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전쟁의 서막

by 돌부처

차가 강남의 화려한 불빛 속을 빠져나가는 동안, 하진은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등 뒤의 펜트하우스에서 느껴지는 백면의 차갑고도 흥미롭다는 시선이, 마치 등 뒤에 얼음 칼을 대고 있는 것처럼 선명했다.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비는 도시의 네온사인을 번지게 하며, 마치 온 도시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전가옥으로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윤도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는 백미러를 통해 이따금씩 하진의 상태를 확인할 뿐이었다. 피와 비에 젖은 채, 가늘게 숨을 몰아쉬며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 그는 평생을 끔찍한 범죄 현장과 마주해 왔지만, 지금 느끼는 이 무력감과 분노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상대는 총으로 쏠 수도, 수갑을 채울 수도 없는 존재.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에, 그는 이 연약한 여자의 목숨을 방패 삼아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안전가옥의 두꺼운 강철 문이 닫히는 순간, 하진은 긴장이 풀리며 벽에 기대 주르륵 주저앉았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문지기의 힘을 강제로 끌어다 쓴 대가는 혹독했다. 그것은 마치 작은 경차의 엔진에 항공기 연료를 쏟아붓고 억지로 시동을 건 것과 같았다. 몸 안의 모든 혈관과 신경이 그 거대한 힘의 여파로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었다. 가슴에 걸린 푸른 옥 조각은 빛을 잃고 차가운 돌덩이처럼 식어 있었다.


“병원에....”


윤도진이 말을 꺼냈지만,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어요. 이건... 의사가 고칠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에요.”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테이블에 놓인 생수병을 집어 단숨에 반 병을 들이켰다. 윤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랍에서 구급상자를 꺼내왔다. 그리고는 소독솜과 연고를 꺼내, 말없이 그녀의 옆에 앉아 터진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그의 손길은 투박했지만, 그 안에는 의사나 형사의 것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진실된 염려가 담겨 있었다. 그 작은 온기에, 하진은 간신히 버티고 있던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정도 호흡을 되찾은 하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지만, 내용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전부... 함정이었어요.”


윤도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내가 올 줄 알고 있었어요. 그 비밀 강연은 VIP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건 처음부터 나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이자, 제단이었어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욕망을 제물로 삼아, 백면, 그놈이 직접 강림하기 위한.”


“강림이라고?”


윤도진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네. 한재준의 모습을 하고, 스크린 속에서 걸어 나왔어요. 단순한 빙의가 아니에요. 백면은 자신의 대리인과 똑같은 형상을 만들어내, 현실에 직접 나타날 수 있는 힘을 가졌어요. 그리고 한재준, 그자는... 단순한 숙주가 아니에요. 그는 기꺼이, 그리고 황홀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백면에게 바치고 있었어요. 그는 교주이자, 가장 충실한 신도예요.”


하진은 자신이 목격한 모든 것을, 영적인 현상을 최대한 현실의 언어로 번역하여 설명했다. 백면이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자신의 힘으로 삼는다는 것. 그 대가로 던져주는 ‘행운’은 중독을 유발하는 마약과도 같다는 것. 그리고 그 펜트하우스는 백면의 힘을 충전하고, 인간 숙주들과 계약을 갱신하는 일종의 ‘성전’이라는 것까지.


윤도진은 그녀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그리고 수첩에 기록했다. 그녀의 증언은 이 기괴한 사건의 구조를 이해하는 유일한 교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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