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불빛

by 돌부처

봄바람에 섞여 날아오는 꽃가루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계절이었다. 하지만 동네 어귀 버스 정류장 앞, 정희의 포장마차에는 꽃내음 대신 매캐한 연탄가스와 짠 내가 진동했다.


"아줌마, 여기 국물 좀 더 줘요! 팍팍 좀 줘, 인심 야박하게 굴지 말고."


넥타이를 삐딱하게 멘 회사원 셋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네, 네. 갑니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정희는 뜨거운 양은 주전자를 들고 뛰어가 그들의 그릇에 국물을 부었다. 손목이 시큰거렸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장사를 시작한 지 보름. 이제 제법 손에 익을 만도 했지만, 밤의 거리는 매일매일이 새로운 전쟁터였다. 술에 취해 시비를 거는 사람, 외상을 달라고 떼쓰는 사람, 심지어 안주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며 돈을 안 내고 도망가는 사람까지. 정희는 그 모든 무례함을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받아내야 했다.


그날 밤은 유난히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천막이 펄럭이며 위태로운 소리를 냈다. 카바이트 불빛이 바람에 흔들려 그림자가 춤을 추듯 일렁였다.


밤 10시쯤 되었을까. 검은 가죽 점퍼를 입은 사내 셋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등장에 시끌벅적하던 천막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손님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고개를 돌렸다.


"어이, 아줌마. 장사 잘되네?"


가운데 선, 눈매가 날카로운 사내가 껌을 짝짝 씹으며 물었다. 정희는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올 것이 왔구나. 주변 노점상들에게서 들었던 '그놈들'인 모양이었다.


"어서 오세요. 뭐... 드릴까요?"

"뭐 줄 건 없고. 우리가 이 구역 관리하는 사람들인데, 인사가 좀 늦었네? 자릿세는 알고 장사하나?"


사내는 의자를 발로 툭 찼다. 의자가 나뒹굴었다.

정희는 떨리는 손을 앞치마 뒤로 감췄다.


"저... 이제 막 시작해서... 아직 돈이 없는데요. 조금만... 조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아줌마,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돈이 남아돌아서 내나? 규칙은 지켜야지, 규칙은."


옆에 있던 덩치 큰 사내가 오뎅 통에 담긴 국자를 집어 들더니, 국물을 바닥에 확 뿌려버렸다.


"아악!"


뜨거운 국물이 정희의 장화 위로 튀었다. 화끈거리는 고통보다 공포가 더 컸다.

손님들은 하나둘 자리를 피했다. 순식간에 천막 안은 정희와 사내들만 남았다.


"내일까지 10만 원 준비해 놔. 안 그러면 이 리어카, 고물상에서도 안 받아주게 만들어 줄 테니까."


사내들은 퉤 하고 바닥에 침을 뱉고는 나갔다.

정희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바닥에 쏟아진 국물 위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10만 원.


한 달 꼬박 일을 해도 남을까 말까 한 돈이었다. 학습지 일로 번 돈은 방세와 연탄값으로 나가기 바빴다. 당장 내일 장 볼 돈도 빠듯한데.


"흐윽...."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억울했다. 남한테 해코지 한번 안 하고, 그저 내 새끼랑 밥 한 끼 먹고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건데. 왜 세상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걸까.


그때였다.

구석 자리에서 누군가 헛기침을 했다.


"크흠."


정희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다 나간 줄 알았는데, 손님이 남아 있었다.

구석진 자리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던 남자였다. 낡은 작업복 차림에, 캡 모자를 푹 눌러쓴 그는 늘 안주 하나에 소주 한 병만 시켜놓고 조용히 있다 가는 사람이었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닥에 넘어진 의자를 말없이 세웠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계산이요."

"아... 네...."


정희는 눈물을 훔치며 계산을 하려 했다. 그런데 테이블 위에 놓인 돈이 밥값보다 훨씬 많았다. 만 원짜리 두 장이었다.


"저기, 손님. 돈이 너무 많은데요."

"잔돈 됐습니다."


남자는 툭 내뱉고는 천막을 나가려 했다. 그러다 잠시 멈칫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마디를 던졌다.


"그 놈들, 내일은 안 올 거요. 며칠 잠잠할 테니 장사나 하쇼."


정희는 멍하니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누구인지, 무슨 힘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투박한 말 한마디가 바닥에 쏟아진 국물보다 더 뜨겁게 가슴을 데웠다.


한편, 진영에게도 그날은 힘든 하루였다.

쉬는 시간에 벌어진 사소한 시비가 주먹다짐으로 번졌기 때문이었다.


"야, 진영아! 너한테서 이상한 냄새나."


쉬는 시간, 짓궂기로 소문난 철수가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왔다.


"무슨 냄새? 쉰내 같은데? 너네 집엔 목욕탕도 없냐?"

"아니야!"


진영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나 어제 씻었어!"

"거짓말.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너네 엄마 밤마다 무슨 장사하러 다닌다며? 그래서 너한테 냄새나는 거 아니야?"


철수가 킬킬거렸다. 아이들이 와하하 웃었다. 진영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분노였다.


"우리 엄마 욕하지 마!"


진영은 철수에게 달려들어 밀쳤다. 철수가 엉덩방아를 찧었고, 순식간에 교실은 싸움판이 되었다. 진영은 철수의 멱살을 잡고 뒹굴었다. 주먹이 날아오고 발길질이 오갔다.


"거지 냄새나! 저리 가!"

"나쁜 놈아!"

"이게 어디서!"


결국 선생님이 달려와 둘을 떼어놓았다. 진영의 입술은 터졌고, 셔츠 단추는 뜯어져 있었다. 철수는 코피를 흘리며 씩씩거렸다.


"진영이, 친구를 때리면 어떡해! 너 선생님 따라 교무실로 와."


교무실에서 진영은 손을 들고 벌을 섰다. 선생님이 물었다.


"왜 싸웠니?"

"......"


진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엄마가 포장마차 장사라고 놀려서 때렸다고 말하면, 엄마가 정말로 부끄러운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한숨을 쉬며 진영을 돌려보냈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가정환경 조사서 꼭 써달라고 해라. 잊어버리지 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진영은 터진 입술을 손등으로 훔쳤다. 아팠다. 하지만 마음이 더 아팠다.

가방 속에 구겨 넣은 가정통신문이 등 뒤에서 바스락거렸다.



새벽 4시.

정희가 돌아왔다. 발자국 소리가 무거웠다.

방에 들어온 정희는 진영의 얼굴을 보고 기겁했다. 입술엔 딱지가 앉아 있었고, 광대뼈는 부어 있었다.


"진영아! 너 얼굴이 왜 이래? 싸웠어?"


자다 깬 진영은 눈을 비비며 엄마를 보았다.


"어... 넘어졌어."

"넘어졌는데 입술이 터져? 솔직히 말해. 누구랑 싸웠어?"


정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속상해서였다. 깡패들에게 시달리고 온 날, 자식마저 밖에서 맞고 들어온 걸 보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진영은 고개를 숙였다. 가방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거... 선생님이 써 오래."


정희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가정환경 조사서.'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질문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거 형태, 소득 수준....

그리고 맨 윗줄.


[부: 성명 (한자: ), 학력 ( ), 직업 ( )]


정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자.


아비의 이름을 한자로 적으라고 되어 있었다.

정희는 되뇌이고 싶지 않은 그 이름의 한자가 무슨 글자인지 물어본 적도 없었고, 그가 가르쳐 준 적도 없었다.


정희는 볼펜을 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한글로만 적으면 안 될까. 하지만 괄호 안에는 분명히 '한자'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빈칸으로 남겨두면 선생님이 뭐라고 할까.


"어머니, 남편분 한자 이름도 모르십니까?"


그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벌써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같이 살 때도 그는 정희를 무시했고, 정희 역시 그가 무서워 이름 한자조차 물어보지 못했다. 아니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 집을 떠난 이후로는 두 번 다시 그 이름을 머릿 속에 담아둘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류에는 번듯한 아비로 남겨야 했다.


정희는 볼펜을 들고 허공에 글자를 그려보았다.


'영'자가 무슨 영일까.

길 영(永)? 꽃부리 영(英)? 영화로울 영(榮)?

아무거나 좋아 보이면 그만이었다.


'수'자는?

빼어날 수(秀)? 닦을 수(修)?


"엄마, 뭐해?"


진영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어... 아빠 이름... 한자가 생각이 잘 안 나서."


정희는 손끝을 떨며 한자를 조합해 보았다.

영화로울 영에 빼어날 수. 영수(榮秀).

아니면 길 영에 목숨 수. 영수(永壽). 오래 살라는 뜻인가? 그 인간이 오래 살면 안 되는데.

정희는 피식,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이게 무슨 짓인가. 얼굴도 떠올리기 싫은 그의 이름을, 있지도 않은 의미를 갖다 붙여가며 작명하고 있는 꼴이라니. 하지만 빈칸으로 낼 순 없었다. 빈칸은 곧 결손이었고, 결손은 곧 진영이의 상처가 될 터였다. 또 다시 부재로 오는 아픔을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정희는 기억나는 한자 중 가장 획수가 많고 그럴싸해 보이는 글자를 골라 적어 넣었다.

영화로울 영(榮).

빼어날 수(秀).


학력과 주거형태도 고민하다 적어 내었다.

정희는 삐뚤빼뚤하게 채워진 빈칸을 내려다보았다.


가짜 이름. 가짜 아빠. 가짜 환경.


하지만 세상은 진실보다 그럴듯한 서류 한 장을 더 믿는다는 걸, 정희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저 종이 위에서라도, 내 자식이 초라해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어미의 서글픈 허세였다.


"다 됐다."


정희는 진영의 가방에 종이를 넣어주었다.

흔들리는 불빛 아래, 거짓말로 메워진 빈칸이 흉터처럼 종이 위에 남아 있었다.

오늘 밤은 그 거짓말이, 깡패들의 협박보다 더 무겁게 정희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날 밤, 정희는 식은땀을 흘리며 뒤척였다.

꿈. 지독한 꿈이 그녀를 다시 3년 전의 그날로 끌고 갔다.


남편이 낯선 여자의 손을 잡고 들어와 "나가라"고 했던 날. 정희는 맨발로 쫓겨났다.

아이를 데려가려 했지만, 시어머니가 아이를 등 뒤로 감추며 소금을 뿌렸다.


"어딜 감히! 내 손주는 못 데려간다!"


닫힌 대문 앞에서 목이 터져라 울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정희는 그 집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하루 종일 도둑고양이처럼 담벼락 뒤에 숨어 아이가 노는 모습을 훔쳐보았다.

새엄마라는 여자가 아이를 구박하지는 않는지, 밥은 잘 먹이는지.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마당 수돗가에서 "악!"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담장 너머로 보니, 수돗가 옆에 펄펄 끓는 물이 든 찜통이 엎어져 있었고, 여섯 살 진영이 그 옆에 쓰러져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왼쪽 허벅지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이고, 이걸 어째! 애 잡겠네!"


시어머니와 그 여자가 뛰어나와 아이를 업고 허둥지둥 대문을 나섰다.

정희는 미친 사람처럼 그 뒤를 쫓았다.


작은 동네 병원.


의사가 화상 부위에 붕대를 감는 동안, 아이는 탈진해 잠들어 있었다. 시어머니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정희는 병실로 뛰어들었다. 멍하니 서 있던 그 여자, 새엄마가 정희를 보고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당신들... 내 새끼 죽일 작정이야?"


정희의 눈에서 파란 불꽃이 튀었다. 여자는 기에 눌려 뒷걸음질 쳤다.

정희는 잠든 진영을 들쳐 업었다. 붕대 감은 다리가 축 늘어졌다.


"진영이, 내가 데려가."

"저, 저기요... 이러시면..."


"비켜어어! 내 아들이야아!"


정희는 짐승처럼 포효하며 여자를 밀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간호사들이 불렀지만 들리지 않았다.

무작정 달렸다. 아이의 열기가 등에 전해졌다.


그녀가 숨어든 곳은 친정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오빠들, 언니들이 사는 집.

덜컥 임신해서 소문이라도 날까 쉬쉬하며 결혼했던 딸이, 소박맞고 쫓겨난 것만으로도 참아주기 어려운데, 그 딸이 다시 아이를 훔쳐 데리고 돌아오자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남편은 오빠들이 무서워 차마 처갓집 대문까지는 쳐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집안의 공기는 차가웠다.


"애를 왜 데려와! 당장 돌려보내!"


아버지는 노발대발했고, 오빠들도 혀를 찼다.


"니가 무슨 능력으로 애를 키워? 그 집에 보내야 애라도 사람 구실 하지."


언니들마저 등을 돌렸다. 아무도 빈털터리 이혼녀와 다친 아이를 반기지 않았다.


사흘 밤낮을 눈칫밥을 먹으며 버텼다. 아이는 밤마다 열에 들떠 끙끙 앓았지만, 누구 하나 약 한 첩 지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내일이라도 가서 빌고 애 놓고 와라"는 성화만 거세졌다.


나흘째 되던 날 새벽, 정희는 보따리 하나와 진영을 안고 도둑처럼 부엌 뒷문을 나섰다.


"언니..."


대문 밖, 어둠 속에서 바로 아래 동생이 서성이고 있었다. 시집가서 진영이와 동갑인 아들과 한 살 터울 딸을 둔 동생은, 마침 친정에 다니러 와 있던 참이었다. 유일하게 정희를 안쓰러워하던 피붙이었다.


"가는 거야? 정말? 갈 곳은 있고?"


정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갈 곳 따윈 없었지만, 동생을 안심시켜야 했다.


"걱정 마. 가서 잘 살께."

"......"

"나중에... 자리 잡히면 연락할게. 잘 지내고 있어."


동생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쫓기듯 골목을 빠져나왔다. 세상 천지 어디에도 의지할 곳은 없었지만, 그래도 등 뒤에서 손 흔들어주는 사람 하나는 남겨두고 떠나는 길이었다. 터미널로 향하는 발걸음이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버스가 덜컹거리며 서울을 벗어날 때, 정희는 품에 안긴 아이의 젖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다시는... 다시는 안 뺏겨. 엄마가 지켜줄게."


그렇게 도망치듯 숨어든 곳이 그 낯선 시골 마을이었다.


"으음..."


정희는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짧은 새벽이 끝나고 벌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옆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진영이 곤히 자고 있었다. 정희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이불을 들추고 왼쪽 허벅지를 더듬었다. 손끝에 오돌토돌한 화상 흉터가 만져졌다. 그날의 증거. 내가 이 아이를 훔쳐 온, 아니 지켜 낸 증거.


"그래, 다 엄마가 감당할 수 있어. 감당할꺼야."


정희는 아이의 흉터 위에 얼굴을 묻었다. 지켜내기 위해 도망쳤다. 너를 뜨거운 물에 방치한 그 집안 핏줄 따위, 서류 한 장으로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 백 번이라도 더 지워버릴 것이다. 정희는 아이를 부서져라 끌어안았다.


새벽녘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녀의 눈빛이 어둠을 뚫고 번들거렸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