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라기 소리

by 돌부처

5월의 밤바람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났다.


낮 동안 뜨겁게 달궈졌던 아스팔트가 식으면서 내뿜는 매캐한 먼지 냄새, 그리고 근처 개천에서 올라온 습한 물비린내가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씩 산동네 윗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 끝에는 희미한 아카시아 향기가 묻어 있었다. 그 달큰한 향기가 코끝을 스칠 때마다 정희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별밤 가족 여러분,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


포장마차 구석에 놓인 낡은 라디오에서 이문세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이 시그널 음악은 마치 하루의 마침표 같은 것이었다.


"이모, 여기 꼼장어 하나 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헤친 40대 회사원이 빈 소주병을 흔들었다. 이미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네, 금방 갑니다."


정희는 익숙한 솜씨로 석쇠 위에 양념 된 꼼장어를 올렸다.

치이익.


연탄불 위에서 매콤한 양념 타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하얀 연기가 천막 천장을 타고 맴돌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작업복 차림의 사내들이 닭똥집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곳 동네 어귀의 포장마차는 밤 9시가 넘어야 진짜 장사가 시작됐다. 퇴근길에 지친 가장들, 야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공장 노동자들이 하루의 시름을 소주 한 잔에 털어버리는 곳. 떡볶이나 파는 학교 앞 분식집과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여기엔 삶의 찌든 내가 배어 있었다.


"아니, 글쎄 전세금이 또 올랐다니까요. 미치겠어, 진짜."

넥타이 부대가 목소리를 높였다.


"분당인가 일산인가 신도시 짓는다고 난리더니, 서울 집값만 더 뛰는 거 아입니까. 우리 같은 월급쟁이들은 이제 서울에서 등 붙일 데도 없어요."

"에이, 술맛 떨어진다. 마셔, 마셔!"


맞은편 동료가 혀를 차며 잔을 채웠다. 90년대 초, 치솟는 물가와 집값은 서민들의 가장 큰 안주거리였다. 정희는 묵묵히 우동 국물을 따랐다. 커다란 알루미늄 통에서 펄펄 끓는 육수 김이 안경알을 뿌옇게 만들었다. 겨울엔 이 김이 반가웠지만, 습한 5월의 밤엔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백열전구 주위로는 이름 모를 날벌레들이 따닥, 따닥 소리를 내며 타죽고 있었다.


"요새 단속 심하다던데, 괜찮아요?"

닭똥집을 씹던 작업복 사내가 물었다.

"범죄와의 전쟁인가 뭔가 한다고 높으신 양반들이 난리라잖아요. 며칠 전엔 저 밑에 시장통도 싹 엎어졌대요."


정희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석쇠 위의 꼼장어가 타닥거리는 소리를 냈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너무하죠."


정희는 애써 덤덤하게 대답하며 꼼장어를 뒤집었다.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에, 단속이 무서워 장사를 쉴 수는 없었다. 오늘 번 돈은 고스란히 진영이 준비물 사는 데 써야 했다. 학교에서 내오라던 초록색 32건반 멜로디언. 남들 다 가진 거, 우리 애만 없어서 기죽게 할 순 없었다.


'오늘 것만 팔면 딱 맞는데.'


정희는 앞치마 주머니 속의 지폐를 만지작거렸다.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들이 주는 두께감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괜찮겠지. 설마 이 구석진 동네까지 올라오겠어.'


정희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라디오 볼륨을 조금 높였다. 신승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애절한 발라드 가사가 끈적한 밤공기 속에 녹아들었다.


평화는 언제나 예고 없이 깨진다.

삐이익!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노래 가사를 뚝 끊어먹었다. 라디오 속 가수의 목소리 대신, 찢어질 듯한 호각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단속이다! 싹 다 밀어버려!"


천막 밖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육중한 트럭 엔진 소리와 함께 주황색 조끼를 입은 사내들이 곤봉을 들고 들이닥쳤다.


"어어, 왜 이래! 술맛 떨어지게!"

취객들이 소리를 질렀지만, 단속반원들은 거침이 없었다.



"비키시오! 공무 집행 중이란 말 안 들려?"

사내 하나가 정희의 포장마차 기둥을 발로 걷어찼다.


쿠당탁!


천막 지지대가 휘청거리더니, 비닐 천막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정희의 머리 위로 전구가 대롱거리며 춤을 췄다.


"아줌마! 이거 안 치워? 압수당하고 싶어?"


정희는 반사적으로 가스 밸브부터 잠갔다. 그리고 리어카 손잡이를 잡았다.

겨울철의 그 차디찬 쇠맛이 아니었다. 손바닥에 밴 땀 때문에 손잡이가 미끌거렸다.


"잠깐만요... 손님들만 나가면..."

"말이 많아! 당장 안 밀어?"


단속반원이 리어카를 거칠게 밀쳤다. 정희는 바닥에 패대기쳐지듯 넘어졌다.


와장창!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소주병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박살이 났다.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곧이어 리어카가 밀리면서, 펄펄 끓던 우동 육수 통이 기우뚱했다.


촥!

뜨거운 국물이 깨진 소주병 위로, 그리고 정희의 발치로 쏟아졌다.

매캐한 연탄불 위로 국물이 튀면서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희뿌연 수증기가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내 리어카... 안 돼..."

정희는 유리 조각이 박힌 바닥을 기어서 리어카 바퀴를 잡았다.

호루라기 소리는 계속해서 울렸다. 마치 사냥개들이 짖어대는 것 같았다.


"이거 놓으라고! 아줌마 공무집행방해로 쳐넣어?"

단속반원이 정희의 손을 군홧발로 밟으려 했다.


"가자, 가! 저쪽으로 튀는 놈 잡어!"

다행히 반장은 이미 반쯤 박살이 난 정희의 리어카보다는, 도망치려는 다른 노점상을 쫓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트럭은 굉음을 내며 다른 골목으로 사라졌다. 호루라기 소리가 멀어졌다.


골목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깨진 소주병 냄새가 진동했다. 알코올 냄새와 쏟아진 우동 국물의 멸치 냄새, 그리고 바닥에 뒹구는 꼼장어 양념 냄새가 뒤섞여 역한 악취를 풍겼다. 정희는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찢어진 비닐 천막 사이로 5월의 밤하늘이 보였다. 달은 무심하게도 밝았다. 아카시아 향기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쯧쯧... 이게 무슨 난리람."


구경하던 사람들이 혀를 차며 지나갔다. 정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엉망이 된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었다. 가장 먼저 찾은 건 돈통이었다. 아까 엎어지면서 바닥에 굴러떨어진 파란 플라스틱 통. 뚜껑이 열려 있었다.


"......"


정희는 무릎을 꿇고 바닥을 더듬었다. 흙탕물 속에 100원짜리 동전 몇 개가 반짝였다. 바람에 날려갔는지 지폐는 보이지 않았다. 500원짜리 동전 몇 개와 100원짜리들만 진흙 속에 박혀 있었다.


멜로디언 살 돈이었는데.

진영이가 내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찾을 텐데.


정희는 떨리는 손으로 동전을 주워 담았다. 손가락이 깨진 유리에 베여 피가 맺혔지만, 아프지 않았다.

그녀는 말없이 빗자루를 들어 바닥을 쓸었다.


사그락, 싹. 사그락, 싹.


오늘 하루의 노동이, 희망이, 쓰레기 봉투 속으로 들어갔다.


새벽 3시.

정희는 리어카를 끌고 집으로 걸었다.

평소보다 리어카가 무거웠다. 찌그러진 바퀴가 아스팔트를 긁으며 불협화음을 냈다. 끼익. 끼익. 그 소리가 혹시라도 잠든 이웃들을 깨울까 봐, 정희는 멈춰 서서 바퀴를 들어 올리듯 밀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발등에 덴 화상이 욱신거렸다. 대문 앞에 도착해 리어카를 세워두고,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았다. 호스를 틀자 찬물이 쏟아졌다. 정희는 흙투성이가 된 운동화를 빨았다. 국물 얼룩이 지지 않았다. 벅벅 문질러도 누런 자국은 그대로였다. 마치 가난의 문신처럼.


방에 들어서니 진영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좁은 단칸방, 할머니가 주신 자개장 하나와 그리고 진영이의 책가방이 전부인 방. 정희는 아이의 머리맡에 앉았다. 이불 밖으로 나온 작은 발을 만져보았다. 따뜻했다. 이 온기 하나 지키려고 그 난리를 쳤구나 싶어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으음..."


진영이 잠꼬대를 하며 돌아누웠다. 정희는 황급히 눈물을 훔치고 자리에 누웠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잠이 오지 않았다. 깨진 소주병 소리가, 호루라기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해야 할 거짓말이 가슴을 짓눌렀다.


날이 밝았다. 아침은 일찍 시작됐다. 옆집에서 물 쓰는 소리, 밥 짓는 냄새가 넘어왔다.


"엄마, 일어났어?"


진영이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정희는 밥상을 차리다 말고 아이를 보았다.

진영의 시선이 방 한구석을 향했다. 엄마가 장사 마치고 돌아오면 늘 무언가를 사다 놓는 그 자리.


하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없었다.

파란색 돈통도, 멜로디언도.


"엄마..."

진영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응, 밥 먹자."

정희는 짐짓 밝은 목소리로 숟가락을 놓았다.


"저기... 멜로디언은?"


올 게 왔다.


정희는 국을 뜨던 손을 멈췄다. 아이의 눈망울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친구들은 다 가지고 왔는데, 나만 없어서 선생님한테 혼났다고, 내일은 꼭 사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손가락 걸고 도장까지 찍었었다. 정희는 마른침을 삼켰다. 거짓말은 쓰다. 하지만 어미는 때로 쓴 약을 삼켜야 한다.


"아, 그거..."

정희는 애써 웃었다.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엄마가 문방구에 갔는데, 다 팔리고 없대. 아저씨가 내일 물건 들어온다고, 내일 꼭 사 오라고 하네?"

"진짜?"


진영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쳤다. 하지만 아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겠어. 그럼 내일은 꼭 사야 돼. 선생님이 이번 주까지 안 가져오면 점수 깎는대."

"그래, 그래. 내일은 엄마가 제일 먼저 가서 사 올게. 약속."

"약속."


진영이가 배시시 웃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정희는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국에 만 밥알이 모래알처럼 까끌거렸다. 오늘 밤에도 리어카를 끌고 나가야 했다. 찌그러진 바퀴를 펴고, 깨진 그릇을 채워 넣고. 단속반이 또 올지도 모른다. 무서웠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그런 상황들이.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그 절망감이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나가야 했다. 내일은 멜로디언을 사야 하니까. 진영이와의 약속을, 이번에는 지켜야 하니까.


"엄마, 근데 엄마 손 왜 그래? 다쳤어?"


진영이 정희의 손가락에 감긴 밴드를 가리켰다.

어젯밤 유리 조각에 베인 상처였다.


"아, 이거? 일하다가 살짝 긁혔어. 괜찮아. 빨리 먹고 학교 가자."


정희는 손을 밥상 아래로 감추며 말했다. 창밖에서는 벌써 5월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이 시리도록 밝은 아침이었다. 하지만 정희의 마음속에는 아직 어젯밤의 호루라기 소리가, 그 날카로운 비명 같은 소리가 멈추지 않고 울리고 있었다.


토, 일 연재