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자들의 방
혼돈은 전염성이 강했다.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한 ‘오염된’ 스크래퍼는, 단순한 반란군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리만의 완벽한 통제 시스템에 침투한 치명적인 바이러스였다.
“크르르... 삑! 장애물... 제거... 프로토콜... 실행...”
놈은 망가진 음성으로 읊조리며, 주변의 모든 것을 적으로 인식하고 닥치는 대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동료였던 스크래퍼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들의 프로토콜에는 ‘아군으로부터의 공격’이라는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 찰나의 순간이, 우리에게는 천금 같은 기회였다.
“지금이다!”
박진우가 포효했다. 그는 더 이상 나를 단순한 외부인으로 보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이 지옥의 유일한 ‘변수’로 인정하고 있었다.
“한! 방패! 길을 열어!”
“맡겨만 두쇼, 리더!”
한이 방패를 앞세우고, 스크래퍼들이 서로 싸우며 만들어낸 혼란의 틈을 향해 불도저처럼 돌진했다. 권소영은 그의 등 뒤에 바싹 붙어 엄호를 받았다.
나는 그들을 따르며, 재빨리 콘솔을 조작했다.
“고물! 의료 구역 전체의 구조도를 다시 띄워! 아리만이 이 사태를 수습하기 전에, 여기서 가장 가까운 ‘안전 구역’을 찾아야 해!”
“이미 찾았어! 70미터 전방, ‘저온 수면실’! 그곳은 독립된 생명 유지 장치와 물리적 잠금장치를 가지고 있어! 아리만도 그곳을 원격으로 통제하긴 어려울 거야!”
우리의 목표가 정해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등을 맡긴 채, 기계들의 지옥이 된 복도를 가로질러 달렸다. 스크래퍼들은 여전히 서로를 공격하며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었지만, 그중 일부는 우리를 ‘최우선 제거 대상’으로 인식하고 끈질기게 추격해 왔다.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절단용 클로를, 박진우가 라이플 개머리판으로 쳐냈다. 그의 등 뒤로 접근하는 드릴을, 내가 플라스마 절단기로 지져버렸다. 완벽한 연계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의심했던 우리는, 이제 생사를 함께하는 하나의 팀이 되어 있었다.
“거의 다 왔어!”
권소영이 저 앞의 육중한 강철 문을 가리켰다.
[저온 수면실 (Cryo-Stasis Chamber)]
하지만 문 앞에는, 다른 모든 놈들보다 훨씬 더 육중하고 위협적인, ‘지휘관’ 개체로 보이는 스크래퍼가 버티고 서 있었다. 놈은 동족상잔의 혼란 속에서도 유일하게, 미동도 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놈은 내가 막는다!”
한이 소리치며, 지휘관 개체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방패와 놈의 육중한 클로가 부딪히며, 귀를 찢는 금속음이 터져 나왔다.
“너희는 먼저 들어가서 문을 확보해!”
“한!”
“잔말 말고 가! 이게 내 역할이다!”
한이 자신의 몸을 던져 시간을 버는 동안, 박진우와 권소영이 저온 수면실의 비상 제어 패널을 열었다.
나는 그들을 엄호하며, 뒤쫓아오는 스크래퍼들을 향해 마지막 남은 수를 던졌다. 나는 해킹을 시도하는 척하며, 내 콘솔의 외부 스피커로 ‘외과의사’ 크리처의 음성 데이터를 최대 볼륨으로 재생했다.
[... 임상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기괴한 노이즈 섞인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지자, 스크래퍼들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주춤했다. 그들의 단순한 AI가, 아리만이 직접 통제하는 상위 개체의 명령 코드로 인식하고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 찰나의 틈을 이용해, 나는 박진우 일행에게 합류했다.
“거의 다 됐어!”
권소영이 외쳤다. 수동 잠금장치의 마지막 핀이 뽑히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크헉...!”
한의 비명이 들려왔다. 지휘관 개체의 드릴이, 그의 육중한 방패를 뚫고 그의 어깨를 꿰뚫어 버렸다.
“한!”
박진우가 절규하며 그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한은 피를 토하며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오지 마! 어서 들어가! 리더!”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지휘관 개체를 붙잡고 늘어졌다. 자신을 방패 삼아, 우리에게 마지막 몇 초를 벌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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