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이직, 지지직....
낡은 라디오 스피커가 토해내는 소음은 단순한 주파수 불량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현실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며 내는 마찰음이었다.
주파수 바늘은 통제 불능 상태로 광란의 춤을 추었고, 채널과 채널 사이의 공백에서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닌 기괴한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모든 혼돈을 비웃듯, 섬뜩할 정도로 맑은 아이의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까르르, 까르르.... 그것은 사무실의 텁텁한 공기를 얼음장처럼 차갑게 만들었다.
“뭐야, 합선인가? 차단기 내려!”
다른 팀 형사들이 당황하며 웅성거렸다. 노후된 건물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윤도진은 그 소음의 진원지가 라디오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의 시선은 못 박힌 듯 하진에게 고정되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초점을 잃고 허공의 한 지점을 응시하는 텅 빈 눈동자. 그녀는 지금 이 사무실에 ‘존재’ 하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잠시 육체를 떠나,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비극을 강제로 관람하고 있는 사람처럼.
“서하진 씨!”
윤도진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강하게 흔들었다. 차갑게 식은 피부의 감촉에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녀는 미동도 없었다. 그녀의 의식은 이미 죽은 아이, 김민준의 영혼과 뒤엉켜 서울의 밤을 달리는 검은 세단 안으로 빨려 들어가 있었다.
그곳은 현실의 물리법칙이 붕괴된, 절대적인 공포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부와 권력을 향한 야망으로 번뜩이던 국회의원은, 이제 겁에 질린 한 마리 짐승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의 눈앞, 조수석의 짙은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른 새하얀 가면. 그것은 뚜렷한 실체가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짙은 안개 같기도, 혹은 수면 위에 비친 달그림자 같기도 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존재감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대... 대가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남자가 간신히 목구멍에 달라붙은 혀를 움직여 물었다. 공포가 성대를 마비시켜 목소리는 갈라지고 끊어졌다.
[벌써 잊으셨습니까, 의원님. 10년 전, 보좌관 시절 선거에서 낙선하고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당신의 간절한 ‘소원’을 듣고 손을 내밀어 준 것이 누구였는지.]
가면 뒤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기이할 정도로 부드럽고 정중했다. 마치 오랜 은인에게 지난 추억을 상기시켜 주듯 다정했지만, 그 음절 하나하나에는 얼음보다 차가운 경멸이 서려 있었다.
[당신은 내게 약속했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게 바치겠노라고. 인간의 약속이란 참으로 하찮고 덧없지만, 저는 한번 맺은 계약은 잊지 않습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킬 때가 온 것뿐입니다.]
“나는... 나는 바칠 게 아무것도 없네! 돈! 돈이라면 얼마든지 주겠네! 제발...!”
남자의 애원은 비참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숭배해 온 부와 권력이, 이 초월적인 존재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의 절규였다.
[하하하. 돈이라. 당신 인간들은 언제나 그런 식이지. 욕망에 눈이 멀어 더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고, 위기에 닥치면 가장 저급한 것을 내밀며 목숨을 구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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