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강

by 돌부처

두웅-!


첫 번째 북소리는 망치였다. 하진의 육신과 영혼을 단단히 결박하고 있던 ‘현실’이라는 족쇄를 부수는 거대한 망치. 소리는 고막을 울린 것이 아니라, 명치끝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숨이 턱 막히고, 온몸의 뼈가 함께 공명하며 부르르 떨렸다. 눈앞의 촛불들이 일제히 격렬하게 흔들렸고, 지하 신당의 벽에 붙어 있던 낡은 부적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파르르 떨었다.


두웅-! 두웅-!


북소리는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이면서도 점차 빠르게 이어졌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공간의 주파수를 바꾸고, 시간의 경계를 허무는 주술이었다. 하진은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감았다. 서명진의 경고대로, 그녀는 이제부터 인간 서하진이 아니었다. 그녀는 텅 빈 그릇, 신과 혼이 지나가는 길이 되어야 했다.


서명진의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古代)의 언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신을 부르는 청배(請拜)의 언어이자, 저승의 문을 여는 열쇠의 언어였다. 이모 서은영은 징을 치기 시작했다. 쨍, 하고 날카롭게 공간을 가르는 징 소리는, 북소리가 열어놓은 길을 더욱 넓고 깊게 만드는 예리한 칼날 같았다.


하진의 의식이 서서히 육체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했다. 감각이 달라졌다. 피부로 느껴지던 신당의 냉기는 사라지고, 대신 수많은 기운의 흐름이 느껴졌다. 제단 위 촛불의 뜨거운 기운, 바닥의 진(陣)에서 피어오르는 차가운 기운, 그리고 벽 너머, 이 땅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거대한 존재들의 숨결까지. 세상의 모든 것이 에너지의 흐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손바닥 위에 놓인 가면 조각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지근한 온기였지만, 북소리가 거세질수록 점차 펄펄 끓는 쇳물처럼 변해갔다.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하진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이것이 미끼였다. 이 고통스러운 열기가, 시간의 강 저편에서 길을 잃은 어머니의 혼을 불러들이는 등대가 될 것이다.


“길을 열어라, 하늘의 문지기여!”

“길을 열어라, 땅의 수호신이여!”


서명진의 목소리가 절정에 달했다. 그녀의 마지막 외침과 함께, 마지막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콰아아앙-!


그 순간, 하진의 의식은 완전히 육체를 벗어나 어딘가로 쏘아 올려졌다.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지하 신당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끝을 알 수 없는, 검고 거대한 강 위에 떠 있었다. 강물은 흐르지 않았다. 대신, 수억 개의 기억의 파편들이 물고기 떼처럼 그 안을 유영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탄생, 첫걸음마, 졸업식, 결혼식, 그리고 죽음.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뒤섞여 거대한 시간의 강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가....”


하진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곳이 바로 무당들이 말하는, 현실과 저승의 경계,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흐르는 망각의 강이었다.


그녀는 물 위에 떠 있었지만, 몸이 젖지는 않았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반투명한 유령 같았다. 그녀는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강 깊은 곳에서는 수많은 혼들이 길을 잃은 채 헤매고 있었다. 어떤 혼은 빛을 잃고 검은 덩어리처럼 가라앉아 있었고, 어떤 혼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자신이 죽던 순간을 무한히 반복하고 있었다.


‘엄마... 어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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