구였다.


“누구하고 같이 가려고?”


그가 나직이 물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받지 못한 전화, 아버지의 병상, 그리고 ‘낚시 가자’는 약속. 내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더니,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큰 고기 잡으려고 바다에 가는 줄 알지. 근데, 낚시 오래 한 사람들은 다 알아. 진짜 낚시는 옆 사람한테 커피 한 잔 건네주고, 같이 라면 끓여 먹는 그 시간에 있다는 걸.”


그는 튼튼한 바늘 몇 개와 가장 작은 봉돌, 그리고 찌 하나를 골라 내게 건네주었다.


“이 채비면 충분해. 고기 잡으러 가는 거 아니잖아. 아버지랑 바람 쐬러 가는 거지.”


나는 그가 골라준 채비와 작은 낚싯대를 들고 가게를 나섰다. 그날 밤, 나는 병실에서 아버지에게 낚싯대 사진과 인터넷에서 찾은 낚시공원의 사진을 보여드렸다.


“아버지, 여기는 주차장에서 바로 앞까지 길이 좋대요. 난간도 높아서 안전하고요. 이 낚싯대는 가벼워서 힘도 별로 안 들 거예요. 우리가 쓸 채비는 이렇게, 아주 간단해요.”


아버지는 내 스마트폰 화면을 한참 동안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그의 공허하던 눈동자에 아주 오랜만에 희미한 빛이 감돌았다. 그는 사진 속의 평화로운 저수지와, 내 손에 들린 작은 낚싯대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마비된 오른쪽 손을 움직여 내 손을 잡으려 애썼다. 앙상한 아버지의 손가락이 내 손등에 닿았다. 힘은 없었지만, 그 어떤 입질보다도 선명한, 살아있는 신호였다. 그 차갑고 메마른 감촉 속에서, 나는 꺼지지 않은 아버지의 소망을, 그리고 나에 대한 믿음을 읽었다.


그 무엇도 잡지 않아도 좋을,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평화로운 낚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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