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위로

by 돌부처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난 건 깡패들이 사라진 지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정희는 여느 때처럼 석쇠 위에서 안주거리를 뒤집고 있었다. 밤 10시. 손님이 서너 명 있었지만 한산한 편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천막이 펄럭거렸고, 가로등 불빛이 국물 위에 일렁이며 반사되었다.


"아줌마, 국물 좀 더 주세요."

"네, 네. 지금 갑니다."


정희는 양은 주전자를 들고 테이블 사이를 오갔다. 손목이 뻐근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장사 시작한 지 한 달. 이제 제법 손에 익었지만, 여전히 밤의 거리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때였다.


"여기요."


낮고 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구석 자리였다.


낡은 작업복 차림에 캡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앉아 있었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소리 없이 앉아 있었다. 지난번 그 사람이었다. 정희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반가움인지, 긴장인지 구분이 안 됐다.


"아, 손님. 안녕하세요."


정희는 황급히 다가갔다. 손에 든 행주를 앞치마에 대충 꾸겨 넣으며 물었다.


"뭐 드릴까요?"

"소주 한 병. 오뎅 두 꼬치요."


남자는 메뉴판도 안 보고 말했다. 늘 시키던 것이었다. 정희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고, 뜨거운 국물에서 오뎅을 건져 접시에 담았다. 잔을 놓으며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 저번에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진짜로요."


남자는 소주를 한 잔 따라 단숨에 비웠다. 그러고는 툭 내뱉었다.


"됐습니다. 별일 아니니까."

"별일이라뇨. 그 사람들 그 뒤로 한 번도 안 왔어요. 완전히 무서워서 코빼기도 안 내밀던데요."


정희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날 밤, 깡패들에게 둘러싸여 오금이 저렸던 공포가 떠올랐다. 10만 원을 내놓으라며 협박하던 그 날카로운 눈빛들. 쏟아진 오뎅 국물, 화끈거리던 장화 위의 발목. 그리고 모두가 도망치고 난 뒤에도 혼자 남아 있던 이 남자.


"정말 감사했어요. 손님 아니었으면 저 그날 장사 접었을 거예요."


남자는 대답 대신 두 번째 잔을 채웠다.


"장사나 열심히 해요."


그게 다였다. 남자는 더 말이 없었고, 정희도 더 물을 수 없었다. 정희는 다시 불 앞으로 돌아갔다. 석쇠에서 뒤집던 안주거리의 가장자리가 타 있었다. 황급히 집게로 건져내면서도 자꾸만 그 구석 자리가 신경 쓰였다.


도대체 누굴까.

무슨 힘이 있길래 그 무서운 깡패들을 막을 수 있었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함부로 물었다가 괜히 불편해질까 봐.



밤 11시가 넘자 손님이 조금씩 늘었다. 퇴근길 회사원들이 넥타이를 풀고 들어와 소주를 시켰고, 작업복 차림의 공사장 인부들이 시끌벅적하게 안주를 나눠 먹었다.


"이모! 여기 계란말이 하나 더요!"

"오뎅 국물 리필이요!"


정희는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녔다. 국물을 퍼 나르고, 술병을 치우고, 잔돈을 거슬러주고.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 와중에도 정희는 저 구석 자리를 힐끔거렸다.


남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혼자서 천천히 소주를 마시며, 시끌벅적한 천막 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캡 모자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그늘져 있었고, 눈은 멀리 다른 세상을 보는 듯했다.


'외로워 보인다.'


그런 생각이 스쳤다. 정희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감정이입을 할 여유가 없었다.



새벽 1시가 넘어 손님들이 하나둘 빠지기 시작했다.


"계산이요!"

"수고하세요, 이모."


정희는 테이블을 닦고 빈 병들을 치웠다. 젖은 행주에서 술 냄새가 훅 올라왔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시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역시나 그 남자였다.


"계산이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5천 원입니다."

정희가 잔돈을 거슬러주려고 돈통을 뒤지는데, 남자가 손을 저었다.


"됐습니다."

1만 원짜리를 내밀고 잔돈을 안 받아가는 것. 저번에도 그랬다.

정희는 울컥하는 마음이 치밀었다.


"저기... 손님. 이러시면 안 되는데요. 지난 번 도와주신 것도 너무 감사한데..."

"받을 것도 없어요. 그냥 넣어둬요."


남자가 천막을 나가려다 멈칫했다. 천막 입구에 서서 뒤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애가 있습니까?"

"네?"


정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번에 보니까 꼬마 애랑 같이 있는 거 같던데."


남자가 오며 가며 봤던 모양이다.


"아... 네. 올해 1학년이에요. 여덟 살이요."

"1학년이요?"

"네."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갈색 종이봉투였다. 묵직해 보였다.


"뭐예요, 이건?"

"애한테 줘요. 맛있는 거라도 사주라고."


정희는 얼떨결에 봉투를 집어 들었다. 열어보니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세어보니 다섯 장이었다. 5만 원. 정희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걸 왜? 안 돼요. 받을 수 없어요."

정희가 다급히 봉투를 내밀었다.


"저 이런 거 받을 처지는 아닙니다. 손님이 왜 이러세요. 저는 그냥 장사하는 사람이에요."

"처지는."


남자가 무뚝뚝하게 끊었다.


"저기 공단에서 일해요."

남자는 툭 내뱉듯 말했다.


"돈 쓸 데도 없어요. 처자식도 없고. 그냥 애한테 주는 거니까 받아요."

"그래도..."

"어린애 데리고 고생하는 거 보니까, 그냥 남 일 같지 않아서 그래요."


남자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동정이라기보다는 무심한 호의에 가까웠다. 남자의 등 뒤로 보이는 어깨가 유난히 쳐져 있는 것 같았다. 작업복 어깨 솔기가 닳아 있었고, 모자 챙은 땀에 절어 색이 바래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희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을 천막 입구에 서 있다가, 캡 모자 챙을 한 번 눌러 쓰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정희는 손에 든 봉투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따뜻한 건지 무거운 건지 알 수 없는 온기가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5만 원. 포장마차 며칠 밤을 꼬박 새워야 손에 쥐는 돈이었다.


정희는 봉투를 앞치마 주머니에 깊이 넣고, 천천히 정리를 시작했다.

바람이 불었다. 천막이 펄럭거렸다. 카바이트 불빛이 흔들렸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며칠 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이었다. 정희는 천막에 빗물이 스며들까 전전긍긍하며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은 손님이 뜸했다. 오늘 하루도 헛장사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천막이 걷히며 누군가 들어왔다.


그 남자였다.

비에 젖은 작업복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구석 자리에 앉았다.


"소주 한 병. 오뎅 두 꼬치."


정희는 황급히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손님, 이걸로 좀 닦으세요. 감기 걸리시겠어요."


남자는 수건을 받아 들더니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기를 대충 털어내고는 모자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처음으로 남자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사십 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고, 광대뼈 밑으로 그늘이 져 있었다. 하지만 눈만은 또렷했다. 어딘가 지쳐 보이지만, 단단해 보이는 눈. 정희는 얼른 시선을 피하고 소주를 내어갔다.


"저... 손님. 저번에 주신 거요."

"네."


남자는 대답 없이 술을 마셨다.

정희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제가 받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오시면 돌려 드릴려고."


남자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요."

"아니, 그래도..."

"됐다니까."


남자의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거부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배려 같았다.

정희는 할 말을 잃고 물러났다.


그날 밤, 손님은 남자 하나뿐이었다. 비는 점점 세차게 내렸고, 천막 안은 빗소리와 지글거리는 가스 불 소리만 가득했다. 정희는 용기를 냈다.


"저... 실례지만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예?"


남자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런 걸 왜 물어요."

"그냥... 매번 손님 손님 하기도 그렇고. 뭐라고 부를지 몰라서요."


남자는 피식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입술 한쪽만 살짝 올라가는, 삐딱하지만 어딘가 씁쓸한 웃음.


"그냥 김 씨라고 해요. 공장에서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아... 네. 김 씨 아저씨..."

"아저씨는 무슨. 그냥 김 씨요."


남자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정희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이 남자의 눈동자 깊은 곳에 깔린 고독을. 혼자 술을 마시며 조용히 있다 가던 이유를. 아무 연고도 없는 타인에게 선뜻 호의를 베푼 이유를.


어쩌면 그도 외로웠던 게 아닐까.

매일 기계 소리만 들리는 공장에서, 퇴근 후 들를 곳이라곤 이 낡은 포장마차뿐이었던 게 아닐까.


"혼자 사신다고 했죠?"


남자는 대답 대신 소주잔을 비웠다. 빈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소리가 또각 하고 울렸다.


"뭐, 그렇죠."

"힘드시겠어요. 챙겨주는 사람도 없이."

"편해요. 신경 쓸 거 없고."


남자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정희는 그 말속에 숨겨진 뼈를 느꼈다. 편하다는 말은 외롭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때가 많았다. 정희는 슬그머니 맞장구를 쳤다.


"저도 그래요. 힘들어도... 진영이 보면 또 살아야지 싶고."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테이블 위의 카바이트 불빛이 그의 얼굴에 주황빛 그림자를 드리웠다.


"잘 키워요. 애 하나 키우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만."

"네. 노력해야죠."

"노력만으로 되면 좋겠지만."


남자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세상이 어디 그렇던가."


그 한마디가 정희의 가슴을 쿵 찔렀다. 세상은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이 남자는 그걸 알고 있었다. 정희 자신처럼,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체념 섞인 진리였다.



빗소리가 천막 지붕을 두드렸다. 두 사람 사이에 말없는 침묵이 흘렀다.

세상의 모진 바람을 맞아본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동병상련의 온기가 천막 안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파장 시간이 됐다.

비는 그쳤지만 바닥에는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정희는 천막을 정리하며 리어카를 끌 채비를 했다.


"도와줄게요."


느닷없이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지만 남자는 이미 솥단지를 들어 리어카에 올려놓고 있었다. 묵직한 솥이 가볍게 들려 올라가는 걸 보며 정희는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짐을 정리했다. 천막 봉을 접고, 가스통을 리어카 한쪽에 묶고, 나머지 짐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혼자 하면 삼십 분은 족히 걸릴 일이 십 분도 안 걸렸다.


"고마워요."

정희가 고개를 숙였다.


"집이 어디요?"

"저기 고개 너머 골목이에요. 한 이십 분 거리요."

"비 와서 길 미끄러운데."


남자는 흙으로 더러워진 손을 바지에 닦더니, 리어카 손잡이를 잡았다.


"같이 갑시다."

"아, 아니에요. 진짜 괜찮아요."


하지만 남자는 이미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다. 정희는 어쩔 수 없이 옆에 나란히 걸었다. 젖은 아스팔트 위로 리어카 바퀴가 끼익, 끼익 소리를 냈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물웅덩이에 반사되어 일렁거렸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저기요."


한참 만에 정희가 입을 열었다.


"도움을 주시는건 감사한데, 저 부담스러워요."

"부담?"

"네. 저는 그냥 장사하는 사람이고, 손님은 손님이잖아요. 이렇게까지 해주시면 뭘 어떻게 갚아야 할지..."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리어카가 끼익 하고 섰다.


"갚을 필요 없어요."


남자가 정희를 돌아보았다. 얼굴에 내린 가로등 불빛이 깊은 주름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나도 예전에... 누가 좀 도와줬으면 싶을 때가 있었어요. 근데 아무도 없더라고."

"......"

"그냥... 아주머니 보니까 옛날 생각나서 그래요. 악착같이 사는 게."


남자는 다시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다. 정희는 묵묵히 따라 걸었다. 골목 입구에 도착했을 때, 남자가 리어카 손잡이를 내려놓았다.


"여기까지 하죠. 집은 저 안이죠?"

"네. 고마워요. 정말로."


남자는 고개만 끄덕이고 돌아섰다.

몇 걸음 가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내일도 장사 나오죠?"

"네."

"네. 수고해요."



남자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정희는 리어카를 세워두고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축축한 밤공기가 볼을 스쳤다.


'옛날 생각나서.'


그 말이 왜 그렇게 든든하게 들렸는지, 정희는 알 것 같았다.


방에 들어서니 진영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준 책을 베개 옆에 두고, 작은 손으로 이불깃을 움켜쥔 채 곤히 자고 있었다. 정희는 아이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엄마 왔어."


진영이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으음..."


정희는 씁쓸하게 웃으며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가 끝났다.


창 밖에서는 아직 빗물이 처마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정희는 천장을 바라보며 그 남자를 떠올렸다.

투박한 손이 리어카를 끌어주던 모습을 되새겼다.


낯선 위로.

서툴고 무뚝뚝하지만, 그래서 더 따뜻한 위로였다.

정희는 눈을 감았다. 창 밖에서 빗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오늘 밤만은, 세상이 조금 덜 차가운 것 같았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