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의 선언은 마치 잘 벼린 칼날처럼, 대청마루의 팽팽한 공기를 단숨에 갈라놓았다.
정적.
촛불 심지가 ‘타닥’ 하고 미세한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인,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가문의 어른들은 경악과 불신, 그리고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경외감이 뒤섞인 복잡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십 년간 가문을 등지고 속세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도망쳤던, 그저 평범하고 나약한 껍데기만 남은 줄 알았던 장녀가, 지금 가문의 가장 깊고 위험한 금기를 제 입으로 꺼내든 것이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이 기이한 정적을 깬 것은, 살아있는 가문의 역사 그 자체인 최고 어른 서명진이었다. 그녀는 앙상한 손에 쥔 명아주 지팡이로 마룻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쿵! 둔탁하고 권위적인 소리가 대청마루 전체를 울리며 하진의 심장을 직접적으로 압박했다.
“네년,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그녀의 목소리는 분노로 인해 겨울 서릿발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늙고 쇠했지만, 그 안에 담긴 영적인 힘은 여전히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네가 지금 무엇을 하겠다고 망발을 내뱉은 것인지, 진정 알고나 지껄이는 것이냐! 네 몸뚱이를 신단으로 삼아 네 어미의 길 잃은 혼을 부르겠다고? 그것이 어떤 굿인지, 그 굿판에 대가로 무엇을 걸어야 하는지 헤아릴 지각조차 없는 것이냐!”
“알아요.”
하진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녀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극심한 절망과 배신감은 역설적으로 그녀에게 강철 같은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모든 것을 잃은 자,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서늘한 평온이었다.
“강신(降神)굿. 그중에서도 저승의 길목에서 헤매는 혼을 산 자의 몸에 강제로 끌어와 싣는, 가장 위험하고 불경한 방식이겠죠. 성공할 확률은 반반. 실패하면 제 몸과 영혼은 산산조각 나 길 잃은 잡귀들의 하룻밤 포식거리가 될 거고요.”
그녀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교과서를 읽는 것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그 평온한 태도에, 오히려 어른들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이 아이는 미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알고도 하겠다는 것이다.
“알고도 기어이 하겠다는 것이냐! 이는 용기가 아니라 죽음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만용일 뿐이다! 네 어미가 저지른 죄는 가문의 죄다. 네가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고 대신 죽어줄 이유는 없다. 가문의 법도에 따라, 우리는 다른 방도를 찾아....”
“다른 방도요?”
하진이 차가운 비웃음과 함께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 비웃음은 십 년간 억눌려왔던 모든 설움과 분노의 표출이었다.
“당신들이 말하는 다른 방도라는 게 대체 뭔데요? 운 좋게 또 다른 장녀가 태어날 때까지 수십 년을 숨죽이고 기다리는 것? 아니면 힘없는 영가를 제물로 바쳐 백면의 심기를 잠시 달래며 시간을 버는 것? 전 더 이상 당신들이 짜놓은 판 위에서 이름만 바뀐 채 반복되는 희생양이 될 생각 없어요.”
그녀는 대청마루에 위엄 있게 앉아 있는 어른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평생을 신을 모시며 고고하게 살아온 그들의 눈동자 속에서, 교묘하게 숨겨온 위선과 뿌리 깊은 두려움을 똑똑히 보았다.
“당신들도 결국은 두려운 거잖아요. 어머니가 맺은 계약의 대가가 마침내 가문 전체의 숨통을 조여올까 봐. 그래서 그 모든 빚과 저주를 내게 떠넘기려는 거잖아요. ‘장녀의 숙명’이라는 그럴싸하고 편리한 이름으로 포장해서!”
“닥치거라, 무엄한 것!”
서명진이 버럭 호통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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