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아

by 돌부처

서울의 밤을 가로지르는 윤도진의 차 안은 단순한 침묵이 아닌,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충돌하며 내는 무음의 파열음으로 가득했다. 하진은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불빛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빌딩의 불빛들, 자동차의 행렬. 그녀가 지난 십 년간 ‘현실’이라 믿으며 필사적으로 속해 있고자 했던 세계.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은 그녀의 영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닿을 수 없는 타인의 풍경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진짜 현실은, 이제부터 가야 할 저 어둠 너머에 있었다.


차가 도심을 벗어나 경기도 외곽으로 향할수록, 풍경은 점차 빛을 잃고 어둠에 잠겨갔다. 가로등은 뜸해졌고, 익숙한 프랜차이즈 간판 대신 낡고 빛바랜 상점들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공기의 질감마저 달라졌다. 인공적인 열기와 매연 대신, 축축하고 서늘한 흙냄새와 풀냄새가 열린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은 그녀가 십 년간 애써 잊고 지냈던, 과거의 냄새였다.


“가까워지기 전에 미리 연락해 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들이닥치면 놀랄 텐데요.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윤도진이 마침내 무거운 정적을 깨고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형사로서의 직업적인 신중함과, 미지의 영토에 발을 들이는 것에 대한 미세한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 그는 지금, 법과 공권력이 통하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으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괜찮아요.”


하진이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짧게 대답했다.


“그분들은... 우리가 출발할 때부터, 아니, 어쩌면 제가 그놈의 ‘계약서’를 본 순간부터 이미 알고 계실 거예요.”


그녀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서 씨 가문의 본가는 단순한 집이 아니었다. 그 터 자체가 수백 년간 신과 소통하며 강력한 영기(靈氣)를 축적해 온 하나의 거대한 결계였다. 그 결계 안의 어른들은 현대적인 통신 수단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한 ‘감각’으로 세상의 기운을 읽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가문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은 장녀의 기척이 수호신들의 경계 안으로 다가서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쯤 대청마루에 촛불을 밝히고, 맑은 물을 떠놓고, 돌아온 탕아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마음으로 그녀를 기다릴까. ‘그럴 줄 알았다’는 차가운 질책일까, 아니면 ‘이제야 올 것이 왔다’는 무거운 체념일까.


차가 마침내 한옥 마을 입구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로 접어들었다. 윤도진은 속도를 줄였다. 아스팔트가 끊기고 비포장 흙길이 시작되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 기와지붕과 고목들을 유령처럼 비추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낮에 보았던 고즈넉한 풍경은 온데간데없었다. 깊게 드리운 그림자는 무엇이든 삼켜버릴 듯 입을 벌리고 있었고, 바람에 나뭇가지가 스치는 소리는 원혼의 흐느낌처럼 들렸다. 도시의 소음에 익숙해진 윤도진의 귀에는, 이 완벽한 정적이 오히려 더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마침내, 길의 가장 안쪽, 수령 오백 년은 족히 넘었을 거대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천연의 문처럼 버티고 선 집 앞에 차가 멈췄다. 서 씨 가문의 본가. 수백 년간 수많은 장녀들의 희생과 눈물, 그리고 기도가 기둥과 서까래마다 겹겹이 스며들어 있는 곳. 하진은 차마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굳게 닫힌 솟을대문을 응시했다. 저 문지방을 다시 넘어가는 순간, 콜센터 상담원 서하진은 완전히 죽고, 오직 ‘신딸’이라는, 핏줄에 새겨진 운명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녀의 십 년간의 도피는, 결국 하룻밤의 꿈처럼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


윤도진은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이 싸움이 단순한 범죄 수사를 넘어, 한 인간이 자신의 운명과 대면하는 과정임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하진의 차 문을 열어주며,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혼자가 아닙니다. 내가 옆에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목소리에는 딱딱한 위로나 값싼 동정 대신, 흔들리지 않는 사실만이 담겨 있었다. 그 사실이 오히려 하진에게 작은 용기를 주었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차에서 내렸다. 흙먼지가 묻은 신발이 땅에 닿는 순간,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운이 발바닥을 통해 전류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 땅의 모든 흙과 돌멩이, 풀 한 포기까지 그녀를 알아보고 ‘돌아왔느냐’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윤도진이 대문의 놋쇠 고리를 잡고 두드리려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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