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실

by 돌부처

정적이 흘렀다.


지하 신당 안, 모든 소리가 멎었다. 미친 듯이 울려 퍼지던 북소리도, 공간을 가르던 징 소리도. 굿판을 이끌던 서명진과 서은영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모든 동작을 멈추고 제단 앞에 정좌한 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핏기가 가시고, 극도의 긴장감과 불길한 예감이 짙게 서려 있었다.


하진의 몸은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은 급격히 식어가고 있었고, 얕은 숨만이 그녀가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녀의 영혼과 육신을 잇던 유일한 끈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


이모 서은영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언니이자 굿을 주관하는 서명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절박하게 묻고 있었다.


“쯧.”


서명진은 짧게 혀를 찼다. 그녀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녀는 하진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굿을 시작하기 전 쥐여주었던, 어머니의 피가 묻은 가면 조각이 놓여 있었다. 미끼이자 등대 역할을 해야 할 성물. 그러나 그것은 이제 푸른빛이 감도는 불길한 냉기만을 희미하게 뿜어낼 뿐, 하진의 영혼을 인도하던 붉은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실이... 끊어졌다.”


서명진의 목소리는 잿더미처럼 메말라 있었다.


“저 어리석은 것이, 내 경고를 무시하고 과거의 기억에 너무 깊이 발을 들였어. 백면, 그놈의 심기를 건드린 게야. 놈이 길을 끊고, 아이를 시간의 강 속에 가두어 버렸다.”


“그럼... 그럼 하진이는요? 언니! 우리 하진이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서은영의 목소리가 절규에 가깝게 높아졌다.


“이대로 영혼이 돌아오지 못하면....”


서명진은 말을 잇지 못했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영혼이 돌아오지 못한 육신은 빈 껍데기가 되어 서서히 썩어가거나, 혹은 더 끔찍하게도, 길 잃은 잡귀들이 서로 차지하려는 아귀의 소굴이 될 것이다.


“아직 시간이 있다.”


서명진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그녀는 수십 년간 수많은 위기 상황을 겪어온 대무당이었다.


“육신에 새겨놓은 결계가 아직 살아있다. 결계가 버텨주는 동안, 아이의 혼이 깃들 다른 잡것들을 막아낼 수 있어. 그 안에, 어떻게든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아 돌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길이 끊어졌다면서요!”


“길이 없다면, 새로 만들어야지!”


서명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당 가장 안쪽, 자물쇠로 굳게 잠긴 낡은 나무 궤짝으로 향했다. 그녀는 품에서 녹슨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풀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궤짝이 열리자, 그 안에서 서늘하고 신성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궤짝 안에는 서 씨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장녀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신물(神物)들이 비단에 싸여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중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둥근 청동 거울을 꺼내 들었다. 거울의 뒷면에는 해와 달, 그리고 북두칠성이 복잡하게 새겨져 있었고, 앞면은 수백 년의 세월에 마모되어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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