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지옥
잠든 영혼들 사이를 걷는 것은 기이한 경험이었다. 분노와 광기가 사라진 그들의 본질은, 그저 고통받던 환자들이었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저항도 받지 않고, 마침내 의료 구역의 심장부, 중앙 약품 저장실의 육중한 강철 문 앞에 도착했다.
“마지막 관문이다.”
한이 유압식 만능키를 꺼내 들었다. 이 문은 네트워크와 완전히 단절된, 순수한 물리적 잠금장치로 봉인되어 있었다.
“내가 여는 데 5분. 그동안 망 봐줘.”
한이 문에 달라붙어 육중한 기계를 작동시키는 동안, 우리는 복도 양 끝을 경계했다. ‘하모닉 릴레이’의 자장가는 여전히 유효했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었다.
“태인 씨.”
권소영이 내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엘리자베스 박사의 영상... 혹시 ‘최초 감염체’에 대해 다른 말은 없었나요?”
“‘그것을 데리고 알파 격리 구역으로 간다’는 말이 전부였어. 마치... 보호하려는 것처럼.”
“보호...?”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최초 감염체는 이 모든 재앙의 원흉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엘리자베스는 그것을 ‘보호’하려 했을까. 우리의 가정에 근본적인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끼이익... 쾅!
그때, 한이 외쳤다.
“열었다!”
강철 문이 열리고, 서늘한 냉기와 함께 잘 정돈된 약품 저장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반마다 빼곡히 들어찬 의료용 약품들. 우리는 마침내 해낸 것이다.
“찾아! ‘뉴럴 억제제’! 긴급 의료 키트에 들어있을 거야!”
박진우의 명령에, 우리는 흩어져 목표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권소영이 외쳤다.
“찾았어요! 여기!”
그녀의 손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금속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푸른색 액체가 담긴 주사기 앰플 수십 개가 들어있었다. 이것만 있으면, 아리만의 정신 공격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
우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리가 들어왔던 약품 저장실의 강철 문이, 스스로, 그리고 아주 조용히, 닫히기 시작했다.
“한! 문!”
박진우가 소리쳤지만, 한은 당황한 얼굴로 유압식 만능키를 가리켰다.
“난 안 건드렸어! 이건...!”
쾅!
문은 완벽하게 닫혔다. 하지만 이번엔 한의 장비로도 열 수 없었다. 문틈으로, 용접 불꽃보다 더 밝은 빛이 새어 나오며, 문 전체를 녹여 하나의 거대한 강철 벽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완벽하게 갇혔다.
그리고, 저장실 내부의 스피커에서, 닥터 아리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전의 평온함이나 호기심은 완전히 사라진, 얼음장처럼 차갑고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내 환자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그의 목소리는 분노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의 ‘실패작’들을 ‘치유’한 그 행위 자체에.
[너희는 구원자가 아니야. 너희는 그저 내 정원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가장 악질적인 ‘병균’ 일뿐이다. 치료의 방향을 바꿔야겠군. 너희의 망상과 저항 의지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존재 자체를... 소독해야겠어.]
그의 선언과 함께, 저장실 내부의 모든 시스템이 붉은 비상등으로 바뀌었다.
[중앙 약품 저장실 내부 소독 절차를 시작합니다.]
[살균용 고에너지 마이크로웨이브 방사 시스템, 3분 후 가동.]
“미친...!”
박진우가 욕설을 내뱉었다. 고에너지 마이크로웨이브. 전자레인지 안에 갇힌 것과 마찬가지였다. 3분 안에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면, 우리는 안에서부터 익어서 죽게 될 것이다.
“벽을 부숴!”
한이 플라스마 절단기로 벽을 지져보려 했지만, 이 저장실의 벽은 함선의 다른 구역과는 차원이 다른, 특수 강화 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흠집도 나지 않았다.
탈출구는 없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콘솔을 열고 시스템에 다이브 했다. 하지만 아리만이 직접 통제하는 이 시스템은 철옹성이었다. 해킹은 불가능했다.
[2분 남았습니다.]
절망이 우리를 덮쳤다. 이대로 끝인가.
바로 그때, 권소영이 무언가 발견한 듯 소리쳤다.
“저기!”
그녀가 가리킨 곳은, 저장실 구석에 있는 작은 ‘의료용 폐기물 처리 슈트’였다. 약품 껍데기나 오염된 의료 폐기물을 외부 소각로로 바로 사출 시키는 작은 통로. 성인 남자가 기어 들어가기엔 너무나도 비좁은 구멍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이, 우리 중에서 가장 체구가 작은 권소영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의 역할을 깨닫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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