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의 감각을 읽는 시간. 11화

두 개의 낚싯대

by 돌부처

회의실의 얼어붙은 공기는 그날 오후 내내 사무실을 맴돌았다. 나와 김현승 대리는 서로의 모니터만 바라볼 뿐,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팀원들은 우리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키보드만 두드렸다. 그것은 마치 낚싯줄이 터지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과도 같았다. 퇴근 무렵, 김 부장은 나와 김현승을 회의실로 불렀다.


“두 사람 의견, 잘 들었어.”


그는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둘 다 틀린 말은 없어. 김현승 대리의 속도감도 필요하고, 박주원 대리의 신중함도 필요하지. 하지만 배는 두 개의 키를 가질 수 없어. 방향은 하나여야만 해.”


그는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은 어느 한쪽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 냉정한 심판관의 그것이었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두 사람이 합의해서, 단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된 프로젝트 계획안을 가져와. 만약 그때까지도 결론이 안 나면, 이 프로젝트는 내가 직접 끌고 갈 거야. 물론,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겠지.”


그것은 최후통첩이었다. 김 부장은 우리에게 협력하라는 과제를 던져주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서로를 설득하거나 굴복시키라는 잔인한 경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다음 날부터 사무실은 차가운 전쟁터가 되었다. 나와 김현승은 회의실 양 끝에 각자의 화이트보드를 세우고, 서로의 논리로 성벽을 쌓아 올렸다. 그는 속도와 효율을 상징하는 온갖 그래프와 시장 점유율 예측 데이터를 붉은색 마카로 그려나갔고, 나는 고객의 목소리와 과거의 실패 사례에서 얻은 교훈들을 파란색 마카로 차분하게 정리해 나갔다. 우리의 논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완벽했지만, 그 두 개의 보드는 결코 하나로 합쳐질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지도와 같았다.


“박대리님, 그 인터뷰 자료 좋습니다. 근데 그거 정리하고 분석해서 결론 내릴 때쯤이면, 우리 경쟁사는 이미 베타 테스트 끝내고 2차 버전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조소가 섞여 있었다.


“김대리님, 속도만 내다가 암초에 부딪혔던 프로젝트가 지난 분기에만 몇 개였는지 잊으셨습니까? 가장 빠른 실패도 결국 실패일 뿐입니다.”


나의 반박 역시 차갑게 맞받아쳤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수요일이 지나고 목요일이 되었지만, 우리의 계획안은 여전히 두 개의 다른 문서로 존재했다. 팀원들은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한 채, 불안한 눈빛으로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사무실의 침묵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나의 평온함, 나의 관점은 김현승의 거침없는 속도 앞에서 무기력한 ‘느림’으로, 현실 감각 없는 ‘이상론’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나는 정말 틀린 것일까. 바다에서 배운 지혜는, 이 전쟁터에서는 그저 한가한 소리에 불과한 것일까. 밤이면 잠 못 이루고 천장을 바라보며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의 논리에도 분명 일리가 있었다. 어쩌면 내가 찾은 고요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었을까.




금요일, 마감일 아침이 밝았다. 나는 밤을 새워 만든 마지막 설득 자료를 들고 출근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패배를 예감하고 있었다. 그때, 내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에게서 온 문자였다.


‘오늘 아빠가 처음으로 붕어빵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네 덕분이야. 고맙다, 아들.’


짧은 문장. 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지난 몇 주간 그토록 찾아 헤맸던 위안이 담겨 있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아무것도 잡지 못했던 그 고요한 바다. 그 시간은 결코 ‘결과’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느리고 무의미해 보였던 시간들이, 아버지의 멈춰있던 마음을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자료를 들고 김현승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했다.


“김현승 대리님. 제가 졌습니다. 김대리님 방식대로 진행하시죠.”


내 갑작스러운 항복 선언에, 김현승은 물론 주변의 모든 팀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김현승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시죠? 뭔가 다른 속셈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닙니다. 다만, 이 프로젝트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바다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제 낚싯대로는 저 물살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비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후, 김현승이 주도하여 완성된 최종 계획안이 김 부장에게 보고되었다. 보고는 성공적이었다. 김 부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그 주말, 처음으로 낚싯대를 챙기지 않고 바다로 향했다. 고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묻고 싶어서였다. 나는 정말 틀렸던 것인지. 방파제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한쪽에서는 나처럼 묵직한 원투낚싯대를 던져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노인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젊은 낚시꾼이 가벼운 루어대를 들고 쉴 새 없이 캐스팅하며 바다를 탐색하고 있었다.


두 개의 낚싯대. 두 개의 다른 방식.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 것일까. 문득 깨달음이 섬광처럼 머리를 스쳤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김현승 역시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서로 다른 어종을 노리는 낚시꾼이었을 뿐이다. 깊은 곳에 숨어있는 우럭을 잡기 위해서는 나의 신중함과 기다림이 필요하고, 수면 가까이에서 먹이 사냥을 하는 농어를 잡기 위해서는 그의 속도와 탐색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방식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상대해야 할 바다가 어떤 곳이고, 그 안에 어떤 물고기가 사는지를 아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나는 왜 나의 방식만이 옳다고 고집하며, 그의 방식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나는 싸움에서 졌지만, 더 중요한 것을 얻었다. 월요일이 되면, 나는 김현승을 찾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말해야겠다고. 우리가 잡아야 할 것은 한 종류의 물고기가 아니며, 우리에게는 두 개의 다른 낚싯대가 모두 필요하다고.




월요일 아침, 나는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패배의 씁쓸함도, 승자에 대한 질투도 없었다. 마음은 지난 주말에 보았던, 모든 것을 말없이 받아주던 바다처럼 고요하고 너그러워져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김현승과 경쟁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그와 함께 낚시를 해야 할 이유를 찾았을 뿐이다.


나는 내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곧장 김현승의 자리로 향했다. 그는 이미 모니터 두 대를 띄워놓고, 무서운 속도로 무언가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마치 수면 위를 질주하는 루어처럼 빠르고 정확했다.


“김현승 대리님,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내 목소리에, 그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팀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패배자가 승자에게 다시 시비를 거는 듯한 모양새였을까. 김현승은 의자와 키보드 사이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이미 다 끝난 이야기 아닙니까? 계획안은 승인됐고, 이제 실행만 남았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 계획안에 대해서는 어떤 이견도 없습니다. 다만… 그 계획을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어서요.”


내 차분한 태도에, 김현승은 의외라는 듯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탕비실로 향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커피가 내려지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김대리님 방식이 맞았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속도가 생명인 바다였어요. 제가 너무 제 방식만 고집했습니다. 지난주 제 실수, 깨끗하게 인정합니다.”


나의 진솔한 사과에, 그의 딱딱했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저도 좀 과했던 건 압니다. 박대리님 의견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우리 상황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네, 저도 이제는 그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나는 따뜻한 커피 잔을 들고, 지난 주말 바다에서 보았던 두 명의 낚시꾼 이야기를 꺼냈다. 원투낚시꾼과 루어낚시꾼. 깊은 곳을 노리는 자와 넓은 곳을 탐색하는 자.


“저는 어쩌면, 우럭을 잡는 낚시꾼이었나 봅니다. 깊은 곳에 숨어있는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고, 오랜 시간을 들여 단 한 번의 입질을 기다리는. 반면에 김대리님은, 넓은 바다를 끊임없이 탐색하며 회유하는 농어를 쫓는 낚시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고, 공격적으로 목표를 찾아내죠.”


내 비유에, 김현승은 처음으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우리가 지금 상대해야 할 프로젝트라는 바다에는, 우럭과 농어가 모두 살고 있다는 겁니다. 김대리님의 방식대로, 빠른 속도로 시장을 선점하는 것은 당장 눈앞의 농어를 잡는 것과 같습니다. 반드시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일이죠. 하지만 그렇게 잡은 농어 떼가 사라지고 난 뒤에, 우리 배 밑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요?”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깊은 바위틈에 숨어있는 까다로운 우럭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충성도 높은 고객, 우리 제품의 진짜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을 잡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그들의 습성을 파악하고, 그들이 무엇을 먹고 어디에 숨어있는지를 연구하는, 느리고 지루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그러니, 김대리님은 농어를 잡아주십시오. 저는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깊은 바닷속을 탐색하며 우럭의 지도를 그리겠습니다. 김대리님이 시장을 개척하는 동안, 저는 그 시장을 지킬 방법을 찾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다른 낚싯대가 모두 필요합니다.”


내 제안이 끝나자, 탕비실에는 다시 침묵이 흘렀다. 김현승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나를 향한 경쟁심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전략가의 그것이었다.


“나쁘지 않네요.”


한참 만에 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두 개의 팀으로 나눠서 비효율적으로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박대리님이 그린 지도가 엉터리라면, 그 시간은 전부 낭비가 되는 거니까요.”

“물론입니다. 그래서 제안 드리는 겁니다. 제가 찾은 정보는 모두 김대리님과 투명하게 공유할 겁니다. 제 지도는 김대리님의 속도에 방향을 더해줄 나침반이 될 테니까요.”


바로 그때, 탕비실 문이 열리고 김 부장이 들어섰다. 그는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는 듯, 우리 두 사람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배의 키가 하나로 맞춰지는군.”


그는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내가 너희 둘을 함께 붙여놓은 이유가 바로 그거야. 한 놈은 무작정 달리기만 하고, 한 놈은 땅만 파고 있으니. 서로의 낚싯대를 뺏을 생각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한 배 위에서 줄이 꼬이지 않게 낚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길 바랬다고.”


김현승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당혹감이 아닌, 멋쩍은 미소였다.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봐. 이 배의 선장은, 이제부터 너희 두 사람이다.”


김 부장이 나가고, 탕비실에는 다시 우리 둘만 남았다. 김현승이 먼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합니다, 박주원 대리님. 제 루어가 어디로 날아가야 할지, 좋은 포인트 많이 알려주십시오.”


나는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김현승 대리님. 제가 너무 깊은 곳만 파고들지 않도록, 가끔씩은 수면 위로 끌어내 주십시오.”


우리의 손끝에서, 두 개의 다른 낚싯줄이 단단한 매듭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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