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검

by 돌부처

윤도진은 병원에서 안전가옥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지옥도 같았다. 인형처럼 기괴하게 움직이던 여대생의 모습, 수십 명의 목소리가 뒤섞여 나오던 백면의 목소리, 그리고 ‘이 도시의 진짜 법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라던 그 오만한 경고까지. 그는 평생을 범죄와 싸워온 베테랑 형사였지만, 지금 그가 마주한 적은 그의 상식과 경험이 전혀 통하지 않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분노와 무력감이 그의 속을 까맣게 태우고 있었다.


강철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는 순간 숨을 멈췄다. 안전가옥의 공기는 그가 나갈 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퀴퀴하고 메마른 공기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깊은 산속의 오래된 사찰에 들어선 것처럼, 맑고 청아하며 신성하기까지 한 기운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의 진원지는, 테이블 앞에 탈진한 채 앉아 있는 하진과, 그녀의 앞에 놓인 종이 한 장이었다.


그는 홀린 듯 테이블로 다가갔다. 종이 위에는, 그가 평생 본 적 없는 아름답고도 강력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푸른빛을 발하는 선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것 같았고, 문양 전체에서는 차갑지만 편안한, 압도적인 수호의 힘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무신론자였지만, 그 문양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경외감을 느꼈다. 이것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었다.


“...... 해냈군요.”


그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짰다.


하진은 지친 얼굴로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상태는 최악이었지만, 눈빛만은 강철처럼 단단했다.


“이게... 당신이 말한 ‘방패’ 요?”


“네. 이름은... ‘해신(解神)의 인(印)’이에요.”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그것은 방금 그녀의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른 이름이었다. 묶인 것을 풀고, 악한 것을 흩어버리는 신의 도장.


“이 인장 자체가 작은 결계예요. 백면의 탁한 기운을 막아주고, 그의 힘에 중독된 사람들의 영혼을 서서히 정화시켜 줄 거예요. 완벽한 치료제는 아니지만, 지금 당장 퍼지고 있는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백신이죠.”


윤도진은 문양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물었다.


“이걸... 어떻게 퍼뜨릴 겁니까? 백면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SNS에 ‘정화 챌린지’라도 해야 하는 건가?”


그의 목소리에는 자조 섞인 냉소가 묻어났다.


“아니요.”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백면의 방식은 ‘기만’이에요. 그는 행운이라는 미끼로 사람들을 속여, 그들의 기운을 강탈해 가죠. 하지만 문지기님의 힘은, 그리고 이 인장의 힘은 ‘자각’에서 시작돼요.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만, 그 힘이 온전히 발휘될 수 있어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돌부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읽고 쓰는 사람.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소설을 씁니다.

708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7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26화빛으로 그린 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