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결계

by 돌부처

안전가옥의 공기는 멈춰 있었다. 윤도진과 그의 팀원들이 떠난 뒤, 텅 빈 공간에는 하진의 고른 숨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그녀는 테이블 앞에 정좌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깨끗한 백지 한 장.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푸른 옥 조각이 쥐여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 창조였다.

무(無)에서 유(有)를, 절망의 한가운데서 희망을 빚어내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행위. 그녀는 자신의 영혼과 문지기가 남긴 힘의 편린, 그리고 아직 회복되지 않은 기력까지, 모든 것을 이 종이 한 장 위에 쏟아부어야 했다.


하진은 먼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심장 한가운데, 고요하게 타오르고 있던 푸른 불꽃.

문지기의 씨앗. 그녀는 그 불꽃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식을 집중했다. 처음에는 바늘 끝처럼 작았던 불꽃이, 그녀의 의지에 반응하며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차갑지만 아프지 않은, 맑고 신성한 불꽃이 그녀의 영혼 전체를 감쌌다.


‘보여주세요.’


그녀는 문지기를 향해 기도했다.


‘백면의 탁한 기운을 정화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의 형태를. 당신의 지혜를 빌려주세요.’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으로 수만 개의 이미지와 문양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것은 서 씨 가문의 비기에도 기록되지 않은, 훨씬 더 근원적이고 강력한, 태초의 언어들이었다. 하늘의 별자리, 땅의 지맥, 바람의 흐름과 물의 파동.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담고 있는 상징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몸은 이 거대한 정보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늘게 떨렸다. 코에서는 뜨거운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 수만 개의 상징들 속에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지금 이 상황에 가장 필요한 단 하나의 형태를 찾아 헤맸다.


‘막는 것이 아니다. 가두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깨달았다. 백면의 힘은 인간의 욕망 그 자체이기에, 억지로 막거나 가두려 하면 오히려 더 강하게 반발하며 터져 나올 것이다.


‘흘려보내는 것이다. 정화하여,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


마치 거대한 댐을 쌓는 대신, 물길을 터서 탁한 물을 맑은 바다로 흘려보내는 것처럼. 그녀는 마침내 수많은 상징들 속에서, ‘정화’와 ‘순환’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는, 완벽한 균형의 형태를 찾아냈다.


그것은 세 개의 겹쳐진 원과, 그 원들을 부드럽게 감싸며 꼬리를 무는 두 마리의 용, 그리고 그 중심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연꽃의 형상이었다. 복잡하면서도 단순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완벽한 조화의 상징.


‘이거다.’


하진은 눈을 떴다. 그녀의 눈은 푸른빛으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에 걸린 옥 조각을 풀어, 그것을 붓처럼 쥐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검지 끝을 다시 깨물었다. 선홍빛 피가 맺히자, 그녀는 그 피를 옥 조각 끝에 묻혔다. 푸른 옥 조각은 그녀의 피와 기운을 흡수하며, 그 자체가 푸른빛을 발하는 펜촉처럼 변해갔다.


그녀는 숨을 멈추고, 텅 빈 종이 위에 첫 선을 그었다.


스으으윽-


옥 조각이 종이에 닿자, 종이가 타는 듯한 옅은 연기와 함께, 푸른빛의 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선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문지기의 신성한 힘과, 그녀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머릿속에 떠오른 완벽한 상징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종이 위에 옮겨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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