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
서대문 형무소. 일제 강점기의 붉은 벽돌 건물들이 짙은 밤안개 속에 흉물스러운 묘비처럼 솟아 있었다. 과거 수많은 독립투사들과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혀 고문당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곳. 그들의 피와 눈물, 그리고 풀지 못한 한(恨)이 벽돌 틈새마다 켜켜이 쌓여,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원한이 깊고 음기가 강한 장소 중 하나였다.
“기운이... 정말 지독하군. 숨 쉬는 것만으로도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나. 쇠 냄새도 나고.”
이강우가 형무소의 육중한 철문 앞에 서서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평소의 능글맞음 대신, 바짝 긴장한 맹수 같은 모습이었다. 영적인 감각이 없는 그조차도 이곳을 감싸고 있는 짙은 살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백호의 영역이에요. 백호는 서쪽을 지키는 신이자, 쇠의 기운과 전쟁, 그리고 심판을 관장하죠. 이곳처럼 차가운 쇠창살과 고문 도구, 그리고 억울한 죽음이 가득한 곳은, 오염된 백호가 둥지를 틀기에 최적의 장소예요.”
하진은 목에 걸린 옥 조각을 꽉 쥐었다. 옥 조각은 미친 듯이 진동하며 날카로운 비명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동대문의 청룡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날카롭고 공격적인 살의가 그녀의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조심해야 해요. 백호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에요. 피를 갈구하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을 거예요. 이성을 잃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요.”
“알겠습니다. 진입합시다. 다들 긴장 늦추지 말고, 서로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마십시오.”
윤도진이 앞장서서 굳게 닫힌 철문을 밀었다.
끼이이익. 쿵.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문이 열렸다. 안에서 차갑고 습한, 곰팡이 냄새와 묵은 피 냄새가 섞인 공기가 확 뿜어져 나왔다. 마치 거대한 냉동고 문을, 아니 지옥의 입구를 연 것 같았다.
형무소 내부는 밖보다 더 어둡고 추웠다. 달빛조차 쇠창살에 가려져 바닥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울 뿐이었다. 텅 빈 감방들이 늘어선 복도를 걸을 때마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뒤따라오는 것 같았고, 어디선가 채찍질 소리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여기... 뭔가 이상해. 공간이 뒤틀려 있어. 끝이 안 보여.”
이강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복도가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걸어도 걸어도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았다.
“백면의 결계예요. 이곳은 이미 현실 세계가 아니에요. 과거의 끔찍한 기억과 원혼들이 뒤섞인... 일종의 지옥도(地獄道)예요.”
하진이 차가운 벽을 짚으며 말했다. 벽에는 알 수 없는 붉은 글씨들이 어지럽게 낙서되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글씨가 아니라 고문에 못 이겨 손톱으로 긁어낸 핏자국들이었다.
“환영에 속지 마세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해요. 공포에 질리면 놈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에요.”
하진이 주문을 외우며 일행 주변에 옥 조각으로 얇은 결계를 쳤다. 푸른 빛이 그들을 감싸자, 귓가를 괴롭히던 환청이 조금 잦아들었다.
그들이 중앙 감시탑 근처, 과거 사형장으로 가는 길목인 통곡의 미루나무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캉! 캉! 캉!
어디선가 굵은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거대한 짐승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쇠를 긁는 듯한 그르렁거림이었다.
“나온다! 전투 준비!”
이강우가 소리치며 양손에 단검을 뽑아 들었다. 윤도진도 권총을 겨누며 자세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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