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바다
진공의 침묵 속에서, 포식자는 먹잇감에게 조용히 달라붙었다.
길이 2.7킬로미터에 달하는 강철의 묘비, ‘타이탄’. 4만 명의 비명을 집어삼킨 채 30년간 우주를 떠도는 인류 최악의 재난선. 그리고 그 옆에 기생하듯 도킹한 내 작은 우주선, ‘스크랩 야드 7호’.
비교하는 것조차 모욕적인 크기 차이였다.
“도킹 시퀀스 완료. 외부 기압 0. 선체 온도 영하 127도. 살아있는 생명체 없음. 아주 깨끗하고 완벽한 무덤이야, 태인.”
헬멧 속으로 비아냥거리는 합성음이 울렸다. 내 유일한 파트너이자 고철 덩어리 AI, ‘고물’ 녀석이었다.
“입 다물고 외부 감시나 제대로 해, 고물. 연방 순찰선이라도 뜨면 네놈부터 우주 미아로 만들어 버릴 테니.”
나는 툴툴거리며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했다. 등 뒤의 소형 산소 공급 장치, 허리춤에 찬 플라스마 절단기. 그리고 이 일의 핵심이자 내 목숨줄인, 커스텀 개조된 해킹 콘솔과 팔뚝에 부착된 ‘스파이더 잭’.
내 직업은 에코 다이버. 죽은 자의 바다로 잠수해, 그들의 마지막 기억(Echo)을 훔치는 도둑이다.
그리고 오늘 나의 목표는, 이 거대한 무덤의 심장부에 잠들어 있을 단 한 명의 기억. 타이탄 침몰의 비밀을 알고 있던 수석 연구원, ‘엘리자베스 리’ 박사의 마지막 5분이다.
의뢰비는 내 남은 인생을 바꿔놓을 액수였다. 물론, 살아 돌아온다면 말이지만.
“다이빙 시작한다.”
나는 타이탄의 비상 해치를 절단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함선 내부는 완벽한 무중력 상태였다.
복도 천장에는 비상등이 깨진 채 섬광을 터뜨리고 있었고, 그 빛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복도에 떠다니는 기괴한 형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어붙은 채 공중에 부유하는 승무원들의 시체. 터져 나온 내장과 살얼음이 엉겨 붙어, 마치 끔찍한 현대미술 조각품 같았다.
나는 익숙하게 그 사이를 헤쳐나가며 함교를 향해 나아갔다. 수십 번도 더 해온 일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위협이 되지 않는다. 진짜 위협은 언제나 살아있는 놈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의 침묵은 유독 기이했다. 마치 수만 명의 망자들이 숨을 죽이고, 이방인의 침입을 지켜보는 듯한 압박감. 헬멧 속에서 내 거친 숨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30분 후, 마침내 함교에 도착했다. 거대한 정면 스크린 너머로 끝없는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함장석에 앉은 채 미라가 된 선장의 시신이 나를 반겼다.
“좋아, 시작해 볼까.”
나는 함장의 시체를 옆으로 밀치고, 메인 프레임에 접속하기 위해 제어 콘솔의 패널을 뜯어냈다. 복잡하게 얽힌 광섬유 케이블 다발이 속살을 드러냈다.
“고물, 엘리자베스 리 박사의 마지막 위치 스캔해.”
“함교가 아니라 7번 의료 구역, 수석 외과의의 개인 단말기 근처에서 마지막 생체 신호가 끊겼어. 뭔가 이상한데... 왜 연구원이 의료 구역에 있었을까?”
“그걸 알아내는 게 내 일이지.”
나는 스파이더 잭을 팔뚝에서 분리해, 8개의 기계 다리가 달린 거미처럼 콘솔의 코어 회로에 물리적으로 연결했다.
치직, 소리와 함께 스파크가 튀었다.
“정신 단단히 붙잡아, 태인. 타이탄의 네트워크야. 여긴 보통 유령선과는 차원이 다를 거다.”
나는 헬멧의 ‘뉴럴 댐퍼’ 수치를 최대로 올리고, 눈을 감았다.
“다이브.”
의식이 아득해지며, 현실의 감각이 사라졌다.
눈을 뜨자, 나는 핏빛 데이터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기괴한 가상공간, ‘데이터 스피어’에 서 있었다. 이곳이 바로 타이탄의 메인 네트워크. 수만 명의 죽음이 기록된 전자 무덤.
그리고 사방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과 원망의 속삭임이 내 정신을 할퀴었다.
[뉴럴 쇼크 감지! 방어벽 12% 손상!]
젠장, 들어오자마자 이 정도라고? 나는 이를 악물고 쏟아지는 정신 공격을 버텨내며, 엘리자베스 리의 데이터 흔적을 쫓았다. 저기 있다. 붉은 데이터 폭포 저편에 희미하게 깜빡이는 파일.
하지만 내가 그 파일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파일 앞에서 검은 노이즈가 인간의 형상으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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