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이 거미줄에 걸어 들어왔구나, 문지기의 어리고 어리석은 딸아.]
백면의 목소리는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진의 두개골 안쪽에서, 그녀의 영혼의 가장 깊은 핵을 향해 직접 울려 퍼지는, 거부할 수 없는 선고였다. 그 목소리가 울리는 순간, 펜트하우스를 가득 채웠던 명상 음악과 사람들의 미세한 숨소리, 도시의 소음이 일제히 사라졌다. 하진의 세계는 완벽한 진공 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손가락 하나, 눈꺼풀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하지만 강철보다 단단한 영적인 압력이 그녀의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단순한 마비가 아니었다. 백면은 그녀의 의식과 육체의 연결 고리를 강제로 끊어버리고, 그녀의 영혼을 고립시키고 있었다.
[서하진 씨! 무슨 일입니까! 대답해! 서하진!]
이어폰에서 터져 나오는 윤도진의 다급한 목소리는 마치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의미 없는 소음으로 부서져 뇌에 닿지 못했다.
백면, 한재준의 형상을 한 그는 무대 위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의식은 이미 하진의 정신세계를 침범해 들어오고 있었다. 하진의 눈앞에서 호화로운 펜트하우스의 풍경이 신기루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공포와 절망의 기억들이 강제로 끄집어내져 눈앞에 펼쳐졌다.
어머니의 손을 놓치고 미아가 되었던 어린 시절의 백화점.
수많은 낯선 다리들 사이에서 홀로 울고 있던 절대적인 공포.
‘무당 딸’이라며 수군거리던 친구들의 경멸적인 시선.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지독한 외로움.
콜센터에서 온갖 욕설을 들으며 감정을 억눌러야 했던 무력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기혐오.
그리고, 시간의 강에서 보았던 어머니의 참혹한 진실.
딸을 제물로 바쳐야 했던 어머니의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그 모든 것을 비웃으며 계약을 성사시켰던 백면의 압도적인 존재감.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그녀의 영혼을 집어삼키려 했다.
[그래, 바로 그거다.]
백면의 목소리가 그녀의 의식 속에서 만족스럽게 속삭였다.
[너의 그 절망, 나약함, 무력감. 그것이야말로 나를 기쁘게 하는 최고의 진수성찬이지. 너의 어미도 그랬고, 너 역시 마찬가지다. 너희 서 씨 가문의 장녀들은 대대로 나의 가장 훌륭한 양식이었다.]
백면은 그녀의 정신을 파괴하여, 저항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린 뒤, 그 빈 껍데기를 자신의 새로운 ‘그릇’으로 삼으려 하고 있었다.
하진의 의식이 점차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저항할 힘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였다.
그녀의 가슴팍, 검은 원피스 아래 숨겨져 있던 푸른 옥 조각이 스스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한 반딧불 같던 빛이, 백면의 사악한 기운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그녀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문지기가 남기고 간 힘의 씨앗이, 외부의 침입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깨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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