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제단

by 돌부처

강남 테헤란로의 밤은 잠들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거리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불면의 열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천루들은 저마다 부와 성공의 크기를 과시하듯 화려한 빛을 뿜어내며 인공의 별자리처럼 밤하늘을 수놓았고, 아스팔트 위로는 억대의 슈퍼카들이 포효하며 질주했다.


하진에게 이곳은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심장이자, 가장 정제되고 농축된 형태의 욕망이 24시간 내내 들끓는 거대한 용광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용광로의 가장 뜨겁고 왜곡된 중심에, 한재준의 ‘운명 창조 연구소’가 있었다.


연구소는 이름과 달리, 테헤란로의 마천루 중에서도 가장 높고 화려한 초고층 오피스텔의 최상층 펜트하우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상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평범한 인간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다는 상징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위치였다. 윤도진이 어둠의 경로를 통해 어렵게 구해낸 위조 초대장을 이용해, 하진은 다른 VIP 참석자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 입구에서는 호텔 컨시어지보다 더 정중한 태도의 경호원들이 삼엄한 보안 검색을 진행했다. 전자기기는 모두 반납해야 했고, 홍채 인식까지 거친 뒤에야 입장이 허락되었다.


엘리베이터는 고속으로, 하지만 소리 하나 없이 부드럽게 상승했다. 전면이 투명한 유리벽으로 되어 있어, 발아래로 펼쳐지는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백만 개의 불빛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풍경은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다웠지만, 하진은 그 화려함 이면에 도사린 끈적하고 탁한 욕망의 기운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녀의 눈에는 도시의 불빛이 그저 아름다운 조명이 아니라, 수천만 명의 인간들이 내뿜는 욕망의 크기와 색깔로 보였다. 그리고 그 모든 기운이, 마치 거대한 개미지옥처럼, 이 건물의 꼭대기를 향해 희미하게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딩’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가 펼쳐졌다. 내부는 웬만한 재벌가의 거실보다 더 호화로웠다. 바닥은 이음새 하나 없이 매끄러운 이탈리아산 최고급 대리석이었고, 벽에는 유명 작가의 추상화 작품들이 미술관처럼 걸려 있었다. 공간의 중앙에는 거대한 통창이 있어 서울의 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침향(沈香)과 명상 음악이 흐르는 공간은, 세속적인 욕망을 논하기에는 지나치게 고요하고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미 도착한 십여 명의 사람들은 최고급 샴페인 잔을 든 채 조용히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옷차림과 말투, 몸에 걸친 시계와 보석 하나하나에서 사회 최상류 층의 기운이 흘러넘쳤다. 겉으로는 우아하고 기품 있어 보였지만, 하진의 눈에는 그들의 본질이 보였다. 대기업의 늙은 총수는 건강에 대한 절박한 욕망을, 스캔들로 몰락 위기에 처한 유명 연예인은 재기에 대한 처절한 욕망을, 그리고 국민을 위하는 척 위선을 떨고 있는 정치인은 다음 선거에서의 승리를 향한 검은 욕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겉모습은 달랐지만, 그들의 눈에는 공통적으로 더 높은 곳을 향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깊은 불안감이 맹수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하진은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그림자처럼 구석으로 향했다. 그녀의 귀에 꽂힌, 머리카락으로 가린 작은 무선 이어폰에서 윤도진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립니까, 서하진 씨? 내부 상황은 어떻습니까? 무전기에 잡음이 심하군요.]


“네, 들어왔어요. 참석자는 저 포함해서 열두 명이네요. 다들... 보통 사람들은 아니에요. 이 사람들만 모아놔도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을 정도예요.”


하진이 거의 입술을 움직이지 않은 채 속삭이듯 대답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보며, 동시에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읽으려 애썼다. 그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고 거대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운명을 억지로 끌어다 쓰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영혼의 윤곽 주변에는 검고 탁한 얼룩 같은 것들이 기생충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무리하지 마세요. 당신의 임무는 관찰이지, 개입이 아닙니다. 한재준이 나타나면, 그의 방식과 사람들의 반응을 최대한 자세히 파악해서 보고해야 합니다.]


“알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그때, 공간의 모든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지며 전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벽면에 부드러운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화를 멈추고, 무대를 향해 마치 신도처럼 경건한 자세로 돌아앉았다. 마침내, 오늘의 교주이자 집도의가 등장할 시간이었다.


무대 옆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순백색 실크 슈트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한재준이었다. 그는 40대 초반으로 보였지만, 꾸준한 관리로 다져진 탄탄한 몸과 잡티 하나 없는 피부, 그리고 수억 원을 호가하는 심리 치료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부드러운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이돌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매력적인 외모와, 수만 명의 군중을 압도할 수 있는 카리스마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귀한 걸음을 해주신, 시대를 이끌어갈 나의 소중한 벗들이여. 오늘 밤, 여러분은 또 한 번 낡은 운명의 문을 부수고,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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