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빼기
동이 트기 시작한 사무실은 고요했다. 나는 차동민 차장의 사무실 문 앞에 섰다.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이른 시간. 그는 언제나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었다. 유리문 너머로, 그는 이미 자기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노크 없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인기척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 스친 것은 놀라움이 아닌, 올 것이 왔다는 차가운 체념이었다.
“무슨 일인가, 박 과장. 이른 아침부터.”
그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나를 향한 경계심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차장님.”
나는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 주머니에서 작은 USB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딸깍’ 하는 소리가, 텅 빈 사무실 안을 무겁게 울렸다.
“낚시를 하다 보면, 가끔 원치 않는 고기가 낚일 때가 있습니다. 독을 품고 있거나, 너무 작아서 놓아줘야 하는 놈들이죠.”
내 뜬금없는 낚시 이야기에,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낚시꾼은 그럴 때, 최대한 고기가 상처 입지 않게 바늘을 빼줍니다. 그리고 다시는 잡히지 말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바다로 돌려보내죠. 소란을 피워봤자 저만 손해니까요. 다른 물고기들까지 다 도망가 버릴 테니.”
나는 테이블 위의 USB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 쳤다.
“이 안에, 아주 날카로운 바늘이 들어있습니다. 차장님의 가장 깊은 곳에, 아주 아프게 박혀버린 바늘이죠. ‘피닉스 프로젝트’ 때부터 이어진, 아주 오래되고 녹슨 바늘입니다.”
‘피닉스 프로젝트’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 모든 핏기가 가셨다. 그는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네…!”
“제가 오늘 온 것은, 그 바늘을 빼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더 깊이 박히기 전에, 더 큰 상처가 나기 전에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컴퓨터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에는 감사팀에 제출할 우리 팀의 ‘비공식 활동’에 대한 보고서가 띄워져 있었다.
“이 보고서만 제출되지 않는다면, 이 바늘은 더 이상 차장님을 괴롭히지 않을 겁니다. 저는 오늘 새벽, 위험한 사냥을 하느라 지친 제 팀원들과 함께,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잡지 못한 것으로 할 생각입니다. 우리는 그저, 낚시에 실패한 어부일 뿐이죠.”
그것은 나의 제안이었다. 협박이 아닌, 거래. 나는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팀원들과, 우리의 프로젝트를 지키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쥐고 있었다. 그는 평생을 포식자로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낚싯줄 끝에 매달려 생사를 저울질당하는 거대한 상어에 불과했다.
마침내, 그는 마우스를 클릭했다. 화면 위에 떠 있던 보고서 파일이, ‘휴지통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라는 메시지 창과 함께 사라졌다.
“……됐나?”
그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USB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서, 그것을 무릎으로 가볍게 부러뜨려 버렸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의 위험했던 증거는 두 동강이 났다.
“네. 이제 됐습니다.”
나는 부러진 USB 조각을 그의 책상 위 휴지통에 버렸다.
“바늘은 뺐습니다. 상처가 덧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이 바다에는, 차장님 말고도 수많은 낚시꾼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요.”
나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의 사무실을 나섰다. 복도를 걸어 나오는 내 다리가 후들거렸다. 승리의 기쁨은 없었다. 대신,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지독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작전실로 돌아오자, 밤을 새운 팀원들이 초조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던 ‘상어 낚시’라는 글자를 조용히 지웠다.
“모든 게 끝났습니다.”
내 말에, 김현승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 어떻게 한 겁니까?”
나는 창밖을 보며, 나직이 대답했다.
“그냥, 낚싯줄을 끊어주고 왔습니다. 그놈은 이제 두 번 다시 우리 미끼를 물지 않을 겁니다.”
팀원들의 얼굴에 안도와 환희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낚시꾼에게 놓아주는 것은 때로 미덕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토종 어종을 보호하고, 미래의 자원을 위한 선택일 때 그렇다. 생태계 교란종은 잡는 즉시 제거하는 것이 법이고 상식이다. 그들을 놓아주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망치는 어리석은 행위인 것이다.
나는 방금, 우리 회사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포식자를, 내 손으로 다시 바다에 풀어준 셈이었다. 그가 다시 돌아와 더 큰 혼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불길한 예감이 씁쓸한 뒷맛처럼 입안에 맴돌았다.
작전실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차동민 차장이 제출했던 감사 요청은 ‘내부 검토 결과, 근거 불충분’이라는 짧은 코멘트와 함께 조용히 반려되었다. 우리를 옥죄던 보이지 않는 그물은 걷혔고, 프로젝트는 다시 우리의 손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 보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전과 같지 않았다.
작전실의 공기는 이전의 뜨거운 열정 대신, 차갑고 신중한 긴장감으로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거침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지 않았다. 대신, 모든 발언과 행동은 몇 번이고 되짚어보는 신중함 속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상어를 잡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역시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팀원들이었다. 순진했던 최경호 사원은 말이 없어졌고, 날카로웠던 이지아 사원의 눈빛에는 어떤 체념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내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지시하는 일들을 묵묵히 처리할 뿐이었다. 우리가 함께 공유했던 비밀은, 우리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밧줄이 아니라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되어 있었다.
김현승 과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전히 최고의 파트너였지만, 가끔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 속에는 내가 읽어낼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가곤 했다. 그는 나의 ‘낚시꾼의 방식’에 동의했지만, 동시에 그 방식이 가진 서늘함과 위험성을 목격한 것이다.
나는 리더로서, 이 가라앉은 배의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려야만 했다. 하지만 나 자신조차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바늘 빼기’.
그것은 분명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었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한, 가장 현명한 방식이라고. 하지만 그날 이후, 내 손끝에는 상어의 거친 비늘 대신, 미끌거리는 불쾌한 감촉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정말,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은 것일까. 어쩌면 나 자신을 포함해서.
나는 홀로 바다로 향했다. 낚싯대를 펼쳤지만, 무엇을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텅 빈 낚싯줄을 드리운 채, 지난 몇 주간의 시간을 복기했다. 차동민이라는 상어, 함정, USB, 그리고 마지막 대면. 모든 퍼즐 조각은 완벽하게 맞춰졌고, 결과적으로 나는 승리했다. 하지만 왜 마음은 이토록 무거운 것일까.
그때, 저 멀리 갯바위 위에서 무언가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가마우지 한 마리가 물속으로 뛰어들어, 제 몸집만 한 물고기를 부리에 물고 올라온 참이었다. 물고기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가마우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놈을 바위 위로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부리로 놈의 숨통을 끊어, 한입에 삼켜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잔인하고 효율적인 사냥.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것이 바로 자연의 방식이었다.
약육강식. 승자와 패자.
그곳에는 어떤 도덕적 딜레마도, 씁쓸한 뒷맛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가마우지가 될 수 없었다. 나는 인간이었고, 나의 바다는 단순한 먹이사슬의 법칙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문득, 내가 차동민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역시 자신의 생존과 성공을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잔인한 방식으로 경쟁자를 제거했을 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팀과 프로젝트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나는 결국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를 제압했다. 더 교묘하고, 더 은밀하게.
나는 조용히 낚싯대를 접었다. 낚시는 더 이상 내게 위안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내 안의 가장 어두운 모습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월요일 아침, 나는 작전실에 들어서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우리는 잠시 낚시를 멈춥니다.”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대신, 우리는 배를 수리할 겁니다. 지난 항해에서 생긴 균열들을 메우고, 서로에게 박힌 가시들을 뽑아내야 합니다.”
나는 김현승과 눈을 마주쳤다.
“우리가 가야 할 바다는 아직 멀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서로를 믿고 다시 함께 노를 저을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그것은 리더로서 내리는 또 다른 종류의, 어려운 결정이었다.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다시 확인해야만 했다. 폭풍은 지나갔지만, 진짜 항해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